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해변의 카프카 (상)

[도서] 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저/김춘미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15살, 누군가는 기억하고, 누군가는 기억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 보편적으로는 사춘기를 겪거나 혹은 그 바로 전의 시기일 것이다. 우리는 15살에 많은 혼란을 겪고, 고민한다. 이들을 기억하기도 하지만 끝내는 잊기도 한다. "해변의 카프카"의 주인공 소년 다무라 카프카는 말 그대로 격동의 15살을 겪고 있는 남자아이이다.
 
  다무라 군은 어머니가 없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서류 상에도 기록이 없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어머니는 그가 4살 무렵에 그의 누나와 함께 집을 나간다. 다무라 군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하고, 누나와도 성적 관계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아버지의 예언을 듣고 자란다. 그는 예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15살 생일에 가출을 결심한다. 그의 가출은 충동적인 것이 아니다. 가출은 아버지의 예언,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야기에는 다무라 군과 평행하는 주인공이 존재한다. 다무라 군이 아이도 어른도 아닌 중간자적인 존재라면 두 번째 주인공인 나카타 상은 죽음과 삶 사이의 중간자적인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불의의 사고를 겪어 오랜 기간 사경을 헤맨 뒤로 글자를 읽을 수 없게 되나 고양이들과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꿈과 잠, 혼수상태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이것들은 모두 평행의 세계로 통하는 길이다. 나카타 상과 다무라 군은 "꿈"을 통해 이어졌다. 나카타 상이 조니워커상을 죽일 때 그의 손에는 피 한 방울 묻지 않았지만 잠들었던 다무라 군의 손은 선혈로 낭자했다.

너는 상상력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꿈을 두려워한다. 꿈속에서 짊어지기 시작할 책임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잠을 자지 않을 수는 없고, 잠을 자면 꿈이 찾아온다.

꿈은 평행하는 세계와 통하는 길인 동시에 인물들의 잠재되어 있는 욕구가 발현되는 공간이다. 다무라 군은 꿈속에서 사쿠라 짱, 그리고 사에키 상과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나카타 상은 꿈속에서 글자를 읽을 수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물들의 욕구가 인물들이 거스르거나 거스르려고 하는 세계의 의지이다.

"하지만 호시노 군, 나카타는 요즘 자주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나카타는 글자를 읽을 수 있습니다. "
<下 . 228P.>

1. 가장 터프한 15살 소년, 다무라 카프카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다무라 군은 오이디푸스의 예언을 안고 살아간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한다'는 아버지의 예언을 거부한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그의 유전자에 대한 증오로 이어진다.
그는 철저하게 아버지의 것인 듯한 자신을 증오한다.

터프하다는 단어는 '남성성'을 나타내기 위한 단어이다.

그러나 그의 '터프함'은 아버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여성성'이 있을 때, 즉 그의 어머니를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
그가 예언을 두려워하면서도 어머니를 찾는 까닭은 어머니를 통해서만 완전해질 수 있는 그 무엇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글쎄, 네가 해야 할 일은 아마도 네 속에 있는 공포와 분노를 극복하는 일일 거야.
거기에 밝은 빛을 집어넣어서 네 마음의 차가워진 부분을 녹이는 거지.
그것이 진짜로 터프해지는 거야.
<下. 279P.>

어머니, 하고 너는 말한다. 나는 어머니를 용서하겠습니다.
그러자 네 마음속에서 얼어붙어 있던 무엇인가가 소리를 낸다.
<下 . 375p.>

다른 세계에서 그는 가설 속 그의 어머니인 사에키 상의 피를 마신 후, 그 세계를 빠져나온다.
그는 을 통해 아버지를 죽이고, 가설 속 어머니와 관계를 맺고, 어머니의 피를 마신다.
잠에서 깨어나 그는 새로운 세계의 일부가 된다.


2. 중간자적인 인물들: 오시마 씨, 다무라 군, 나카타 상, 사에키 상

오시마 씨는  다무라 군이 도서관에서 만나게 된 사람이다.
그는 여성의 성을 가진 게이이다.

나는 정신적으로 하나의 남성으로 살고 있습니다.
(…)
나는 이런 모습은 하고 있어도 레즈비언은 아닙니다. 성적 기호로 말하면, 나는 남자를 좋아합니다. 즉 여성이면서 게이입니다.
버자이너는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고, 성행위에는 항문을 사용합니다.
클리토리스는 느끼지만, 젖꼭지는 그다지 느끼지 못 합니다. 생리도 없습니다.

다무라 군은 편부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겉보기에는 남성성이 극대화된 인물이나, 그 남성성은 완전하지 못하고, 시기적으로도 사춘기를 겪고 있다.

카타 상은 그림자가 반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고양이와 말할 수 있다. 고양이가 예로부터 저승과 가까운 동물인 것을 생각하였을 때 이는 단순한 메타포로 넘기기 어렵다.
그는 과거의 것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오직 현재만을 느낄 뿐이다.

다무라 군의 가설 속 어머니인 사에키 상은 추억 속에서 살아갈 뿐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기록하고 추억한다.
그녀 역시 그림자가 절반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카타 상이 현재의 인간이라면 사에키 상은 과거의 인간이다.
그녀의 유령은 15살이다. 그녀의 유령은 어린 옛 애인을 끊임없이 추억한다.

