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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도서] 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전미연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오랜만에 소설 천재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님 책을 읽어보았어요.





열린책들 출판사의 '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님을 좋아해서 책이 여러 권 있었는데


정리하고 정리하고 기억이 안 나고 안 나고..


이 책보다 먼저 책장에 꽂혀있던 '죽음''기억'


모두 1, 2권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아직 손도 대보지 못하고


나중에 구매한 '심판'을 먼저 읽어보았어요.



인터넷서점 광고 팝업창으로 먼저 만나보고 구매해야지 구매해야지하다가


한국 독자들을 위해 특별히 작가님이 직접 일러스트하신 하얀 표지를 겟하지 못하고


마음을 접었다가 그래도 궁금해서 그냥 파란 표지 책으로 만나보게 되었어요.






이 책은 그동안의 소설 형식이 아니라 희곡 형식이라서


겟하고 난 뒤 집어 들어 읽기가 마음이 편했던 거 같아요.



소설 중에 특히 외국 소설의 경우 등장인물이 많아지면


어느 누가 어느 이야기를 하는건지부터 파악하느라 시간이 걸리는 반면


희곡은 앞에 발화자가 쓰여 있어서 덜 생각하고 덜 고민하고 읽어도 되기에


또한 상상하며 읽기가 수월하기에

개인적으로 더 마음에 드는 장르인 거 같아요.




이 작품 이전에 희곡으로 '인간'이라는 책도 출간하셨다고 해요.


그 책도 당시 읽었을 때 참 기발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인간을 관찰한다는 점에 있어서 시각의 주체가 바뀌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책은 어쩌면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생각해보았던 상상이라는 점에서


기발함은 부족하지만 작가님의 상상과 내용 전개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책이었네요.



다 읽고난 지금


역시 보통 사람들 수준의 상상을 넘어서는 전개였어서


아쉽지만은 않았던 책이었어요.







이승이라는 곳에서 생을 마치고 죽어서

이승과는 다른 어떤 시공간에서


그동안 살아 온 생을 평가받아

재탄생할지 천국에 머무를지를 결정하게 된다는 상상!


흔히들 착한 사람은 천국에 가고 나쁜 사람은 지옥에 가는 것을 떠나


재탄생한다면 그것은 선물일까요 아니면 고난일까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님은 서양 사람이기에

서양에도 윤회사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양권에서는 특히 불교에는 윤회사상이 있지요.


윤회사상에 의해


착한 사람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나쁜 사람은 동물로 태어난다면?


혹은


착한 사람은 다시 태어나 고생하지 않고 살고 나쁜 사람은 자신의 업보로 고생하며 산다면?


혹은


윤회하여 다시 태어난다는 것 자체는 축복일까요?



그리고


착하다 나쁘다는 누가 판단할 것이며


그 판단은 공정할 것인가?


천국이라는 사회에는 이승에서의 룰과는 다르게 적용될 것인가?


혹은


천국에는 비리나 유착은 없는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을 들게 했던 책!


하드커버에 가늠줄이 있지만


사실 손에 들자마자 호로록 읽히는 책이라 가늠줄이 필요가 없어요.


그만큼 가독성 좋게 쓰여져 있고


이야기 전개가 흥미로워서 얼른 보고 싶게 쓰여져 있어요.



등장인물도 간결해요.



주인공이자 피고인인 아나톨 피숑


피고인 측 변호사 카롤린


검사 베르트랑


재판장 가브리엘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프롤로그부터 확 몰입이 되요.



소설은 그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한다는데


이 책에서는 여러 사회적 문제를


중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 슬쩍슬쩍 끼워넣어져 있어요.





휴가철 절정인 8월 15일에 폐암수술을 받는 아나톨은


프랑스의 주 35시간 근로제와 의사들의 초과근무, 일손부족, 윤리의식 등의 폐해로


사망하게 되요.


물론 손 쓰기 어려울 정도였던 거 같기는 한데


과연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의료사고로 볼 수 있을지 하는 의문이 드네요.










제 1막


천국 도착










베르트랑  난 멍청이들을 경멸해.


