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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스릴러

[도서] 아무튼, 스릴러

이다혜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 작가의 다른 작품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출근길의 주문

교토의 밤 산책자


# 읽고 나서.

전에 '빨간 책방'을 들으며 이다혜 님의 말발(?)에 감탄했었는데, 그만큼 역시나 글발(?)도 좋으시구나 확인했다. 사실 에세이 형식으로 가볍게 쓰인 책이라 기대했던 만큼의 깊이는 없었지만,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책을 자주 사다 나를 수 없는 입장이라 전자책이 나오기 전에는 박스로 일 년에 한 번씩 샀었다. 최대한 다양한 장르를 넣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박스를 다 읽어야 다음 박스를 살 수 있다고 스스로 정해놓은 규칙 덕분에 늘 마지막에 남는 비소설 분야의 책들을 꾸역꾸역 읽으며 후회했었다. 그러다가 즐겁자고 읽는 책이다,라는 생각에 소설류, 특히 좋아하는 미스터리/스릴러 장르만 꾸준히 사들였다. 언젠가 친구가 내 책장을 보고는 어째서 책들이 (책등이) 다 까맣고 빨간 것들 투성이냐고 한 적이 있을 정도. 물론 지금은 적당히 섞어서도 읽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장르에 대한 애정을 숨길 수는 없다. 그리고 이제 와 딱히 숨기고 싶지도 않고. ㅋ 


왜 이 장르가 재밌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재미'라고 대답하면 이상한 취향의 변태 같아 들릴까 봐 걱정하던 때도 물론 있었다. 수수께끼 푸는 것도 좋고, 답 없는 세상에 답이 제시되는 것도 좋고, 범인은 언젠가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지만) 밝혀진다는 사실도 좋았고, 범죄의 다양한 원인들을 보면서 나는 '안전하다'라고 확인하는 것도 한몫했을 터이고,,,, 작가가 언급한 이유들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결국 그래도 재밌으니까... 가 가장 큰 이유라고 이제는 '인정'하고 싶다. 잘 짜인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읽으면 뭔지 모를 만족감도.


스릴러를 읽다 보면 이다혜 작가님은 결국 논픽션으로 갈 수밖에 없어진다고 하셨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래도 소설 속으로 숨고 싶다. 현실을 딱 마주할 용기가 아직도 없는 건지. 특히나 소설과 달리 범죄자의 '진짜' 심리나 진실을 추측에 의존해야 하는 것 자체가 아직은 불안하다. 아직 이다혜님 만큼의 내공이 쌓이지 않아서 인 걸까.


여튼, 재밌게 읽었다. 언급된 책들 대부분 읽어봤거나 들어는 본 책들이라 괜히 더 으쓱(?)하고 반가웠다.


*밑줄

서스펜스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서스펜스물과는 종종 혼용되며, 반전이 있는 경우가 많고, 대체로 사건 진행 속도가 빠르다. 고전적인 느낌이 없을수록 어떤 작품이 스릴러로 불릴 가능성은 높아진다.


고전 미스터리에서는 폭탄이 한 개면 충분했다. 스릴러라고 불리는 장르의 특징은 폭탄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불발탄이 섞여 있어도 좋다!


살다 보면 수시로 찾아오는 환란의 날에 마음 둘 취미가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내가 피해를 입은 범죄를 장르로 소비하기란 쉽지 않다. 범죄 피해 유가족이면서 스릴러 소설 작가가 된 제임스 엘로이 같은 경우도 있지만, 범죄물을 즐기는 나 같은 사람의 심리란 대체로 안전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기인한다. 내가 읽는 것이 나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없다면 읽기 어렵다.


재미있는 사실은 ‘재밌는 책’이라면 끓는점 온도와도, 그 장르의 팬인지와도 관계 없이 ‘반드시 끓는다’는 점.


설상가상 스릴러 애호가들은 스릴러 소설에서조차 범죄자가 될 ‘싹수 노란’ 폐인들로 그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더 난처해지곤 한다.


범죄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이 죽기 때문이 아니라 크건 작건 어떤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너무 길고 구차한데다 상대가 별 관심도 없는 경우가 많아 생략하기 일쑤다. 살인사건보다 살인을 저지른 인간의 심리가 궁금하잖아요, 하는 설명은 어디까지나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하고나 할 수 있는 얘기다


그렇게 ‘세다’는 느낌이 스릴러의 전부처럼 느껴진다면 이 장르의 미래는 어디 있는지. 스릴러는 대체 뭐 하는 장르인지.


그래서 범죄물을 읽는다. 이해할 수 없는 악의의 정체가 궁금해서, 불가능해 보이는 범죄가 이루어지고 또 그것을 해결하는 천재적인 두뇌플레이를 보고 싶어서, 그 안에서는 언제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서사 안에서 안전한 쾌락을 느끼고 싶어서. 하지만 ‘내가 파는 장르’가 무엇을 소비하는지 알고는 있어야 한다.


픽션과 논픽션의 차이는, 논픽션을 읽다 보면 그 싹을 없애야 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감지한들 손쓸 방법이 없다는 무력감을 경험한다는 데 있다. 논픽션 속 사람들은 장기말이 아니다. 글 몇 자로 재단할 수 없다


현실이 잔인하다고 잔인한 설정을 한껏 이용하는 창작물을 즐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현실의 문제를 픽션의 연장으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픽션’과 ‘픽션 같은’은 전혀 다른 말이다. 픽션을 픽션으로 즐기려면 현실의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하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나는 여전히 스릴러를 좋아한다. 그 사실은 종종 나를 괴롭게 한다. 내가 ‘파는’ 장르의 구성 성분이 무엇인지, 쾌락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를 생각하는 일이 그렇다. 스릴러가 현실의 피난처로 근사하게 기능해온 시간에 빚진 만큼, 현실이 스릴러 뒤로 숨지 않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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