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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대한민국에서 허위 사실과 과장된 부풀린 기사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기자로서의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과 그 사회적 현상을 지칭한다.
- 출처 : 위키백과 https://ko.m.wikipedia.org/wiki/기레기


'기레기' 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뒤늦게 이 말을 접한 나는 기삿거리를 주워가기 위해 모여드는 기자들을 먹잇감 주위로 모여드는 새에 비유해 야유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이 말이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어원이 어디에서 왔든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비판, 그들의 떨어진 위상을 나타내는 말임에는 틀림없다. 인간의 알 권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기삿거리를 위해 뛰어드는 기자들의 대한 찬사들, 그들의 이야기들이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하던 게 오래지 않는데, 기자들을 '쓰레기'에 비유할 정도로 떨어진 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위키백과에서는 그 주원인을 과장되고 자극적인 제목을 통해 '클릭'수를 노렸던 상업에서 찾는다. 인터넷,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걸으면서, 먹으면서, 차 안에서 어디에서든 손에서 폰을 놓지 않고 무엇이든 읽을거리를 찾는 사용자의 수요에 응하기 위해 언론사들은 적당히 틀만 맞춰 자극적인 내용의 기사들, 양으로 승부하는 기사들, 여기저기 짜깁기하여 올리는 기사들, 같은 틀에 찍어낸 듯 제목만 다른 똑같은 내용의 기사들을 찍어내는 공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기레기'의 검색 결과에 따라 나오는 '클릭 베이트', '로봇 저널리즘'이란 단어들만 봐도 우리의 현 위치가 어디인지 알만하다. 

결국 사명감 없는 이기심이 원인이다.

위키백과에서 찾은 '기레기' 라는 단어의 정의가 '대한민국'의 사회적 현상을 지칭한다는 말이 가슴을 찌르는 와중에 기자가 쓴 '아마도' 기자가 보는 기자로서의 이상향이 반영되어 있는 인물'인 미카엘'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거미줄에 걸린 소녀>를 만났다.

타협할 줄 모르는 자기는 다른 사람들을 초라하게 만들어. 자신들이 품었던 이상을 이제는 얼마나 팔아먹었는지 일깨워주는 존재니까. 그러니 자기가 박수를 받을수록 다른 사람들은 더욱 초라해진다고. 이런 상황에서 최상의 복수는 자기를 진창 속으로 끌어내리는 거야.
- 거미줄에 걸린 소녀,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거미줄에 걸린 소녀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저/임호경 역
문학동네 | 2017년 09월

 

밀레니엄 시리즈는 전통적인 저널리즘에 대한 논픽션은 아니다. 하지만 밀레니엄 시리즈 전작과 더불어 사건을 파헤치는 기자의 모습과 그가 겪는 기자로서의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망해가는 종이책 잡지사 '밀레니엄'에서 일하는 미카엘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혹은 자신의 명성을 위해 타협하지 않는다. 사실을 대하고 진실을 구한다. 그의 이야기는 픽션이지만 오히려 더 논픽션 같다. 이 스릴 넘치는 소설은 이 시대에 대리만족과 통쾌함, 더불어 반성과 고민거리를 함께 안겨준다. '스티그 라르손'의 타계로 시리즈의 중단을 우려하던 독자가 많았지만 다행히 그 시리즈를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이어가고 있다. 그도 기자 출신이다. 아마도 그들이 현실에서 구하지 못했던 기자의 이상향을 '미카엘'을 통해 제대로 살려줄 수 있는 건 기자 출신인 그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좋은 저널리즘과 나쁜 저널리즘을 가르는 건 주제가 아닌 대상을 다루는 방식이라는 게 평소 그의 지론이었다.
- 거미줄에 걸린 소녀,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미카엘은 <거미줄에 걸린 소녀>에서 리즈 베트가 건져올린 '사실'들을 토대로 사건 '후' 진실을 환기하는 기사를 썼다. 충분히 알아보고 이야기하고 고민할 시간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급박한 상황, 시간을 다투는 사건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사건을 전하는 리포터들은 어떨까. <왕과 서커스>의 '다치아라이 마치'는 '월간 심층'이라는 월간지 작업 전에 휴식 겸, 사전조사 겸 네팔로 향하고 그곳에서 네팔 국왕을 비롯한 왕가 살해 사건을 만난다. 현장을 처음 발견해 셔터를 눌러 좋은 사진, 자극적인 사진을 얻을 수 있었던 다치아라이는 이 사진을 가지고 기사를 써야 할지 고민한다. 분명 수많은 클릭수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그녀의 눈앞에 있었다.

