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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양들 1

[도서] 밤의 양들 1

이정명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뒷퉁수 제대로 맞았다

작가의 전작 중 뿌나와 바람의 화원의 인식이 강해서였을까,

나는 이번 신작도 팩션이라길래

당연히 조선시대 이야기인 줄 알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책을 펼쳤더니만

배경이 유월절이라니ㅋㅋㅋ!!

게다가 읽다보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내용이지 싶더니

결국 등장해 버렸다. 그 인물이...

, 이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이야기다,라고

깨닫는 순간 이대로 책장을 넘겨도 되나 싶은 전개가 펼쳐진다.

 

유대의 최대 명절 유월절을 일주일 남기고

예루살렘에는 각지에서 순례객들이 몰려드는 가운데

불경스럽게도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살인죄로 유월절 십자형을 기다리고 있던 죄수 마티아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성전수비대장의 지시하에

유월절이 오기 전까지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게 된다.

성전문설주에 피가 낭자한 현장에 이어

다음 날 실로암샘이 발갛게 피로 물드는 사건이 벌어지며

연쇄살인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항간에 떠도는 가짜 메시아의 소문과

시체상태와 살해방식에 어떤 공통점을 발견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으니

로마의 현자 테오필로스 역시 총독 빌라도의 부탁으로

같은 사건을 조사 중으로

마티아스와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부딪히기 일수였다.

적국이지만 같은 목적을 위하여 손을 잡는 두 사람은

각자의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기로 한다.

테오필로스는 배운 것은 없지만 총명한 마티아스가 맘에 들었다.

곧이어 세 번 째와 네 번 째 살인이 벌어지고

그들의 죽음 뒤에 반드시 갈릴리의 선지자가 있음을 확신하지만

살인용의에 있어서 두 사람의 의견은 달랐다.

자신의 추측이 격파당하면서도

현자의 학식과 인품에 끌리는 마티아스였지만

그는 자신이 살기위해선 갈릴리의 선지자가 살인자여야만 했다.

그러나 예수의 행적을 쫓으면 쫓을수록

마티아스의 마음에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한다.

유월절 전날 예수와 제자들의 만찬을 숨어서 몰래 지켜보던 마티아스는

예수가 살인자일 수 없음을 알아버린다.

 

죄를 지은 사람은 자신이 지은 죄값을 반드시 치르리라 생각하던 마티아스 앞에

자신이 짓지 않은 죄값을 치르려는 예수가 그를 혼란에 빠뜨린다.

그러나 마티아스 또한 자신과 상관도 없는 여인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죄인이 되고

마지막에 자신의 목숨과 진실을 바꾸지 않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테오필로스의 가슴을 쥐어뜯게 만든다.

흉포한 부모 밑에 태어나 거지로 살다가

기사단장의 노림수에 넘어가 잔혹한 환경에 쳐박히면서도

굳세게 살아남아 또 이용당하고 마는 마티아스의 삶이

읽는 내내 너무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가능성이라는 사라져버린 자신의 꿈을 생각하다

그것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 순간만큼 마티어스가 그렇게 짠할 수가 없다.

여러 종교세력이 각축을 벌이던 혼돈의 예수살렘에서

자신의 십자가를 온전히 짊어지고 간

마티아스의 긴 오후가 끝이 났다.

 

 

유월절 : 이집트 노예해방 출애굽기 기원 유대 최대 명절

 

42. 그럴 수만 있다면 좋을 것이다. 지긋지긋한 살인죄를 씻고 결백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죄지은 자에겐 여호와의 벌이 있을 뿐이다. 마티아스가 아는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는 분이 아니라 화내시고 정죄하는 분이었다. 자신이 저지른 행위는 자신이 책임지고 자신이 범한 죄의 대가는 스스로 치르는 것이 여호와의 정의였다. 그 절대적 도덕률에는 어떤 예외도 있을 수 없었다.

 

80. 로마를 다스리는 자가 횡제라면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존재는 신이었다. 그 신의 이름은 여호와였다. 인간이 다스리는 로마가 그토록 정연하고 이성적인데 신이 다스리는 땅은 어찌 이토록 시끄럽고 혼란하단 말인가? 만약 신이 전지전능한 존재라면 어떻게 자신의 땅을 저토록 불모지로 내팽개치고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백성을 혼란 속에 내버려둔단 말인가? 빌라도는 그들이 떠받드는 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235. 이 민족이 그토록 긴 세월 동안 간절하게 기다린 메시아는 억압과 고난을 떨친 승리자의 모습이어야 해. 우리 곁에 와 있으면서도 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메시아라면 민중의 좌절을 어떻게 달랠 건가? 우리는 메시아를 얻는 대신 희망을 잃는 셈이 되는 거야. 이 민족이 수천 년 지켜온 간절한 열망을 빼앗을 수는 없어. 우리는 이 민족에게 현실을 견딜 힘을 주어야 해. 미래에 대한 희망 말이야.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미 와버린 메시아는 메시아가 아닐지 몰라 민중은 현실에 구현된 이상이 아니라 구현되지 않은 이상이 존재하는 현실을 살아가야 하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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