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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빛난다

[도서] 모든 것은 빛난다

휴버트 드레이퍼스,숀 켈리 공저/김동규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이 책은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의 구절로 시작한다.

 

앞으로 고도의 문화를 가진 어느 시적인 민족이

그들의 타고난 권리로써 옛날의 쾌활한 오월제 신들을 불러내어,

오늘날의 이기적인 하늘 아래, 신들이 사라진 언덕에

그 신들을 다시 앉힌다면, 거대한 향유 고래는 틀림없이

제우스처럼 높은 자리에 군림하게 되리라.

 

이뿐만 아니라 오디세이아, 고대 비극들, 셰익스피어 작품들, 신곡 등 문학작품들을 통해서 두 저자의 철학을 펼쳐 보인다. 특히 <모비 딕>의 분석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얼마 전 드라마 아저씨에서 주인공은 항상 별거 아냐라는 말을 자주 한다. 현실의 사람들도 사는 게 뭐 별거 있어?” 라고 허망하게 말하는 걸 자주 듣는다. 인생이 별거 아니다는 말 - 삶 전체가 의미 없음 - 에 담겨 있는 허무주의 늪에 빠진 현대인의 실의에 작가들은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마다 선택의 무자비함에 놓여 있고, 그때마다 방황하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참다운 동기가 없다는 점에 절망한다. 확실성을 우리의 삶과 행동에서 발견하기 어렵다. 오늘날의 허무주의에 맞서 우리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가 이 책의 큰 주제이다.

 

신들로 가득했던 호메로스 시대에는 사람들이 여러 상황에서 여러 신들의 도움을 받는, 인간이 신의 보호를 받는 환경에서 살았다. 중세에 와서는 고대의 다신주의에서 오는 정조를 잃고, 일신주의 세계 속에서 모든 것은 신의 뜻에 따라 세상이 돌아간다는 원리가 지배했다. 삶의 모든 선택의 짐 없이 모든 것을 신의 손에 맡겼다. 그 덕분에 모든 것엔 신의 뜻이 있으므로 우리에겐 선택도 없고 책임도 없다. 모든 것이 의미가 있고, 삶이 수월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서 데카르트, 칸트 등 계몽주의에 의해 신의 자리는 없어지고 그곳에 인간중심이 들어선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독립, 주체성, 자기만의 가치를 정립하면서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려 시도한다. 그 결과 우리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자기를 움직이는 것은 전혀 없는 허무주의로 빠져든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란 책이 생각났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티끌만치도 남아 있지 않은 곳, 생존의 희망도 없는 곳, 절망만이 있는 유태인 수용소에서, 작가가 생존한 자들의 공통점으로 발견해 낸 것이 있었다. 면도라도 하면서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 열악한 환경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사람들은 살아남았던 것이다.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우리가 허무주의에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으로 작가는 다신주의로 돌아갈 것을 제안한다. 행복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를 낮춤으로 더 행복해 질 수 있다. 일상이 선사하는 의미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 이미 주어져 있는 행복과 즐거움을 발견하는 능력이 우리 삶에 대한 의미를 발견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날 그날의 실존에 대한 정조를 찾고 기르도록 하자는 것이다.

다신주의라 해서 진짜 여러 신들을 믿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오래전 제사의식에서 느꼈던 정조, 스포츠 게임에서 느끼는 황홍감, 연대감 등을, 우리의 일상의 현상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서, 느낄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 책을 통해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빛나는 모든 것에 감사와 경외를 갖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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