"저는...저는 이 일을 믿고 있습니다. 그건 배신할 수 없어요."
그 말을 들은 준위의 목소리가 대번에 차갑게 변했다.
"그게 당신 신념인가?"
"예"
분명 신념을 가진 자는 아름다워. 믿는 길에 몸을 던지는 이의 삶은 처연하지. 하지만 도둑에게는 도둑의 신념이, 사기꾼에게는 사기꾼의 신념이 있다. 신념을 갖는 것과 그것이 옳고 그름은 별개야."
나는 또다시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맞는 말이다. 신념을 갖고,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뱉어내는 거짓말은 나도 몇 번이나 들어왔건만.
(....)
"제가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잠자코 방관하는 건 허락되지 않아요. 전달하는 게 제 일이니 전달해야만 합니다."
- 왕과 서커스, 요네자와 호노부 p224-226


기자의 입장에서 현장의 '진실'을 생생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면서 너무도 분명한 '잘못'에조차 객관적이 되어야 하는 어려움, 가끔은 (혹은 자주?) 그들이 목숨도 담보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받아들였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의 매 순간에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고 기자의 사명감을 환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왕과 서커스

요네자와 호노부 저/김선영 역
엘릭시르 | 2016년 06월

 

나는 프리랜서 기자로, 지금도 내가 어떤 곳에 서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사람들이 비극이라 부르는 것이 정말 비극인지, 환희라고 부르는 것이 정말 환희인지, 의심하고, 조사하며, 글을 쓰고 있다.
이따금 자칫 내가 옳다는 생각에 빠질 때면 프린트한 사진을 책상에서 꺼내 바라볼 때도 있다.
INFORMER
만일 내게 기자로서 자부할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보도한 일이 아니라 이 사진을 보도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 기억을 떠올림으로써 아슬아슬하게나마 누군가의 비극을 서커스로 삼는 실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믿는다.
- 왕과 서커스 p528-529


물론 기자들만을 탓할 것은 아니다. 그들도 인간이고, 우리도 그들과 같이 옳고 그름, 혹은 그보다 모호한 순간의 선택에 순간 노출된다.

"이거 아나요..... 당신이 읽고 있던 메모라는 것은.... 나는 그 메모에 있는 그 어떤 단어도 믿지 않아요..... 그 단어들은 소설 같아요. 게다가 아주 오래된 거지요. 당신은 그 메모를 읽고 그 안에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보고 있어요..... 당신을 나무라는 말이 아니에요.... 나는 당신의 노력에 깊이 감사하고 있어요."
-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 마누엘 푸익


마누엘 푸익의 <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 서른여섯 살의 미국인 래리와 일흔네 살의 아르헨티나 망명자 라미레스 사람의 대화만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제목과 구성의 책이다. 사람의 대화로는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 상상인지 없는 모호함으로 가득하고, 마지막 열린 결말은 책의 제목에 나와있는 저주의 대상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든다. 한가지 상상해 있는 것은, 망명자 라미레스의 노트에서 발견한 메시지에 래리는 흥분했고, 그를 통해 기회를 잡을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기적인 그의 행보는 사이를 갈라놓았고, 래리는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 ‘이라고 시작하는 메시지에 걸맞은 엔딩을 맞았다는 것이다. 우리도 개인의 이기심으로 저주를 불러올 선택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난 그 말을 믿지 않아요. 책에 그렇게 쓰여 있던가요?"
"틀림없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한 세기전에 사용하던 말로 적혀 있지만 말입니다."
"조심해요. 내가 사실대로 말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에 관한 얘기를 조금 나누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분명해질 테니까요."
-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 마누엘 푸익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

마누엘 푸익 저/송병선 역
문학동네 | 2016년 08월


예전에 행운의 편지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같은 내용의 편지를 여러 사람에게 보내면 행운이, 그렇지 않으면 불행이 찾아올 거라는 편지다. 내 친구들은 반은 재미로, 반은 왠지 모르게 꺼림칙해서 다른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행운보다는 불쾌함이 널리 퍼졌다. 남의 사생활이 침해 되던 아니던 상관없이 자극적인 기사 제목에 혹해 기사를 클릭하고, 분별력 없이 무작정 더 더 더 많은 정보를, 그에 대한 기사를 기대한다. 그런 기대는 무분별한 클릭수와 불편한 댓글을, 그리고 더 많은 왜곡된 보도와 자극적인 기사를 가져왔다. 이런 악의 고리는 행운의 편지가 퍼지는 양상을 닮았다. '기레기'라는 사회현상은 결국 우리가 만들어 낸 저주인지도 모른다.

기회라는 탈을 쓴 저주들이 있다고 책을 통해 배운다. 이기심과 사명감, 옳고 그름의 경계에서 저주를 불러 오지 않을 선택을 하라고 책들이 이야기한다. 

 


https://ko.m.wikipedia.org/wiki/%EA%B8%B0%EB%A0%88%EA%B8%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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