카롤린  우리 모두 누군가의 입장엥서 보면 멍청이야.


베르트랑  시대를 막론해 보편적인 멍청이들이 존재하지.


그들은 시대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 대부분 무-자각, 게다가 전염성까지 있어.


우리를 전염시켜 버리지.


카롤린  그쪽으로 전문가인가 봐. 하긴, 그런 부류들과 많이 어울렸을 테니까.


베르트랑  그들과 어울려도 얼마든지 옮지 않을 수 있어.


동물원 사육사라고 꼭 원숭이들과 밥그릇을 같이 쓰진 않지......


카롤린  억지스럽기는.


베르트랑  어릴 때 아버지가 나한테 이러셨어.


<살아 보면 알게 될 게다, 아들아, 세상에는 멍청이가 가득하단다.


상처도 쉽게 받아 면전에서 멍청이라는 얘기도 해줄 수 없지.>


카롤린 에헴...... 에헴......


베르트랑  진실을 들려주면 못 견디는 거, 이게 바로 멍청이들의 근본 특성이지.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면 오죽하겠어.


진실을 알려 주면 알려 준 사람을 원망하면서, 마음에 담아 두고 절대 잊지 않아.


그래서 멍청이들과 얘기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야......


카롤린 에헴...... 에헴......


베르트랑  칭찬. 멍청이들은 칭찬이라면 죽고 못 살아. 이게 그들의 두 번째 특성이지.


칭찬을 듣는 순간 상대를 좋아하게 돼.


                                                                                                  p 39 ~40








베르트랑  내가 별로 바람을 넣을 필요도 없었어.


원래가 자아 과잉이야.


이미 바람이 팽팽히 들어가 있는 풍선이라서 건드리기만 하면 터지는 거지.


                                                                                                     p 47







책을 읽으면서 피고인 아나톨이 심판 받기 전에


나 자신은 어떠한가 돌아보게 되요.



이 책에서 '멍청이'라고 표현한 것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일부 권력 세력가들은 아니었을까?




회사의 CEO이든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의 사람이든


자신이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자기 편에 서는 사람들만 주변에 두면서


냉철하고 정확한 판단력을 갖지 못하고 편향된 시선으로 일을 꾸려간다면


혹 역사 속에서 아첨꾼을 가까이 두어서 일을 그르친 옛 선조들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어떠한 사건이나 현상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판단하려면


한 쪽의 시각만이 아닌 다른 쪽의 시각도 볼 줄 알아야하는데


내가 혹은 그러지는 않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들어


책을 통해 또 하나를 배워 갈 수 있는 시간이었네요.








또한 베르트랑과 카롤린의 대화를 통해


여성의 가정노동, 남녀평등 문제, 결혼제도에 관한 문제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이러한 문제들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르다는 입장을 취하겠지만


그런 점들이 서로간에 맞지 않으면


행복한 가정생활을 누리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요?






아나톨을 평가하고 지난 삶을 돌아보고 판결하는 중에도


의료계와 마찬가지로


법조계에서의 업무량 과다, 부패 등을 들여다 볼 수 있었어요.


프랑스 사회든 어느 국가의 사회든


어디에나 그런 부조리와 폐단은 존재하는 것인가하는 생각도 들고


작가님은 이 책을 통해


너무 무겁지 않게

문제들을 살짝 건드려 보려고 하셨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네요.










가브리엘  (꿈꾸는 듯한 표정이 되어) 1922년에서 1957년까지......


삶이란 건 나란히 놓인 숫자 두 개로 요약되는 게 아닐까요.


입구와 출구. 그 사이를 우리가 채우는 거죠.


태어나서, 울고, 웃고, 먹고, 싸고, 움직이고, 자고,


사랑을 나누고, 싸우고, 얘기하고, 듣고, 걷고, 앉고, 눕고,


그러다...... 죽는 거예요.


각자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죠.


카롤린  그렇게 말하니까 별 매력이 없네요.


하지만 존재마다 고유한 서정성을 부여해 주는 미세한 결의 차이는 존재하죠.


