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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전력 OL 살인사건

[도서] 도쿄전력 OL 살인사건

사노 신이치 저/류순미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 작가의 다른 작품

손정의

누가 책을 죽이는가


# 읽고 나서.

낮에는 도쿄전력 간부 직원으로, 밤에는 매춘을 하던 야스코가 살해당했다. 이런 특이한 인물이 소설이 아니라 실제 인물, 그리고 실제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기자인 사노 신이치가, 이 사건의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하고, 실제 관계자 면담까지 하며 조사한 논픽션이다. 상당히 흥미로운 사건이었고, 실제 체포되었던 고빈다는 무죄와 유죄를 번갈아 가며 판결 받기도 하는 등 논란을 불러온 사건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미제로 마무리된 사건.


'논픽션'이라고 해서 내가 무엇을 기대했는지 정확히 설명은 불가능하지만 ㅋ, 조금 더 사실관계에 치중한, 혹은 기자의 '분석'이나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가설'을 검증하는 식의 르포르타주를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글은 그가 기자로써 조사한 내역을 설명한 기행문 같은 성격이 더 강했다고 할까, 기자의 글에서는 기대하지 않게 되는 기자의 '감상적인 면'이 더 많이 들어간 에세이 같은 성격이 강했다고 할까. 여튼 기대했던 성격의 글은 아니라 처음에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논픽션을 이렇게 감상적으로 적다니. 하지만 사건 조사에 대한 전반의 내용을 짚어준다는데 의미가 있다면 또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높다 못해 넘치는 야스코는 아버지의 죽음이 상처로 다가온 듯하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잡을 수 없는 그녀는 '어쩌면' 자책하고 벌을 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겉으로 보기엔 잘나가는 도쿄전력 간부 직원이었지만, 아버지의 기대 - 아니 사실은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그녀는 오히려 타락의 길, 완전 망쳐버리고픈 길로 나아간다. (아니 이건 사실이라기보다는 추정이긴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그녀의 모습이 다 이해가 가는 건 아니다. 완전히 타락하는 것도 아니고 밤에만 타락하는 거라니. 금전적으로 부족하지 않았지만 빈병을 수거해 돈으로 바꾼다거나, 편의점에서 우동을 먹고 국물을 포장해 간다거나, 알뜰하다고만 하기엔 지나친 모습은 확실히 정신이 건강해 보인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 그녀가 목 졸려 죽은 사건.


단서가 없다고 하지만, 너무 날림 수사 같은 검찰도 그렇고, 검거 거의 100프로를 자랑한다는 일본 검사들이 사건을 몰아가기식 조사로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그렇고. 기존 일본 소설에 나오는 음모론스러운 이야기들이 낯설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해 1차 무죄판결이 나왔는데, 그걸 또 항소한 검사를 보면 또 그 안에 무슨 이야기가 있긴 있었던가 싶기도 하고.


너무나 빈 설명이 많아 채울 곳이 많은데, 이 책에선 이에 대한 답을 추정조차 제대로 해주지 않아 사실 너무 답답했다. 소설과 현실은 이렇게 다르다. 이래서 내가 논픽션보단 픽션을 좋아하는 거였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 <여자친구>를 추천받았는데, 차라리 그 책을 다시 찾아 읽어봐야겠다.


+ 개인적으로는 정말 논픽션 치고, 살인사건을 다루는 논픽션 치고 너무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어이없네 라며 친 밑줄들도 옮겨보았다. ㅋㅋ


* 밑줄

고령화되면서 길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사라졌다. 구김살 하나 없이 씩씩하게 일하는 테팔 아이들을 보며 경제대국이라는 미명하에 다리를 꼬고 앉아 외국인 노동자를 3D업종에서 마구 부려온 일본은 틀림없이 쇠망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 116쪽


그녀는 타락으로 내달리는 과정에서 평소엔 장기판의 흔한 '졸'로 살아가며 거리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군중의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단 한 번뿐인 삶의 '이야기'를 끄집어내 엮고 있었다. 그녀가 품고 있던 내면의 어둠이야말로 길거리 사람들의 '이야기'에 색채를 부여하는 발광체였다. - 241쪽


나에게는 자포자기로 보이는 야스코의 이런 행동 자체가 진정 타락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지 거품에 들뜬 세상의 타락 같은 건 '소심한 타락'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만 같았다. - 275쪽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매춘 산업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목숨을 걸고 손님을 잡으려 서성이던 모습은 간편해진 성매매와 비교해 고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 280쪽


도쿄전력 여직원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불나방이 된 야스코는 사카구치 안고가 <타락론>에서 '인간은 제대로 떨어져야 할 길을 끝까지 가볼 필요가 있다. (..) 떨어져야 할 길에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구원할 수 있다'라고 서술한 대목을 상기시켜 주었고 나를 감동시켰다.

나는 야스코의 기이한 행동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 아니다. 타락으로 가는 길이 너무나도 한결같아 숭고함마저 느껴지는 괴물 같은 수수함에 턱없이 가슴이 떨려온 것이다. - 281쪽


이날을 기해 1997년 10월 첫 공판으로 시작된 도쿄전력 여직원 살인사건의 심리는 모두 끝났다. 그러나 나는 심리가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공판에서는 아무런 물증도 제시하지 못했고 피고인 고빈다도 계속해서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나는 2년에 걸친 이 공판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통감한 사실은 사실을 추궁하는 모습이라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필사적으로 덮으려 하는 법정의 보이지 않는 세계였다. 그 보이지 않는 세계는 공판이 진행되면 될수록 더욱 깊어졌고 피고인 고빈다도 살해된 와타나베 아스코도 그 수렁에 빠져 점점 사라져가는 것만 같았다. - 363쪽


한번 범인이라 특정하면 절대 그것을 재검토하려 하지 않는 일본 사법제도의 강직함에 나는 새삼 소름이 돋았던 것이다. 그런 암흑 재판이 정말 통하는 것일까. - 3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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