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에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라는 소설을 읽었었다. 잔잔하면서도 마음속에 오래 남는 책이었고 내가 지인들에게 강추하는 책이기도 했다. 한창 마음속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밀어내고 있을 때 이도우 작가의 다른 책을 접했었지만 잠시 미뤄 두었었다. 언젠가 읽겠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마음으로… 그런데 마음속의 묵은 숙제를 하듯 가던 여행길 인천공항에서 이 책을 만났을 때는 망설임없이 집어들었다. 그리고 한창 겨울인 지금 나는 이 책을 읽었다. 잘한 일 같다. 한참 겨울인 지금 이 책을 읽은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혜천시에서 보냈던 혜원은 이번에는 몇 년만에 이모가 있는 혜천의 호두하우스 펜션으로 도피차 내려왔다. 버스에서 내려 길옆의 굿나잇책방을 보고는 이런 곳에 책방이 있다는 것에 의아해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곳은 학생시절 존재조차도 크게 인식하지 않았던 호두하우스 아랫집의 임은섭이 하는 책방이었던 것. 게다가 그 서점에는 책을 읽다가 다음에 다시 읽기 위해 킵핑 해두는 코너도 있었다. 펜션운영을 내버려둔채 매사가 시큰둥하고 성의없는 명여 이모와 다투고 펜션을 나온 혜원은 굿나잇 책방에 들르게 되고 우연히 책방에서 아르바이트할 기회를 갖게 된다. 혜원은 그 책방에서는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책모임에도 합류하고, 책방 매니저로써 책방 분위기도 조금씩 바꿔보고 이벤트도 진행하게 되는데…
들뜨지 않아서, 소란스럽지 않아서, 너무 빠르지 않아서, 너무 무겁지 않아서 좋았다. 이런 템포를 가진 사람을 동경하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솔직히 너무 소란한 상황들에서 조금은 비껴나 있고 싶기도 했다. 비록 나 자신은 일상생활에서 목소리 큰 사람이면서도.
굉장히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지만 그렇게 다가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준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은 혜원. 그와 관련된 엄마와 이모가 가진 비밀. 학창시절 혜원의 비밀을 지키지 못해 오랫동안 혜원으로부터 소외되었던 보영. 그리고 자신도 마음속에 상처가 있으면서 항상 마음속에 있는 혜원을 기다리며 자신이 가진 시간들을 성실히 살아가는 은섭.
내가 보기에 이 책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이해하고 넘어가는 이야기이다. 혜원과 엄마, 혜원과 명여 이모, 혜원과 보영, 결국엔 자리를 찾기 위한 삶의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 결국엔 자신이 있을 곳을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 혜원과 은섭의 일 말고도 또 다른 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할까.
조곤조곤한 은섭의 말투와 책방 블로그의 비밀 폴더에 고백되어 있는 은섭의 마음.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알 수 없었던 사랑에 빠진 남자의 마음이 이런 것이구나 하면서 보게 되는 글들. 책 속에 소개된 독립출판물들이 결국엔 실제가 아니라니 아쉽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굿나잇 책방처럼 책을 키핑해 놓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좋을 것 같기는 하다. 내가 사는 곳에도 문화플랫폼이라면서 심야 책방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도 보고 책도 읽지만 선뜻 손들게 되지는 않는다. 온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 때문일 것 같다.
오랜만에 완독한 책. 비록 지금 내 주위에 눈은 없지만 겨울에 읽기를 정말 잘한 것 같다.
P388 한때는 살아가는 일이 자리를 찾는 과정이라고 여긴 적이 있었다. 평화롭게 안착할 세상의 어느 한 시점. 내가 단추라면 딸깍 하고 끼워질 제자리를 찾고 싶었다. 내가 존재해도 괜찮은,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방해도 받지 않는, 어쩌면 거부당하지 않을 곳.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어디든 내가 머무는 곳이 내 자리라는 것.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가면다면 스스로가 하나의 공간과 위치가 된다는 것. 내가 존재하는 곳이 바로 제자리라고 여기게 되었다. 가끔은, 그 마음이 흔들리곤 하지만. - 굿나잇 책방 블로그 비공개
중고등학교 시절을 혜천시에서 보냈던 혜원은 이번에는 몇 년만에 이모가 있는 혜천의 호두하우스 펜션으로 도피차 내려왔다. 버스에서 내려 길옆의 굿나잇책방을 보고는 이런 곳에 책방이 있다는 것에 의아해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곳은 학생시절 존재조차도 크게 인식하지 않았던 호두하우스 아랫집의 임은섭이 하는 책방이었던 것. 게다가 그 서점에는 책을 킵핑 해두는 코너도 있었다. 펜션운영을 내버려둔채 매사가 시큰둥하고 성의없는 명여 이모와 다투고 펜션을 나온 혜원은 굿나잇 책방에 들르게 되고 우연히 책방에서 아르바이트할 기회를 갖게 된다. 혜원은 그 책방에서는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책모임에도 합류하고, 책방 매니저로써 책방 분위기도 조금씩 바꿔보고 이벤트도 하게 된다. 호두하우스 펜션이 한파로 인해 수도관이 얼고 보일러가 고장나자 이모는 혜원은 남겨둔 채 자신의 친구인 수정의 집으로 가버리고 혜원은 은섭의 배려로 그의 집에 머무르기로 한다. 혜원은 책방 일을 하면서 은섭과 가까워지고 중학교 동창회에서 은섭이 비밀스럽게 간직한 그의 마음도 알게 되면서 점점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염증이 있는 한쪽 눈을 방치해 실명에 이른 명여 이모를 이해할 수 없었던 혜원은 어느 날 명여 이모의 고백과도 같은 글을 은섭을 통해서 받게 되는데, 이를 통해 엄마와 명여 이모의 비밀을 알게 된 혜원은 명여 이모의 삶이 왜 이렇게 흘렀는지 알게 되면서 화를 내며 서울로 올라가기로 한다. 하지만 은섭과 헤어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고 의도하지 않았으나 은섭에게 상처입히게 된다. 결국 서로 사랑한다는 고백을 나누고 혜원은 서울로 돌아가지만 명여 이모를 마냥 원망하는 것도 아니다. 봄이 되고 예전 동료들과 학원 강사를 하게 된 혜원은 명여 이모의 친구인 수정이 혜천시 스토리 공모전에 당선되자 축하하기 위해 혜천시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다시 반가운 사람들을 만난다. 이제 호두나무 펜션에는 이모가 있는 것이 아니고 펜션 운영을 위해 내려온 엄마가 마중해주고 혜원은 은섭과 조우하면서 함께 있자는 고백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