케이스별로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예요.


                                                                                                          p 54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삶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브리엘의 생각대로 누구나 다 똑같은 것인 것도 맞고


카롤린의 생각대로 그래도 각자 고유한 의미가 있는 것도 맞다고 생각이 되요.


삶의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생각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니까요.










카롤린  멍청이와 살았거든요. 자기가 무조건 옳다고 믿는 사람이었어요.


세상을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단선적인 시각으로 바라봤죠.


                                                                                                            p 55








작가님은 카롤린의 입을 빌려


우리는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고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며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 책 속에서 말하고 계신 것은 아니었을까요?











카롤린  그렇긴 한데, (무대 오른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제 의뢰인을 보니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적인 죽음은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저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쓸 뿐이죠. 재판장님은요?


                                                                                                           p 56








흔히들 오래 살다가 돌아가시면 '호상'이라는 표현을 쓰지요.


그런데 과연 이 세상에 호상이라는 것은 존재할까요?


죽음이란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아쉬움이 남는 법이지요.


의학과 과학이 발달하여 인간의 평균 수명이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40세에 죽는 것보다 90세에 죽는 것이

더 나은 일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거예요.


90세까지의 여정이

매일 아프고 병원 신세를 지며 목숨만 유지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고


40세의 죽음이

사회에 큰 공을 세우고 획을 긋고 떠난 것이었을 수도 있고


개별적인 특성이 존재할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카롤린이 말한

성공적인 죽음은 없다는 생각은 바른 표현인 거 같네요.









또한 교육 개혁에 관한 문제도 대화로 언급되고 있어요.


주요 등장인물이 4명밖에 되지 않는데도


사회의 여러 분야의 문제점들을 대화 속에 녹여내는 것은


작가님만의 능력이신 거 같아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작품이 몇 개 생각이 나요.


'양반전', '허생전'과 같은 작품을 통해서


허위의식에 빠진 당시 세태를 꼬집어 비판하였다고 배웠지요.


양반에 대한 풍자이든 사회 전반에 걸친 풍자이든


우리는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시대상을 배우고 삶에 대한 태도와 철학을 깨닫는지도 모르겠네요.


가볍게 금세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가볍지만은 않은 책인 거 같아요.









베르트랑  있잖아요, 피숑 씨, 충만한 삶의 끝자락에는 반드시 운명의 순간이 와요.


그때 무대에서 퇴장할 줄 알아야 해요.


                                                                                                               p 71







삶의 마지막에 쉽게 삶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삶에 대한 의지로 집착하고 있는 걸까요?


아마도 그건 아닐 거예요.


우리는 한 번 태어나만 보았지 죽어보지는 않았으니까요.










만약 삶의 끝에서 다시 돌아가서 의식을 회복할 수 있는 대신에


치명적인 후유증을 안고 평생 살아야한다면


죽는 것이 나을까요 그래도 사는 것이 나을까요?


평생 몸이 아파서 자유로운 일상을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제 2막


지난 생의 대차 대조표










베르트랑  지난 생들에 대해 얘기해 주면


무조건 자기가 유명했으리라고 상상하는 게 참 웃겨요.


옛날 사람들 99.9퍼센트가 소 뒤를 따라가며 쟁기를 밀던 농부였고,


아주 어린 나이에 중매 결혼을 했었다는 사실은 생각조차 않죠.


그때는 수프와 빵이 주식이었고, 자식을 여섯씩 낳아도 그중 절반은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운이 기가 막히게 좋아야 겨우 50세까지 살았다는 것도.


                                                                                                           p 100








텔레비전에서 전생체험을 하는 것을 몇 번 본 일이 있어요.


그런 장면을 보면서 나는 전생에 누구였을까하고 상상해보기도 해요.


그런데 정말 베르트랑의 말처럼 우리는 자기가 유명했으리라고 상상하게 되는 거 같아요.


지금도 이렇게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혹 전생에 유명한 업적을 세우거나 대단한 사람이어서 다시 태어난 것은 아닐까하고


아니면 전생에 업보가 많거나 큰 죄를 저질러서 그 벌로 다시 태어난 것은 아닐까하는


이런 생각들도 해보게 되요.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둘 다 틀린 말일 수도 있구요.


