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사랑의 잔상들

[도서] 사랑의 잔상들

장혜령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 작가의 다른 작품

진주


# 읽고 나서.

아이 때 내 사랑의 대상은 엄마, 초등학교 때 내 사랑의 대상은 친구들과 군것질, 중고등학교 때 내 사랑의 대상은 만화책과 땡땡이, 그리고 매점, 연예인, 2-30대 내 사랑의 대상은 따뜻한 커피를 건네주던 선배, 잘못 탄 척 우리 집 근처까지 같이 지하철을 타주고 간 친구, 크리스마스이브 밤새 논문을 쓰며 함께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았던 친구들, 새우를 까주던 그. 지금 내 사랑의 대상은 사랑하는 내 가족, 그리고 가족이 잠든 고요한 밤에 혼자 갖는 독서 타임.


사랑이 한 사람의 내면의 문제에 관계된다면 그것은 영혼과 같은 것일까, 아니면 기억과 같은 것일까? 그러나 사랑은 실로 육체 없이 불가능한 것일 텐데, 사랑하는 이들의 육체가 사라지게 될 때 그 사랑은 여전히 여기 머무르게 될까?


메마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구나를 이렇게 깨닫는다. 그렇게 사랑했던 대상들과의 순간순간들이 아직 기억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기억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런 사랑을 주고받으며 상처도 나고 꺾이기도 하고, 단단해지기도 했으니 기억에만 머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랑의 잔상들> 을 읽으며 내 기억 속의 '사랑'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불러와봤다. 넘쳤던 순간들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내 사랑의 잔상들.


사랑이 끝날 때 그 사랑은 모두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생각보다 편리한 기억력을 가지고 태어나 내 사랑의 잔상들을 머릿속에 풀어놓아도 아픔보다는 당시의 설렘이 더 강하게 남는다. 지나고 나야 진해지는 상들이 있는가 하면, 진행형이기에 향기로운 상들이 있다. 사랑이 '끝난다'라는 말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아프고 잊고 싶은 기억이라면 결국 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사랑하는 대상은 그 아팠던 순간까지 나중에 사랑의 한순간으로 기억되지 않으려나? 아니, 사실 이렇게 믿으며 나는 내 사랑은 늘 빛나는 순간이었다고, 지금도 향기가 난다고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뭔지도 몰랐던 어렸을 때는, 사진 한 장만 봐도 두근거렸던 적이 있었고, 누군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아픔을 겪고 나서는 내 '대단한'사랑 말고 나머지는 하찮아 보이던 적도 있었다. 달달한 로맨스는 이제 오글거려 못 보는 나지만 누군가의 편지에 울컥해지는 나는 이제 그 중간 즈음에 있는 걸까. 아니면 조금 더 '생활형' 사랑에 익숙해지고 있는 걸까.


작가의 글쓰기는 밝은 탁자 위에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상과의 단절, 고독이라는 깊은 어둠을 거쳐서만 비로소 그것은 나타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장들은 단숨에 우리의 시선을 낚아채지만 어떤 문장들은 서서히 그 속에 스며들 것을 요구한다. 그런 세계에 들어서기 위해 우리가 견뎌야 하는 것은 어둠이라는 시간이다.


<사랑의 잔상들>은 사진 에세이 같기도 했고, 여행 에세이 같기도 했다. 작가가 포착하고 곱씹은 순간들이 글로 남았다. 다른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려웠다. 어둠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해서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대신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았다. 작가가 남기고 싶어 한 것들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남김으로 선명해진 작가의 잔상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밑줄

꼭 가져야 하는 것과 버려야 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간격이 놓여 있는 걸까. 서랍 속에서만 빛나는 진주 목걸이와 아무렇게나 끼고 다녀서 녹이 슨 반지 사이에는


오늘의 빵을 아껴둔다 해서 내일의 가난이 영원히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것. 어떤 선택도 근본적으로 미래를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이 삶에 대한 그의 태도를 결정지었다.


자신이 만든 제국 안에서 스스로 죽어가는 한 운명과, 자유를 누리며 세상을 떠돌다 성 밖에서 죽어가는 또 다른 운명. 우리의 운명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그 애가 내게 다가와 손을 잡고 눈을 들여다보았던 걸 기억한다. 사랑의 기원에 그것이 있다. 그것만이 전부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닿지 않은 목소리는 결국 어디에 가닿게 될까


이상하게도 우리는 결별의 목전에 이르러서야 가장 깨끗하고 투명한 시간을 경험한다. 진실이란 결국 어떤 ‘대면’을 필요로 하고 결별은 거꾸로 대면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 대면은 결국 홀로 맞서야 하는 고독한 싸움이다. 그러나 사랑의 경우처럼 그 사건 안에 종속되어 있는 한 우리는 결코 그것을 대면하지 못한다.


사랑이 한 사람의 내면의 문제에 관계된다면 그것은 영혼과 같은 것일까, 아니면 기억과 같은 것일까? 그러나 사랑은 실로 육체 없이 불가능한 것일 텐데, 사랑하는 이들의 육체가 사라지게 될 때 그 사랑은 여전히 여기 머무르게 될까?


세상의 모든 이상한 순간들, 그 순간들이 우리를 서서히 변화시키리란 그의 말은 옳았다. 어디까지나 우리가 그 힘을 믿는 한에서. 딱 그만큼만, 그 힘은 파괴적이고 격렬하다.


그녀의 실어증은 세계에 대한 지나친, 도달할 수 없는 사랑 앞에 오는 무기력에서 비롯한다.


작가의 글쓰기는 밝은 탁자 위에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상과의 단절, 고독이라는 깊은 어둠을 거쳐서만 비로소 그것은 나타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장들은 단숨에 우리의 시선을 낚아채지만 어떤 문장들은 서서히 그 속에 스며들 것을 요구한다. 그런 세계에 들어서기 위해 우리가 견뎌야 하는 것은 어둠이라는 시간이다.


그 시절의 기억과 이미지는 얼마간의 부재로 채워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기억이 언제나 재생 가능하고 그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마저 늘릴 수 있기에 이미지에 대한 절박함이 사라진 지금과는 다른 시절의 이야기이다.


사랑이 끝날 때 그 사랑은 모두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내가 사랑으로 인해 고통스러웠던 것은 내 관심이 체험 자체가 아니라 체험하는 나의 고통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좋았던 순간은 늘 너무 짧았다. 그리고 남겨진 것은 거듭되는 복기였다. 같은 장면을, 같은 기억을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받아들일 수 없는 이별을 이렇게 이해하고자 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나날이

    이 책 구입할까 많이 망서렸는데, 결국 구입하지 않았어요. 재미가 있는 모양이지요?

    2020.01.13 23:1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Elly

      취향을 좀 많이 탈 것 같긴 했어요. 저에겐 좀 어려웠습니다 사실 ㅠㅠ
      에세이류 좋아하시는 분은 문장들이 너무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

      2020.01.13 23:30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