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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

[도서] 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

리처드 플레처 저/박흥식,구자섭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기독교와 이슬람은 왜 서로를 적대시할까?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같은 신에게 복종하는 사람들 아닌가? 저간의 얽히고설킨 사정을 모르는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가끔 이슬람근본주의자나 극단주의 세력인 IS 등의 테러를 보면 평화의 종교인지 폭력의 종교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게다가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명한 말,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을 들으면 은근히 두려움(?)도 인다. 그러다 보니 이슬람권으로의 여행은 생각도 못 한다. 이런 생각의 이면에는 '위험하고 야만적인 집단'이라는 선입감이 달려 있다. 여기서 은근히 기독교 편에 서서 잣대를 들이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아마도 우리의 문화와 교육이 서구, 특히 미국의 영향을 받은 탓도 있을 거라 짐작해 본다. 

 

IS가 한창 악명을 드높일 때 말레이지아, 싱가폴, 인도네시아를 보름 동안 돌아다녔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생전 처음 들어가 본 이슬람 사원이 말라카의 사원이었는데, 왜 그렇게 맘이 떨렸는지…. (지금은 웃고 있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사원이 아주 아름답기도 했지만 늦은 시간이라 시내의 숙소까지 그냥 태워준 그 친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마웠다. 말레이시아의 행정 신도시 푸트라자야 푸트라 모스크에서도 한참을 앉아 있었는데 모두가 친절하였다. 결정적으로 쿠알라룸푸르의 이슬람 예술 박물관을 방문하면서 굳어 있던 마음이 풀어졌다. 르네상스의 원천이 이슬람 문화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본 문명의 자락은 놀랍고도 품격이 있었다. 천일야화의 한 장면이 절로 그려졌다….

 

독서동아리에서 읽을 책으로 『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_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초기 교류사』를 추천했다. 이슬람의 출현 이후 왜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이 왜 서로를 이해하는 데 실패했는지를 살피고 있다는 주제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탄생에서 십자군 원정까지, 두 문명이 만들어낸 충돌과 소통의 역사!'. 말만 들어도 흥미롭지 않은가. 일단 목차를 보니 5부로 짜여 있다. 1부에서는 '이스마엘의 후손, 이슬람의 시대를 열다', 2부는 '두 문명이 만든 새로운 질서', 3부는 '경계를 넘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4부는 '상업에서 지적 교류까지, 지중해에서 만난 문화', 마지막 5부는 '두 세계의 문은 어떻게 닫혔는가'로 적대와 공존을 넘나들었던 두 문명의 초기 교류사가 펼쳐진다.

 

첫 꼭지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차이」이다. 이슬람은 단일한 경전 꾸란을 믿는 종교이고, 그리스도교는 여러 경전을 묶은 성서를 신앙의 근거로 삼는다는 첫 출발이 흥미를 일으킨다. 이어 잘 알려진 삼위일체(하느님은 한 분이지만,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을 지녔다는 교리. 개인적으로 불교의 삼신불(三身佛) 사상과 너무 근본이 비슷하다고 느낌)와 성육신(成肉身, 하느님의 아들)을 거론한다. '이슬람의 준엄한 일신교는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와 성육신 교리를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불쾌해한다. 어떻게 한 하느님이 나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느님이 인간으로 변형될 수 있는가?'. 이런 극복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들이 서로의 이해와 화합보다는 멸시와 대립으로 이어진다. 

 


이슬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이미지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두 가지 구성 요소다. 하나는 무함마드가 거짓 선지자, 협잡꾼, 이단자이며 추종자들은 살인자이자 폭도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거기에 다른 요소들도 추가되었는데, 무절제와 성적인 방종에 대한 비난이다. ...(중략)... 무슬림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하느님의 마지막이자 가장 완전한 계시를 받은 선택된 민족이라는 확신으로 인해 더할 나위 없는 자부심으로 고취되어 있었다.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그리스도인들을 경멸의 대상으로 낮춰봤다. 게다가 다르 알-이슬람은 지상에서 하느님이 베풀어준 은총과 섭리로 그리스도 세계보다 훨씬 광대한 지역을 차지했다. (261쪽, 에필로그에서….) 


 

750년에 '압바스 혁명'이라는 정치적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이슬람 제국이 시작되는데, 이 압바스 왕가는 1258년 몽골족에 의해 망하기까지 이슬람 세계를 통할했다고 한다. 왕조 초기에는 그리스도교 세계와 간단한 접촉만 한 모양이지만, 아랍어와 교역(상인과 수공업자들의 활동이 존중되고, 경제적으로도 수고에 맞는 넉넉한 보상이 이루어졌다고 한다)으로 세를 불리면서 "인종보다는 종교와 문화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 다시 말해 '아랍' 사회가 아닌 진정한 '이슬람' 사회로 나아가게 된다. 초기엔 (부유하고 지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이슬람 사회의 탄생에 긴요한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슬람으로서도 세금과 유용한 지식의 확보라는 의미에서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는가 보다.