인물들은 성장해나가거나, 죽어간다.
성장해 나가는 것은 결국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거니까 죽어간다고도 볼 수 있지만, 사에키 상과 나카타 상의 경우는 성장 없는 죽음을 향해 간다.
그러나 그들이 삶과 죽음에 한 발씩 걸치고 있는 것을 고려했을 때 그 죽음은 중간적인 삶보다 완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범상치 않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다무라 군이 "완전해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요컨대 어떤 종류의 불완전함을 지닌 작품은 불완전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上 . 193p.>

3. 운명에 굴복하는가, 운명을 극복하는가

내가 느끼는 하루키 소설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사건이 일어날 때 그 사건이 상당한 당위성을 가지고 있는 척(?!)하는 것이다.
사건을 그렇게 '운명지어진' 것처럼 '돼야만 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혹은 독자로 하여금 그렇게 느껴지도록 한다.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인물들이 운명을 정통으로 맞는다.
다무라 군은 피하려 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유언을 '그럭저럭' 불가항력적으로 실현한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의지로써 어머니를 용서한다.
또한, 그녀의 가설 속 누나인 사쿠라와의 관계(육체적 관계가 아니다!)도 이어나간다.

이 역시도 예언(운명)의 일부로 봐야 하는 것일까?

그의 친부를 운명적이고 신적인 존재로 본다면 사에키 상(어머니적 존재)은 의지적이고 인간적인 존재이다.
독자가 보았을 때 사에키 상을 어머니로 볼 수 있는 근거들이 충분히 나오기는 하지만 다무라 군에게 있어서 사에키 상은 "유효한 가설"속의 어머니이다.
즉 어머니의 존재부터가 그의 친부와 같이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보통 어머니와 자녀가 좀 더 완전한 가족관계를 가지는 것과는 다른 설정이다

아버지가 그의 유전적인 것을 결정하였다면, 어머니는 그의 정신적인 것을 채워준다.
아버지를 버리고 어머니를 취하는(?) 것은 예언의 내용이다.
그러나 단어의 메타포적인 면을 보았을 때, 운명의 극복을 뜻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인물들은 모두 세계의 의지에 반하는 자들이다.
나카타 상은 유년시절 끊임없는 과제와 목표를 제시하는 가정환경 속에서 단념과 좌절을 맛보고,
군인들은 2차 세계대전에 처한 상황에서 죽고 죽이는 것을 반대하고,
사에키 상은 자신의 애인을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였으며,
카프카 군은 예언을 거부한다.

저는 다만 그를 잃지 않기 위해, 밖에 있는 것이 우리 세계를 훼손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돌을 열어야만 한다고 결심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당연한 결과겠지만 저는 그 벌을 받았습니다
<下. 287P>

그러나 그들이 다른 세계를 경험한 후의 모습은 각각 다른 양상을 보인다.
나카타 상은 문자를 터득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가정은 그에게 더 이상 엘리트적인 자질을 요구하지 못한다.
생의 끝에서 글자를 읽을 수 있기를 바라게 되는 그는 죽음으로써 본래의 그로 돌아간다.
군인들은 그 세계에 남는다. 전쟁은 전인류가 맞는 운명이었기에.
사에키 상은 애인을 잃고 추억 속에서 살아간다. 그녀는 자신의 기억을 불살라 버림으로써 추억의 사슬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네가 해야 할 일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거야.
그녀가 그때 느꼈던 압도적인 공포와 분노를 이해하고, 너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거야.
그것을 계승하고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바꿔 말하면, 너는 그녀를 용서해야만 해.
(…)
그리고 그 외에 구원은 없어.


카프가 군은 다시 세계로 돌아온다.
어머니의 피를 마시고, 그녀를 용서한다. 온전히 자신의 일로 받아들인다.
이는 그녀를 파괴하는 행위가 아니라 동일시의 과정이며, 그가 완전해지는 방법이다.
그는 운명을 거스르기보다는 운명을 내면화하여 완연하게 실현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세계에 남을 수 있었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인간이라는 건 실제로는 그렇게 쉽게 자기 힘으로 사물을 선택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4. 조니 워커 상 VS. 까마귀 소년

까마귀 소년을 카프카 소년의 내적 자아로 본다면, 조니 워커 상은 그의 아버지의 내적 자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 권에서는 조니 워커 상과 까마귀 소년의 결투 장면이 나온다.

까마귀 소년은 이행하는 영혼인 그를 사납게 파괴한다.
그러나 그의 혓바닥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무언의 비웃음이 까마귀 소년을 파고든다.

이봐,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웃기지 좀 말게나. 어떤 힘을 가지고도 자네는 나를 해칠 수 없네. 자네한테는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말이야. 자네는 단지 얄팍한 환상에 지나지 않아.




카프카 소년은 생각한다.

아버지의 예언은 자신을 분신으로 생각하는 아버지의 생각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라고.
유명 조각가인 아버지에게 있어서 그는 다른 조각품들과 같이 하나의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자신의 유전자가 철저하게 투영된 작품. 자신과 놀랍도록 닮은 작품.

그의 모험 과정은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너는 무언가를 잘라내거나 버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해.
우리는 그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으로 삼켜 버리는 것뿐이야."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의 피를 마신 그는 자신의 태생을 파괴함으로써 완전해질 수 있었다.
파괴가 재탄생의 시작이라면,
파괴는 그 이름 자체인 동시에 생명이고, 죽음은 삶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싸움을 끝내기 위한 싸움이란 어디에 없어.
싸움은 싸움 자체 속에서 성장해 가거든.
<下. 279P>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