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성] 저넷 월스 지음
암울한 어린 시절의 역경 속에서도 피어나는 가족애와 굴하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는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가 생동감 있고 재미있게 작가의 수려한 글을 통해 승화된다. 쉼없이 읽게 하는 재미와 문장력에 감탄한다.
이 책은 저자가 택시를 타고 뉴욕 거리를 지나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노숙자인 자신의 어머니를 발견하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책을 읽으며 전에 읽었던 [배움의 발견]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두 책 모두 부모들로 인해 자녀가 겪는 불운한 어린 시절을 다루고 있다. [배움의 발견]에서는 부모의 광신적 맹신이 공교육을 부정하고, 살벌한 삶의 현장으로 자녀를 몰아넣고, 심지어는 자녀의 목숨을 위태롭게까지 만들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굶지는 않았다. 그러나 [유리 성]에서는 아이들이 굶기를 밥먹듯이 한다. 막내 머린이 굶어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주인공 저넷은 쓰레기장에서 얻은 퍼런 곰팡이 핀 초콜릿과 친구들이 먹다 버린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랜다.
처음에는 [유리 성]에 나오는 부모들이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라 착각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 하며 내가 느낀 그들은 단지 게으르고 무책임한 부모들였던 것이다.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하고,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수시로 도망치듯 이사를 하고, 사회 규범을 우습게 여기고, 자녀들을 굶주림과 헐벗음으로 내몰고, 제대로 씻기지도 입히지도 못해 자녀들을 또래 집단에서 따돌림 당하도록 방치한다. 아이들은 난방도 안되는 집안에서 벌벌 떨며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있는데, 엄마는 숨어서 혼자 초콜릿을 먹고,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폭행을 일삼는다. 초콜릿을 먹다 들킨 엄마는 말한다. ”어쩔 수 없어, 난 단맛 중독이야, 너희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인 것처럼.“ 이 철없는 부모를 어쩌란 말인가. 의아한 건 아이들이 이런 부모에게 분노를 느끼지 않고 이해해준다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 두터운 사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부모들의 가지가지의 변명은 과히 천재적인 언변의 소유자임을 들어낸다. 어떨 땐 이들이 정말 가치관이 뚜렷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지, 변명만 일삼는 현실 도피자인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 그렇지만 난 어떻게 부모가 이렇게까지 이기적이고 무책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분노가 터지다. 격분이 가라앉질 않는다. 이 사회에 어른들이 아이들을 무방비로 방치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인지, 답답한 마음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어린 주인공 저넷은 어떻게든 상황을 좋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자포자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린 아이라는 제한된 여건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한계에 놓인다. 최악의 여건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타락으로 내던지지 않고 꼿꼿이 일어나는 저넷은 불굴의 자의식을 선연히 드러내는 인물이다. 끊임 없이 책을 읽는 저넷, 그 덕에 성장한 후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