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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영휴

[도서] 달의 영휴

사토 쇼고 저/서혜영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솔직히 책의 중간까지는 어떤 점에서 나오키 상을 수상했는지 포인트를 잡을 수가 없었다. 전반까지의 내 느낌은 통상적인 제3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 그저 불륜관계의 유부녀와 대학생일 뿐이었고 한 사람이 죽어서 환생을 했구나하는 점에서 과연 그렇게까지 애틋한 사랑이었나?’ 하는 것과 스토커에 가까운 짓이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책의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뭐랄까나는 제목이 주는 영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었다. 아무래도 흔히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었기에 그랬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내 유영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었다. 소설 어디에도 유영이라는 말은 없지만 내 느낌엔 물속에서 흐름에 따라 느리게 흔들리는 느낌이랄까? 멀리 햇빛이 물속으로 희부옇게 비추고 그 아래 죽음에 이른 한 여자의 유영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몽환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선명하지만 물속에서 조용하고 천천히 흐르는 느낌?

언뜻 들으면 서양이름 같은 루리’ (아마도 루미네이트라는 조금은 익숙한 단어를 떠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도 일본식 이름처럼 다가오지 않는 루리라는 이름. 하지만 그 이름이 주는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놓고 보자면 가슴이 아픈 일이다. 조용히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닌, 때 이른 죽음을 통해 이어지는 이름과 기억이라니

 


오사나이는 이런저런 어려움없이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 취직, 결혼, 승진을 하고 루리라는 딸을 낳았다. 그런데 루리가 7살이 되어 2주간의 열병을 앓은 후 갑자기 상황이 달라진다. 곰인형에게 아키라라는 이름을 붙이고 옛날 노래를 흥얼거리고 명품을 알아보기도 하는 등 아내 고즈에를 걱정의 늪 속으로 들인다.

P36 “오늘 당신이 없을 때 딱 한 번 그런 눈빛으로 나를 봤어. 소름 돋을 정도로 어른스러운 눈빛이었어. 아키라 군은 어디서 왔니, 하고 물어봤는데, 그랬더니 루리가 내 쪽을 돌아보고 아무 말도 안하고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는 거야. 안색을 살피는 눈으로.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눈으로. 이 사람한테 어떻게 얘기해야 좋을까? 하는. 나쁘게 말하면 생판 처음 본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역시 표현이 잘 안돼. 하지만 지금까지와 다른 건 분명해

언젠가 아키라라는 남자에게 딸이 가버리지않을까하는 아내의 걱정을 오사나이는 대수롭지않게 여기고, 루리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 방학식을 마친 후 귀가하지 않는다. 전철역을 수소문해 다카다노바바에 있음을 알고 찾아가 데려오는데, 오사나이는 이번이 루리의 세 번째 가출이었음을 그때 알게 된다. 루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가출하지않기로 하고 약속을 지켰지만 약속했던 고교졸업반때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중에 둘 다 교통사고로 즉사한다. 장례를 치르고 15년이라는 시간이지난 후 고향으로 돌아온 오사나이는 기요미와 그녀의 딸 미즈키와 가까운 사이다. 어느날 아내 고즈헤의 친구의 동생인 미스미가 찾아와 둘(아내 고즈에와 딸 루리)이 도쿄에 있는 자신을 찾아오다 사고가 난 것이라 말하고 이때부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하지만 실제 이 이야기의 시작은 대학생 청년 미스미 아키히코와 27세의 마사키 루리로부터 시작한다.

미스미는 대학시절 여름방학 중 다카다노바바의 비디오테잎 대여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한 연상의 여성을 만나게 된다. 미스미는 한 눈에 그녀에게 반하게 되고 비에 젖은 그녀에게 수건 대신 티셔츠를 건네고 그 이후 미스미는 그녀를 우연히라도 만나기 위해 이곳 저곳을 서성인다. 영화관에서 우연을 가장한 마주침 후 둘은 만남을 시작하게 되고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

P134 집에서 가져온 누나가 물려준고지엔2판은 책꽂이 가장 아래 칸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루리라는 항을 찾아 손가락을 짚으며 내려가니 瑠璃(유리) 라는 항목이 나왔다. 루리도 하리도 빛을 비추면 빛난다. 속담도 나왔다. 시시한 것들 속에 섞여 있어도 뛰어난 것은 빛을 비추면 빛나서 바로 알 수 있다는 뜻이다.

P181 “루리도 하리도 빛을 비추면 빛난다니까. 어디에 섞여 있어도 나는 그 사람이 루리 씨라는 걸. 루리씨의 환생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어요” (중략) “하지만 난 몇 번 죽어도 다시 태어날 거야. 아키히코 군이 비칠비칠 할아버지가 돼도, 젊은 미인으로 다시 태어나서 아키히코 군이 비칠비칠 할아버지가 돼도 젊은 미인으로 다시 태어나서 아키히코 군 앞에 나타나서 유혹할 거야” (중략) 하지만 나한테 선택권이 있다면, 난 달처럼 죽는 쪽을 택할 거야” “달이 차고 기울 듯이” “그래. 달이 차고 기울 듯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거야. 그래서 아키히코 군 앞에 계속 나타나는 거야

하지만 마사키 루리는 어느 날 전동차에 치여 죽게 되고, 이로써 달의 영휴가 시작되게 되었다.

 


이 소설에는 4명의 루리가 있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꿈에 나타나 자신의 이름을 루리로 해달라고 하고, 모두 7세가 되면 열병에 시달리고, 그 이후 마사키 루리의 기억이 전이되어 버린다. 어쨌거나 어떤 루리이든지 목적은 하나이고 그것은 바로 미스미를 만나는 것. 하지만 루리의 삶이 여러 번 되풀이 되어도 다른 사람들은 나이를 먹게 되었고 그녀가 찾던 미스미도 어느새 중년의 남성이 되어 있었다.

결국은 환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7살이라는 나이는 자각의 시각이다. 전생의 루리가 현생을 자각하는 시점인 것이다. 만약 4번째 루리도 만나지 못했다면 계속 루리는 이어질 것이고 살아있는 미스미는 몇 세까지 나이를 먹어서 만날 수 있을까? 4번째 루리에서 결국 그들은 만났고 루리는 미스미로부터 가슴 떨리는 고백을 듣게 된다. 이루어지지 않았고, 또 먼 길을 돌아 만남에 이르러서일지도 모르겠다. 굳이 비관적으로 보자면 이제 와서 만난 게 그리 큰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이제라도 만나서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을 갖게 하는 책이다.

P396 결국 준비한 말을 하나도 할 수 없었다. 숨 막힐 것 같아 목이 메어 말을 잃은 소녀를 향해 그는 웃는 얼굴로 끄덕여 보였다. 그 웃는 얼굴이면 됐어. 아무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으니까. 라고 격려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루리 씨, 라고 조용히 부르는 목소리가 소녀의 귀에 들렸다.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 하고 그는 말했다.

 

P366 “오사나이 씨! 좋은 거 가르쳐 줄까요?” 소녀의 목소리가 등에 걸린다. “환생은 나 하나뿐이라고만 할 수는 없어요. ‘다시 태어나도 아키히코 군과 만나고 싶다’. 그렇게 바라서 내가 이렇게 된 거라면, 사랑의 깊이가 조건이라면, 그 밖에도 다시 태어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많이 있어요. 오사나이 씨의 부인도 사랑의 깊이에서는 전혀 지지 않으니까 자격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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