우리는 자신이 특별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지요.




그런데 제 2막에서는 지금까지 상상했던 범위의 죽음 후의 심판에서 벗어나는


독특한 상상이 펼쳐져요.


만약 당신이 당신의 다음 생을 결정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생을 선택할 것 같으신가요?


물론 누구나 평범한 사람으로는 살고 싶지 않고


유명하거나 부와 권력을 누리고 살거나 특별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하겠지요.










가브리엘  (차분하게 또박또박 말한다) 그러니까 삶을 요리로 치자면


유전 25퍼센트, 카르마 25퍼센트, 자유의지 50퍼센트가 재료로 들어가는 거예요.


아나톨  통 무슨 말인지.


카롤린  우리 모두는 태어나는 순간 그 세 가지의 영향하에 놓인다는 뜻이죠.


유전이라 하면 부모, 그리고 당신의 성장 환경을 말해요.


가브리엘  당신이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거나 그들이 갔던 길을 따라간다면,


그건 유전 요소가 강력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죠.


반대로 무의식이 당신의 선택을 좌우한다면,


그건 카르마가 지배적인 탓이에요.


카롤린  하지만 당신이 자유 의지를 최대한 활용하면


유전과 카르마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도 있어요.


가브리엘  말하자면 자유 의지 50퍼센트를 가지고


다른 요소들을 새롭게 분배할 수 있다는 거죠.


                                                                                                        p 104









물론 이 이야기는 작가님이 상상해서 만든 구성이긴 하지만


어쩐지 정말로 이런 구성으로 우리의 삶이 진행되는 거 같기도 해요.


작가님은 무엇보다 중요한 건 50%를 차지하고있는


우리의 자유 의지에 따라 삶이 진행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요?


개인의 노력 여부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우리의 의지로 좌지우지 할 수 없는 요소로 결정된다면


어쩌면 운명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라 재미가 없을 듯 싶네요.


그 말인 즉슨, 조상 탓 나라 탓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초점은 '나'에 있는 것이라는 의미인 거 같아요.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 아내에게 충실했고,


좋은 가장, 좋은 가톨릭 신자, 좋은 직업인.>



제 2막에서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하나 하나씩 판단하는 장이에요.


그런데 그 판단하는 룰이 지상과는 달라서


엥? 뭥미? 하면서 읽었어요.


천국의 가치관은 지상의 가치관과는 다르다고 했지만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해봄으로써 생각의 틀을 깨는 독특한 이야기여서 신선했네요.








베르트랑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


그걸 여기서는 아주 좋지 않게 보죠!


...


베르트랑  어떤 일이 어려워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거예요!


...


베르트랑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지나치게 평온하고 지나치게 틀에 박힌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등한시하고, 운명적 사랑에 실패함으로써


피숑 씨는 배신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엘리자베트 루냐크의 꿈을 배신했어요.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배신한 셈이죠.


                                                                                                     p 132 ~ 133









과연 천국에서는 지상의 인간들이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 걸까요?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시도하고 도전하고 재능을 개발하고


삶을 좀 더 주체적으로 적극적으로 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요?



처음에는 당연시 생각했던 것들도 책을 읽어감에 따라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부분들이 생기더라구요.


변호사와 검사의 논쟁을 들으면서


어쩌면 독자들에게 초반에 대화로 나왔던


'자신만이 옳다는 멍청이'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려는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이 당연하고 무엇이 당연하지 않은 것인지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네요.










카롤린  잘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선택들이란 뜻입니다.


(한 손을 뻗어 무게 다는 시늉을 하더니 다른 손으로 평형을 맞춘다)


외도보다 신의를, 거짓보다 진실을 택했죠.


그리고 이 맥락의 연장선에서,


결과가 불확실한 예술 분야의 직업보다 진지한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베르트랑  (빈정거리며) 용기보다 비겁함을,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편안함을 택한 거죠.


