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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들

[도서] 집행관들

조완선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역사학 교수 최주호는 낯설고 생소한 이의 전화를 받는다. 허동식이다. 동식이 대동고등학교 3학년 3반이라는 힌트를 준다. 그제야 주호는 동식을 어렵게 떠올리는데.

 

“네가 쓴 칼럼······ 늘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이윽고 인사치레의 안부를 끝낸 그가 뜻밖의 소리를 툭 내던졌다.

“고생이 많다······. 인간쓰레기들을 상대하느라······.”     (p. 13)

 

주호처럼 글이라는, 어찌 보면 우회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바로 집행을 하는 이들도 있다. 집행자들이다.

 

허 선배가 찾아온 지 한 달이 지나서야 그럴 듯한 명분을 찾았다. 수천만 명 중에, 쓰레기를 전담 처리하는 청소부가 몇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 정의를 이루지는 못해도 이 사회가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 몇 명 중에 한 명이 되기로 했다. 허 선배의 말대로 분노를 꼭 가슴에 담아둘 필요는 없었다. 심장이 느끼는 대로, 분노를 마음껏 표출하면 됐다. 보내야 할 종자를 보내고 나니 일말의 가책도 받지 않았다.     (p. 142)

 

“저는 지금도 그날의 다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윤 실장의 다짐은 명료했다. 세상을 뒤집을 수는 없지만, 이 사회가 바로 서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인간쓰레기들을 처치해서 사회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허동식의 생각은 달랐다. 이 세상을 바꾸든 갈아엎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 세상이 좀 더 나아지는 데 힘을 보태고 싶은 생각도 없다. 민족정기니 사회 정의니 모두 관심이 없다. 처음부터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지 않기로 했다. 그저 이 사회에 기생하는 악의 종자들을 걸러내 저세상으로 보내는 것뿐이다.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 목표가 단순할수록 집중력이 강해지는 법이다.     (p. 144)

 

분노를 표출하지 못해 힘든 것일까. 그렇다고 소설 속 집행자들처럼 마음껏 분노를 표출할 수도 없고. 게다가 그들은 분노를 표출하고도 들키지 않는 전문가들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 대리 만족이 되기에. 더 나아가 인간쓰레기들도 소설을 읽었으면 좋겠다. 자신들이 끔찍한 사체로 발견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것도 좋겠고. 

 

조완선 작가는 ‘작가의 말’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분명 기쁠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소설도 재밌게 읽었다고도.

 

조금이라도 ‘집행관들’의 순수한 열정을 헤아린다면, 적폐들과의 전쟁 속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정말 그들의 바람대로 세상이 바뀐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p. 427  작가의 말)

 

굳이 첨언하자면 오타가 종종 보인다. 

p. 31 폐가망신 → 패가망신

p. 108 호위호식 → 호의호식, 잰 걸음 → 잰걸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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