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순간이다.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남자에게 기회를 주지만 남자는 다가설 용기가 없고, 여자는 뒤돌아선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뜨는 자막이다. 첸 부인(장만옥)이 문을 열고 앞으로 살게 될 집의 내부를 확인한다. 주인아주머니는 마침 동향이라며 반가워한다. 첸 부인이 배우자와 집을 쓰기로 하고 나가는데, 들어오려는 이가 있다. 차우(양조위)인데, 그도 아내와 집을 쓰고 싶어 한다. 주인아주머니는 다른 이가 쓰게 됐다며 바로 옆집을 알아보라고 한다. 주인 아들이 결혼해서 나갔으니 집이 비워진 상태라고. 같은 날 집을 알아보러 왔던 첸 부인과 차우는 같은 날 이사를 한다. 같은 건물 옆집이라 이삿짐을 나르는 이들도 헷갈려 한다. 첸 부인네 가구나 책이 차우네로 가는 식이다. 차우가 잘못 온 일본어 책을 첸 부인에게 직접 전하러 간다. 차우가 일본어 공부하느냐고 묻자, 첸 부인은 남편 것이라며 남편 회사 사장이 일본인라고 답한다. 거리상 아주 가까운 이웃이 된 첸 부인과 차우는 우연히 자주 마주친다. 특히 첸 부인이 저녁에 국수를 사러 갈 때인데, 강조하는 것처럼 Yumeji’s theme가 반복해서 흘러나온다. 처음에는 첸 부인이 국수를 사가지고 나가면 차우가 나타나는데, 점점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비긋다가 같이 들어오기도 한다. 한번은 주인아주머니가 첸 부인에게 국수 사러 가지 말고 식사를 함께하자고 한다. 첸 부인은 국수가 좋다며 기어코 나간다. 그런 첸 부인을 보고 주인아주머니가 중요한 말을 한다. 국수 사러 가는데, 왜 저렇게 예쁘게 꾸미고 나가냐고. 이 말은 다른 상황이기는 하지만, 차우 부인이 먼저 한 적이 있다. 첸 부인이 어디론가 나가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에게 어디 가는 거냐고 묻는다. 주인아주머니가 남편을 마중하러 공항에 가는 거라고 답한다. 그때 차우 부인이 어쩐지 예쁘게 꾸민 모습이었다고 말한다. 미묘하기는 하지만, 첸 부인이 꾸미는 목적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첸 부인의 남편과 차우 아내가 더 빨랐던 모양이다. 둘은 이미 깊은 관계인 듯, 선물까지 주고받는다. 첸 부인과 차우는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된 건지 알아보려고 하는데.
왜 첸 부인과 차우는 불륜의 시작이 궁금했을까. 상황극까지 펼치면서 서로에게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을까. 어쩌면 그들도 시작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누가 봐도 사랑의 감정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행동하지 못하는 상태, 난처한 순간이다. 첸 부인은 고개를 숙인 채 차우에게 기회를 주지만 차우는 다가설 용기가 없고, 첸 부인은 뒤돌아선다. 차우가 나중에 많은 일이 나도 모르게 시작된다며 용기 내어 고백하지만, 이별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결국 차우에게 지나간 세월은 먼지 쌓인 유리창처럼 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수 없기에 그는 여전히 지난 세월을 그리워한다. 만약 그가 먼지 쌓인 유리창을 깰 수 있다면 지나간 세월의 그때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유리창을 깰 수 없는 차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비밀을 나무에 전하고 진흙으로 막아버리는 것밖에 없다. 어쩌면 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 비밀로 치환되어 가는 순간순간을 그린 것은 아닌지. 매 순간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