카롤린  말을 끊지 마시기 바랍니다!


베르트랑  인간들은 자신의 행복을 일구기보다 불행을 줄이려고 애쓰죠.


카롤린  그들은 거시적으로 보지 못해요.


바로 코앞의 것만 보죠.


만약 피숑 씨가 유죄라면,


한 시대와 그 시대의 풍속과 관습 전체에 함께 죄를 물어야 해요.


                                                                                                               p 142









작가님은 그들의 대화를 통해 삶을 좀 더 거시적으로 보고


다양한 시각으로 판단하라고 하고 계신 거 같아요.


우리의 삶은 어느 것이 정답이다라고 단정지을 수 없고


그 누구도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기에


그래서 제목이 역설적이게도 '심판'인 것은 아닐까요?












제 3막


다음 생을 위한 준비









다시 태어나는 것이 진정한 벌일지 선물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던 다음 생을 준비해요.



만약 다음 생을 선택할 수 있다면


여러 조건들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으신가요?




성별,


국적,


부모,


가정 환경,


직업,


강점과 핸디캡,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까지




한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요소들은 매우 다양하게 있지만


책에서는 이런 요소들을 고를 수 있었어요.


물론 책 속에서의 일이긴 하지만


결정한대로 따라갈지 아닐지는


앞서 말한 유전, 카르마, 자유의지의 비율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또한 여러 가정의 환경들을 살펴보면서


나와는 다른 환경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요.


어느 환경이 옳다 그르다라는 시각보다는


다양성의 측면으로말이예요.










가브리엘  우리가 지금 정하고 있는 건


당신의 카르마에 해당하는 25퍼센트라는 사실을 알아 둬요.


당신이 무의식의 소리에 계속 귀 기울일 때 펼쳐지게 될 인생 경로인 거죠.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징표들이 끊임없이 이 삶의 여정을 당신에게 일깨워 줄 거예요.


아나톨  징표들이라고 했어요?


카롤린  맞아요, 꿈이나 전조, 설명 불가능한 욕망, 직감 같은 것들......


가브리엘  어느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당신에게 강요하지 않을 거예요.


다시 내려가면 자유 의지를 가지고 혼자가 될 거예요.


쉬잔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쳐 가게 될 수도 있어요.


                                                                                                            p 197 ~ 198









이 책에 감정이입해서 만약 이러한 이야기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전생에 내가 정했던 카르마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나는 그런 바람대로 살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내 자유 의지대로 살고 있는 걸까요?


지금 내가 더 보태고 덜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책을 읽으면서 갖가지 상상을 하게 되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님은 독자들이 책을 읽는데서 끝나지 않고


더 자유롭고 풍부한 상상을 할 수 있도록 소재를 던져 주시는 것 같아요.









그냥 이렇게 흘러가고 끝날 줄 알았던 이야기는


마지막에 상황이 급박하게 바뀌면서 급반전되요.


아마도 이러한 장치가 없었다면 예상 그대로 흘러가서 재미가 반감되었을텐데


역시 괜히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님이 아닌거죠.



전체적인 대화의 흐름과 구체적인 내용은


책을 통해서 확인하시길 바래요.








시대상과 관습에 따라 과연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 것일까?


또한 그 옳은 것은 언제나 옳은 것인가?



'심판'이라는 제목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일텐데


작가님은 여러 사회 문제들을 등장 인물들의 대화 안에서 하나씩 끌어내어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는 '멍청이'에 이입할 수 있도록 하신 거 같아요.



어쩌면 인간이란 계속 실수를 해가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존재이기에


윤회라는 것이 있다는 가정하에


재탄생이라는 기회가 또 주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인간을 하얗기만 한 사람과 까맣기만 한 사람으로 구별 지어 심판할 수는 없으니


우리는 조금은 더 하얀 사람으로 조금은 덜 까만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아닐런지요.






책은 단시간 내에 쉽게 읽히지만


책을 덮고나서 여러가지 철학적 의문과 생각을 이어가게 하는

의미있는 책이었어요.





금세 읽으실 수 있으니


한 번쯤 읽어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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