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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시

[도서] 오후 네시

아멜리 노통브 저/김남주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만약에 자신의 편안한 일상이 방해받는다면, 그것도 지속적으로 방해받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저마다의 방식이 있겠지만 예의를 지키며 정중하게 거절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감내해야 하는 것은 또 아니다. 여기 평온한 일상을 위협받는 은퇴한 두 노인이 있다.

 

은퇴한 에밀과 쥘리에트는 평생 시골 마을에서 라틴어를 가르치며 살다가 이제는 은퇴하여 꿈꾸던 숲속에서 살게 된다. 어느 날 이웃집 남자 팔라메르의 방문을 받은 두 사람은, 그가 의사라는 사실에 더없이 반가워하지만 이내 계속되는 오후 네 시의 방문과 들어와서 하는 것이라고는 짤막한 답변과 커피 한 잔 이라는 사실을 고문처럼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 시간에 문을 열어주지 않기도 하고, 외출을 하기도 하고, 아내의 몸이 불편한 것을 핑계로 대기도 하지만 이웃집 남자 팔라메르는 개의치 않는다. 결국 두 사람은 이웃집 남자에게 다시는 오지 말라며 협박을 하게 되고 정말 다음날부터 이웃집 남자는 방문하지 않는다. 그런데 에밀은 되려 그날부터 평온한 듯하면서도 불편한 상황에 빠져들고 만다.

 

이 소설은 시골마을에서 평생 라틴어를 가르치다가 은퇴한 노인을 통해 자신의 평온한 일상이 위협을 받았을 때 어떻게 본성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평생 시골 학교에서 라틴어와 역사를 가르쳤던 이 남자는 항상 점잖음을 유지한 채로 사람을 대했었고 성실함과 예의바름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웃집 남자의 방문 이후로 자신이 유지하던 평온하고 조용한 사람은 자신과 점점 멀어지게 되고, 어느 날 제자가 방문하여 세상과 타협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실망한 것을 알고는 자신이 유지하던 점잖음에 한계를 느끼게 된다. 때문에 그는 옆집 남자에게 소리를 질러 보기도 지르지만 그것은 또 다른 마음 속 불편함을 가중시키는 일이 되어 버렸다. 처음엔 해방감을 느끼던 에밀은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고, 어느 날 이웃집에서 나는 소란한 소리에 밖에 나갔다가 팔라메르의 자살시도를 목격한다. 그냥 내버려둘까 잠시 갈등하지만 결국엔 그를 살려내고, 아내 쥘리에트와 함께 팔라메르의 아내 베르나데트를 돕고 외출도 시키는 등 나름 노력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더욱 더 완고해져버린 팔라메르 뿐이다. 에밀은 생각을 거듭하다가 결국은 팔라메르가 원하는 것을 이뤄주기로 한다.

 

인간의 본성은 어디까지 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싫어도 싫다고 직접적으로말하지 않는 경우는 정말 많다.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이고 항상 예의를 지켜야 하고 또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고 배워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정말 참을 수 없는 지경일 때 사람은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 우발적 살인이나 사고도 알고 보면 그 순간에 해서 생기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소설이므로 현실과는 조금 벗어난 상황이지만 사람은 자신의 일상이나 안위가 위협을 받았을 때 어디까지 나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나쁜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에밀의 행동은 분명 죄임에는 틀림없지만, 팔라메르가 진심으로 원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놓쳐서는 안될 것 같다.

작가는 불편한 진실을 말하고 있다. 과연 올바른 행동이었느냐 아니었느냐로 판단한다면 에밀은 죄인이지만, 예전에는 범죄였던 것도 시대가 달라지면서 해석이 달라지기도 하지 않는가. 물론 현재로써 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이른 감도 있지만 인간의 존엄성이 생명유지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보니 나는 팔라메르의 소원을 들어준 에밀에게 한 표를 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홀로 남은 베르나데트는 에밀과 쥘리에트가 돌보기로 했으므로 이런 이유에 덧붙여에밀도 그 후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매 상황에 대한 에밀의 판단과 결론이 나타나 있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하면서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하고 자기행동을 합리화시킨다. 하지만 자신을 따르던 제자가 방문하고 자신의 유약함을 그 제자가 목격하는 순간 단순히 합리화만으로는 자신을 지탱할 수가 없게 되었다. 때문에 결단을 내리고 방문을 거부한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그 이후로는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버렸다. 에밀이 잘못했느냐 아니냐만 생각한다면 나는 에밀이 잘못했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지만 정말 나의 불편함은 나라는 인간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나는 한 가지가 궁금하다. 자신의 한계를 넘는 상황을 맞아본 적 있느냐고? 그래서 어떻게 행동했느냐고….

 

나는 팔라메르의 행동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가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 올바른 것은 아니었고, 분명히 다른 사람의 자율권을 침해했다고 보여지므로 그를 응원할 수는 없지만, 방에 시계들을 두고 시간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생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에 상당히 마음이 아프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왜 상황은 그렇게밖에 갈 수 없었을까? 이 소설, 불편하다.