 

중세 그리스도교 세계는 십자군에 엄청난 관심을 기울였다는 건 영화나 책을 통해 피상적으로 알고 있긴 하다. 이슬람에 빼앗긴 성지를 되찾기 위해 일으킨 이 종교 전쟁은 도덕적 무게감과 위엄을 지닌 주제이지만, 200년 동안의 여덟 번 전쟁 과정을 보면 종교 전쟁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이 책에서도 '당대의 이슬람 화자들에게 십자군 원정은 이슬람 세계의 주변부를 성가시게 한 소규모 접전에 지나지 않았다. 십자군은 이를테면 한때 왔다가 떠난 이들이었다.'라면서, '십자군에 대한 무관심은 중세 이슬람 세계가 그리스도교 세계의 문화 전반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요소'라고 평가한다. 그런 면에서 기억에 남는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너무 서구적 시각으로 각색된 듯….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중세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관계사에 '몽골'이 중요하게 등장한 것이다. 1230년 이후 몽골의 진격은 헝가리와 폴란드 및 독일 지역까지 이어지자 (서유럽 공세가 멈춘 것은 1241년 우구데이 칸이 사망하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교황은 사절단을 보내는데, '몽골이 그들의 종교로 보이는 샤머니즘을 포기하고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단다. 그렇게만 된다면 몽골과 연합하여 이슬람 세력에 대항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물론 허황한 생각에 불과했을 뿐이고…. 몽골은 의외로 빨리 서방에서 눈길을 떼는데, 그 이유가 몽골이 거느린 수백만의 군마를 먹일 목초지가 우크라이나 서쪽에는 없었다나….

 

중세 서유럽 그리스도교 세계는 어떻게 무슬림-유대인-그리스인이 차지하고 있던 기존의 상업적 헤게모니를 점진적으로 잠식해갈 수 있었을까? 4부의 이런 테마도 흥미롭다. 십자군이 차지한 지역의 교역로를 통한 이국과의 교역(동서무역)이 훗날 세계를 지배하게 될 유럽의 상업 자본주의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라 하니 십자군 전쟁이 결코 실패한 건 아니라 하겠다. '장기적으로 볼 때 십자군 시대에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사이의 상호작용은 지적 분야에서 가장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라는 건 르네상스를 통해 알고 있는 바이고, 이 시기에 많은 아랍어 저작들이 라틴어로 번역 소개되어 세계 지성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한다. 문화와 상업경제의 부흥이 오늘날 서구의 번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14세기의 십자군 원정 이후, 두 세계의 문은 어떻게 닫혔는가? 이 책의 결론은 담백하다.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는 이슬람 세계로부터 얻을 것을 이미 다 얻었던 것이다. 번역자로 첫발을 디뎠던 서방의 지식인은 이제 스스로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이슬람 세계는 그리스도교 세계로부터 무언가 배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교 세계에 대한 경멸이 그 어느 때보다 강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십자군을 패퇴시키고 확장하던 오스만 세력이 몽골의 티무르 원정군에게 타격을 받고 휴지기를 가질 때, 십자군의 이상은 중세 후기의 그리스도교 세계에도 강력하게 살아남아 오늘에 이른다. 천년을 공존해온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힘이 작용하는 현대의 판도가 어떠하든 이제 좀 서로를 이해하고 화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생각으로 독후기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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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부자

    정말 정독하고 있었습니다.
    이슬람에 대한 거부감? 선입견 같은 것이 있는데요.
    조금이라도 이해를 하는 방향으로 리뷰를 읽었습니다.
    좋은 리뷰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01.12 12:3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eunbi

      좋은 평가 말씀, 고맙습니다...^^
      그냥 우리가 너무 서구(특히 미국)의 시각으로 이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2021.01.13 22:01
  • 파워블로그 나날이

    사람들의 심리 속에 내재한 신념과 종교적 약속 등이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들이 사고를 하고 있지만 동물들과 똑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어 자신 외에는 다른 것이 안 보일 경우가 많습니다. 전쟁 같은 것이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인권을 생각하고 상대의 생명을 생각함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전쟁이라는 것에서는 생겨납니다. <전쟁은 사람을 동물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그것에 사후의 모습까지 가져왔으니 심리적 압박감이 대단한 인간들의 삶이죠.

    2021.01.12 12:4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eunbi

      어떤 존재나 형태로든 신이 있다면, 전쟁은 신의 의지가 아니라 오로지 인간의 편향적 잣대로 재단한 까닭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욕망과 탐욕을 감추기엔 신의 이름이 가장 간단한 처방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런 집단이 없지는 않으니까요. 인간 종족의 특성이 그런 건가 봅니다.^^

      2021.01.13 22:07
  • 스타블로거 khori

    종교에는 관심이 전혀 없지만 역사적 스토리는 흥미진진합니다. 몽골에 관한 이야기는 징기스칸의 다양한 버전 영화에도 소개가 되고 체첸만 봐도 현재 흔적이 남아 있다는 생각입니다. 가끔 종교는 개인에게 필요한데 사회적으로 사람들을 우매화시켜서 사달을 내는 것도 사람의 문제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슬람쪽 책을 몇권보고 그쪽 동네 사람들을 만나볼 때 배울점도 많다는 생각이 존재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발명보다 훨씬 오래전에 그와 같은 기록을 갖은 곳이기도 하고.. 돈을 빌려줘서 친구가 망하면 돈빌려준사람이 20%인가 보상한다는 기준이 자본주의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잘 생각해보면 왜 그런지도 배울점이 있었던것 같아요. 내가 살고 있는 현 시대가 서구에 익숙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2021.01.12 13:2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eunbi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적대적 공존에서, 제 3자라 할 수 있는 몽골에 의해 변수가 작용하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정작 몽골은 그런 종교적 갈등에 관심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아라비아 숫자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인류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하겠지요. 어떤 책을 보니 인류가 발명한 No.1이 숫자 0 이라더군요. 옛날엔 정말 잘나간 무슬림입니다. 역사는 흐른다... 갑자기 이 말이 떠오릅니다.^^

      2021.01.13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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