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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1

[도서] 나의 투쟁 1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저/손화수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항상 그렇다. 책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면 표지와 제목을 보고 두께를 보고 책날개를 펼쳐본다. 그런데 이 책 나의 투쟁은 다른 책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우선 나의 투쟁이라는 제목이 그러했고(우리는 보통 어떤 혁명적인 것을 떠올리므로), 두께가 그러했고(무려 670 페이지),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북유럽 소설이라는 것(우리에게는 영미문학이 조금 더 친숙하므로)이 그러했다.


  


1권에서는 작가의 성장과 어른이 된 후에 자신에게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계속 반복하기에 조금은 혼동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읽는데 크게 무리는 없었다. 단지 과거의 일을 그리도 세세하게 기억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의 측면에서 봤을 때 아마도 일기를 썼고 그것을 기반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다. 그렇지않다면 그토록 사실적이고 현실적일 수가 없을 테니까.


 


작가는 아버지를 싫어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장례식을 준비하는 동안 가끔 오열하기도 한다. 애증의 관계, 무뚝뚝하고 완고한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 점점 망가져버리고 결국엔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어느날 식탁에 엎어진채로 죽어버린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작가가 그토록 아버지를 왜 그토록 증오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했고, 결론적으로 무엇을 얘기하고 싶어하는 것인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그러므로 가족과 화해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이해하라는 것인지작가가 아버지가 된 후에도 아버지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이해하려는 부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철저하게 본인 생각을 위주로 이야기들만을 풀어 놓았다.


 


P415 아버지가 내게 다가오기 위해 노력했다 해서 손찌검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욕하는 일을 멈추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온갖 교활하고 기묘한 방법으로 나를 벌하는 일은 계속되었다. 바로 그 때문에 아버지를 향한 내 감정은 애매하고 복잡한 것으로 변했다. 반면 아버지를 향한 형의 감정은 구체적이고 분명하며 일원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형은 아버지를 증오했으며, 그건 형에게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그 외에 형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없다.

P467 버스 정류장 뒤에 있는 구멍가게로 가면서 나는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자위했다. 내 속에 자리한 아버지의 이미지는 너무 견고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의 성격과 외모는 많이 변했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변한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내 속에는 내게 익숙한 아버지뿐, 나는 그 아버지만 내 아버지라 생각해왔다.

P18 그해 나는 여덟 살이었고 아버지는 서른두 살이었다. 그 당시의 아버지를 내가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고,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도 없지만, 그때의 아버지보다 일곱살이나 더 나이를 먹은 내가 다시 그때를 돌이켜보니, 어떤 것들은 좀더 쉽게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의 일상과 나의 일상에 어떤 차이점이 있었는지에 대한 것들 말이다. 그 당시 나의 일상은 수없이 많은 의미로 가득 차 있었고, 한 발짝 앞으로 나설 때마다 새로운 가능성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새로운 가능성들은 나를 자주 한계점으로 몰고 가기도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솔직히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작가가 아직은 어린 세 명의 자녀를 돌보아야 하는 상황속에서 자신의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을 내는 것은 그야말로 투쟁이었다. 삶 속에서 유일하게 자신이 잘 한다고 생각하는 글을 쓰기 위한 투쟁. 남들도 다 하는 일에 뭘 그렇게 투쟁이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면서 유난을 떠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이 너무 많아 그것을 글로써 쏟아내야만 하는 사람에게는 시간벌이는 분명 엄청난 에너지의 소모일 것이다. 내가 관상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책 표지에 있는 사진 속 그의 얼굴에 패인 깊은 주름은 예민하고 온화하지 않은 성격을 가진 작가가 편안하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은 남들보다 더 작가가 예민하고 어쩌면 신경질적이고 괴팍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을 것 같다.


 


P52 시간은 나를 비켜 흘렀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이 손가락 사이의 모래알처럼 스르르 흘러내려 사라져버렸다. 글쎄, 내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저녁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장을 보고,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씻기고 옷을 갈아 입히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돌보는 일? 젖은 빨래를 말리고, 옷가지를 잘 접어 옷장에 차곡차곡 넣고, 정리를 하고, 탁자와 의자, 벽장을 닦는 일? 이건 투쟁이다. 비록 영웅적인 투쟁이라 할 수는 없지만,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 치워도 치워도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는 방, 눈을 뜨고 있는 한 한도 끝도 없이 뒤를 따라다니며 돌봐주어야 하는 아이들 등 내 힘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어떤 지배적인 것들에 맞서는 투쟁인 것이다.


 물론 아주 솔직히 그의 인생이 어떻다라고 1권만 보고서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작가는 다른 사람들과 아주 다른 삶을 살았다고 보여지지도 않는다. 아직도 여러 권의 책이 남아있기에 앞으로 어던 내용들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생각많은 남자, 그리고 유들거리지도 못해 세상살이가 마냥 녹록치 않은 그에게 얼마나 더 많은 농도의 투쟁들이 있을지 기대가 되는 바이다.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겠다. 댓글들의 의미를 알겠다.


 


여성성이 짙은 나폴리 시리즈와 남성성이 짙은 이 책을 번갈아 읽으면서 다르고 또 비슷함을 느낀다. 여성이 주인공인 나폴리 시리즈에 같은 여성인 내가 덜 공감한다는 것이 아이러니일 수도 있겠다 싶은데 삶의 모습은 이 책에 더 가깝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진짜 삶 이야기,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할테지


그의 인생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내달리지는 지켜보아야 알 일이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이 작가를 극찬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특별한 내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책장을 계속 넘기고 있는 나를 보면 특히 더 그렇지 싶다. 정말 그렇다. 조금만 더 읽고 내 일을 해야지 생각을 했었다. 생각만 했었다. 그렇게 못했었다. 그만큼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작가지망생에게는 특히 더 의미 있을 것 같은 이 책이 내게도 영향을 미쳐 새해 계획을 세운다. 나는 새해에는 일기를 쓸 것이다. 일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에 대한 기록을 남길 것이다. 꼭 그렇게 할 것이다. 오늘이 1 1일이니까 핑계가 더 없이 좋다. 올해에는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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