 

P13 그곳에서 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잇는 모브 마을에서 우리는 필요한 것들을 모두 구할 수 있었다. 시냇물 건너편에는 우리 집과 똑 같은 모양의 집이 한 채 있었다. 집주인의 말에 따르면 그 집에는 의사가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에게 망설임의 여지가 남아 있었다 해도, 그 말로 그런 갈등을 말끔히 씻을 수 있었으리라. 쥘리에트와 나는 속세를 벗어날 테지만 우리의 안식처에서 3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의사가 있게 되는 셈이 아닌가! 우리는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한 시간도 채 못되어 그 집은 우리 집이 되었다. 집세도 비싸지 않았고, 손봐야 할 데도 없었다. 그 일에는 행운이 분명 함께하는 것 같았다.

P84 나는 매혹되었다. 나는 그럴 수 있는 그가 부러웠다. 그는 거북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거북한 것은 오히려 우리가 아니었던가! 말도 아 되는 일이 아닌가! 그런 일에 놀라다니 내 잘못이었다. 뻔뻔스러운 인간이 그런 태도를 부끄러워한다면, 뻔뻔스러운 행동을 그만둘 터였다. 나는 예의없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 멋진 일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잇는 나 자신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좋은가. 자신에게는 온갖 결례를 허용하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오히려 결례를 저지른 것 같은 감정에 휩싸이게 하다니!

P85 내 상상력의 결실이 겨우 이 정도였던가? 이웃집 남자의 얼굴에 어떤 표정이 스쳐 간 것 같았다. 그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째서 그렇게 스스로를 들볶아 대는 거요? 당신은 모를 테지만, 이긴 사람은 나요. 내가 매일같이 두 시간 동안을 당신 거실에 앉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소? 당신의 언변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그 명백한 증거 앞에서는 할 말이 없을 거요. 난 당신 집에 와서 당신을 귀찮게 하고 있으니 말이오> 6시가 되자 그는 돌아갔다.

P122 “물론 그녀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줄 알지. 하지만 당신이 보았다시피 그 어떤 대화도 불가능해. 모든 게 설명되는군. 베르나르댕 씨가 이런 외진 곳에 정착한 것은 자기 아내를 사람 눈에 띄게 하지 않기 위해서야. 그가 그렇게 거친 인간이 된 것은 그 여자와 함께 살아야 했기 때문이지. 다른 인간관계없이 그 여자하고만 말야. 그리고 그가 매일 우리 집에 와서 두 시간만 머무는 것은 그의 내면에 남아 있는 인간적인 면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야. 우리는 절망에 빠진 그에게 있어서 마지막 지푸라기 같은 존재야. 우리가 없다면 그는 자기 아내처럼 애벌레 같은 상태로 빠져들고 말거야

P132 사전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가스는 팽창, 탄력, 압축, 억압의 특성을 갖고 있다> 바로 악의 특성이 아닌가. 베르나르댕 씨는 악이 아니라, 불길한 가스가 깃들어 잇는 거대한 공허였다.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러 시간을 앉아 있었으므로 나는 처음에 그를 비활동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나를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P140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침대 속에서 몸을 뒤척였다. 안타깝고 어이없게도, 약한 자들은 그런 데서 의미를 찾으므로써 위안을 삼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물론 나 이전에 그 사실을 깨달은 철학자들은 많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지혜란 아무 쓸모도 없었다. 태풍이 닥칠 때, 그러니까 전쟁이나 불의나 사랑이나 병이나 이웃집 남자가 닥쳐올 때 인간은 언제나 혼자다. 막 이 세상에 태어난 고아일뿐.

P154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 실수가 특이한 것이라고 해서 경멸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나는 비겁하기 짝이 없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했다. 스스로의 궁극적인 행복과 존엄을 저버리지 않았던가. 속된 말로 하자면 남이 나를 조롱하는 것을 허용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아무 근거없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들먹였던 관습이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P162 다음 날 오후 4시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다음다음 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3 59분이 되면 내게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온갖 증상이 나타나곤 했다. 숨쉬기가 힘들고 식은땀이 났다. 영락없는 파블로프의 개가 아닌가. 4시 정각이 되면 나는 너무나 신경이 곤두선 나머지 정신이 혼미해지곤 했다. 4 1분이 되자 승리감에 찬 전율이 내 온몸을 관통하곤 했다. 기쁨으로 펄쩍펄쩍 뛰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억제해야 할 정도였다.

P214 나는 그가 시계에 집착하는 이유를 퍼뜩 깨달았다. 삶을 사랑하는 이들과는 반대로 필라메드는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축복했다. 자신이 갇혀 있는 우리 속에서 유일한 빛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죽음이었다. 따라서 그의 집 안에 있는 스물다섯 개의 시계는 느릿하고 확실한 리듬에 따라 그를 죽음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죽고 나면 그는 더 이상 자신의 부재에 입회하지 않아도 되리라. 육체가 없으니 그 안에 담길 공허도 없으리라. 삶 대신에 무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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