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정문을 넘어가면 보이는 현판이 돈화문이다. 돈화... 중용(中庸) 30장을 보면 소덕천류(小德川流)와 대덕돈화(大德敦化)에 대한 글을 보게 된다. 사소한 덕(인품과 덕성, 모든 존재의 바탕)은 개울과 같고, 이들이 모여 이루는 넓고 큰 인덕은 천지만물을 돈후(마음이 도탑고 敦, 정이 두터움 厚)하게 변화시킨다는 의미일 것이다. 비유하자면 대덕은 큰 인덕 또는 그것을 지닌 사람을 뜻한다. 조선 시대의 개념이면 군주, 지금은 대통령이나 지도자급이라 할 수 있다. 도탑다는 말은 '서로의 관계에 사랑이나 인정이 많고 깊다'라는 뜻이니, 대덕돈화란 지도자급 위정자들이 큰 인품(어진 마음)으로 백성들을 두루 편안하게 살피겠다는 의지가 아니겠는가.
중용의 새로운 책을 읽게 되면 습관처럼 윗부분을 찾아본 후, 그 다음으로 4장을 펼쳐 人莫不飮食也。鮮能知味也(인막불음식야 선능지미야, 사람이 모두 먹고 마시지만, 맛에 정통한 사람이 적은 것과 같다) 부분을 찾는다. 의미와 해석에 관한 도올 선생의 풀이가 참 멋들어졌다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는 <중용, 인간의 맛>에서 도의 과·불급을 다루면서 바로 이 '맛(味)'의 의미를 설명하는데, "맛은 생리적 욕구의 차원을 넘어서는 문화적 감각이며, 심미적 감성의 압축"으로 보면서, "중용은 과·불급의 문제가 아니라 맛의 문제라는 것을 공자는 천명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맛은 감성과 이성을 매개하며 필연과 자유를 융합한다는 문구가 제법 인상적이었다.
* 도올 선생의 중용 관련 책은 두어 권이 있는데, TV 강의와 연결된 『중용, 인간의 맛』이 좋았더랬다.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열정, 박학하면서도 현실감각이 살아있는 그만의 해석이 참 괜찮았다. 중용이 내포하고 있는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인간 내면의 본성을 회복하는 길'을 제법 적절한 비유로 설명해 내지 않던가. (물론 도올에 대한 비판도 알고 있다. 뭐 도올의 책은 "위대한 서론만 존재한다." 같은...)
『중용의 연장통』은 뜻풀이나 해석이 아닌, 가상 인물(직장생활이 고달픈 장 대리와 재야의 고수라 할 수 있는 신 차장)을 내세워 고단한 우리네 삶을 보듬는,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풀어내는 포맷이다. 중용을 삶 속으로 이끌어 들이는 저자의 공력이 예사 공부로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저술(편집)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것도 느껴졌다. 목차의 소제목 옆에 4개의 연장((망치, 톱, 드라이버, 줄자) 아이콘이 붙어있는데, 낡은 사고를 깨트리는 지혜가 필요할 때(망치),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자르고 삶을 정돈해야 할 때(톱), 느슨해진 현재의 자신을 다잡아야 할 때(드라이버), 자신의 현재 위치를 확인하고 앞일을 준비할 때(줄자) 이 아이콘을 참고하여 읽어보라는 배려다.
하지만 책에 대한 어떤 '기대감'하곤 거리가 있어 독후기를 쓸려 하니 좀 감감하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관심 분야에 대한 어떤 번뜩이는 해석! 이런 건 없었다…. 솔직히 가상의 인물이 펼치는 대화 내용이 그닥 와닿지 않았다. 나도 직장인이건만…. 이것이 문제다. 뭔가 번잡하고 중언부언한다는 느낌... 그래서 생각의 여백(자기만의 공간)을 차단해 버린 것만 같은... 삶의 얼개에 적용하는 중용이 견강부회(牽强附會)하다는 생각... 등등... 그냥 자기계발용으로 접근하는 그런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떤 임팩트도 없이 그냥 무덤덤한 책읽기가 되고 말았다. 그냥 이런 책이 있구나~ 저자가 중용을 공부 많이 했구나~ 하는 정도...
중용의 한 구절을 소개하면서 마무리를 해야겠다.
君子而時中, 小人而無忌憚也。군자는 알맞은 때를 가려 일을 하고, 소인은 일을 함에 거리낌 없이 자기 생각대로 한다. 군자는 중용이요, 소인은 반중용(反中庸)하는 이유이다. 중용을 읽다보면 다툼의 상징 '정치인'들이 괜히 미워진다... 똑똑한 의원이 한둘이 아니건만 마치 소인배 무리 같이 행동하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