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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 2

[eBook] 오직 예수 2

라비 재커라이어스 저/이상준 역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 작가의 다른 작품

오직 예수

하나님 앞에서 고통을 묻다

경이로움

# 읽고 나서.

기독교 교리와 대치되는 사상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요약하자면 마지막 장에 나온 이 부분.

- 과학주의 : 과학주의의 부분적 진리는 과학이 많은 것을 설명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이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과 인생의 가장 중요한 많은 요소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망각한다.

- 상대주의 : 상대주의의 부분적 진리는 다른 이의 관점으로 사물을 보기를 거부하는 것은 위험하며 사랑이 결여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이들도 가치 있고 존경받을 만한 존재라는 객관적인 관점에 이 사상이 기초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 범신론 : 범신론의 부분적 진리는 신성이 모든 곳에 있고 신성과의 연합이 운명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 연합은 동일함의 연합이 아니라 관계의 연합이다.

- 다원주의 : 다원주의의 부분적 진리는 어떤 세계관도 진리를 독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모든 세계관을 동등하게 진리로 보는 것은 분명 오류다.

- 인본주의 : 인간의 개개인은 참으로 위대함을 위해 조성되었다. 그러나 그 위대함은 인간의 자립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은총과 능력에 기인한다.

- 쾌락주의 : 쾌락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쾌락이 모든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다른 사상들보다 낫기 때문에, 혹은 더 좋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이 진리다. 그래서 다른 사상과 비교를 한다거나, 반박을 한다거나 할 필요는 사실 없다. 하지만 기독교를 오해하거나, 비웃거나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이해할 필요는 있다. 책 초반에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 이야기가 나온다. 대표적인 무신론자로, 그들과의 모임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그들을 조롱하라, 비웃어라'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갑자기 그에 대한 존경심이 싹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으면서 내 주장이 옳으니 그들을 비웃어도 좋다는 뜻인가..?

그리고 가장 공감이 갔던 것은 다원주의. 너도 옳고 나도 옳고. 거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너무 멀리 갔다. 그른 사실에 그르다고 말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갔다. 인터뷰 예가 나온다. 학생을 대상으로, 만약 내가 지금 7살이라고 주장한다면 옳다고 하겠는가..에 학생은, 당신이 7살이라고 주장한다면 마음이 7살이라는 뜻 인가라며 그럴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나치즘에 대해서도, 그들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겠다고 한다.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관대하게 아무도 틀린 것은 아니라고 주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해하는 것과 옳은 것은 다르다. 살인자의 마음을 이해해 줄 수는 있지만, 그들이 옳은 것은 아니다.

이웃, 적도 사랑하고 왼쪽 뺨 맞으면 오른쪽 뺨도 내어주라고 하셨는데, 이것만큼 어려운 게 없다. 모든 가르침 위에, 내가 너를 사랑한 것처럼 너도 형제자매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이 하나 지키는 게 어렵다. 익명 혹은 비대면 뒤에서 너무 날카로운 말들이 오고 간다. 너무도 가볍게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고, 인종 종교 국가 등등을 평가한다. 그 안에서 차분하게 모두를 이해하고 사랑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밑줄

불교는 무신론이고 힌두교는 범신론이다. 전혀 다른 장르다. 그나마 유일하게 비슷한 이슬람교는 비인격적 유일신론이고 기독교는 인격적 유일신론이다.

노골적인 무신론자와 대화하며 분노나 적대감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무신론자가 자신의 축적된 반감을 언어로 발사하기 전에 응축시킨 감정을 터뜨리는 방아쇠와 같다.

워싱턴 DC에서 모임을 하던 중 한 사람이 리처드 도킨스에게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질문했다. "그들을 조롱하라." 실제로 이렇게 답했다. "그들을 비웃어라."

인간이 마음의 통치를 자치적으로 하게 되는 순간, 문화와 정치는 무법해진다. 그리고 이 전투들에서 지고 나면, 그 이후에 다가올 전쟁은 더 거대한 것이 된다.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이것에 바로 무신론이 의도치 않은 결과다.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가 언급한 내용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선호하는 취향'일 뿐이다.

직관적으로 사람들은 도킨스가 대적하고 있는 행위들에 반대하는 반응들을 보인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 혹은 이런 행위를 하는 자들을 비방하기 위해서 그는 이런 일들이 악하다는 사실에 동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그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범주다. 신이 없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이런 신의 특징들은 악하다고 말하면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며, 스스로 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의 거실에 자기 사진을 걸어놓고 매일 아침 절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정신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도둑질하여 거룩을 세속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영원이야말로 거룩이 무엇인지 정의해 준다. 반면 시간은 존재들을 세속적으로 만든다.

어떻게(HOW)라는 질문(방법에 대한 질문)은 누가(who)라는 질문(주체에 대한 질문)에 답해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왜(WHY)라는 질문(목적에 대한 질문)에도 답해 주지 못한다.

"과학의 어떤 발견도(지금까지 어찌되었든 간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최소한의 경향조차도 갖지 못했다."

주요 세계관들에 대해 공부할수록 당신은 그것이 표면적으로는 유사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완전히 다를 뿐 아니라 충돌하기까지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상이한 방식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사랑을 얻기 위해 싸울 것인가, 아니면 값없이 사랑을 누릴 것인가? 다른 이들에게 우리의 사랑을 거둘 것인가, 아니면 값없이 나눌 것인가?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한가, 아니면 안전한가? 그리고 미래는 우리가 가장 갈망하는 관계를 포함하고 있는가?

신의 계시라는 개념은 세속 문화에서는 종종 비웃음을 당한다. 그러나 대안이 없는 비난은 공허할 뿐이다. 성경의 윤리는 쉽게 일축된다. 무엇을 지지하기 위해서 성경의 윤리를 거부하는 것인가? 오늘날의 윤리인가? 내일의 윤리인가? 내 문화권의 윤리인가? 당신 문화권의 윤리인가?

우리가 기독교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시할 때, 겉포장에 집중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가운데 있는 선물을 얻고자 한다면 겉포장들은 중요하지 않다. 일부 크리스천들이나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박스를 들고서 부끄러운 행동을 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에 놓여 있는 선물은 크리스천들이 도덕적으로 완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진짜 핵심적인 선물은 나사렛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기꺼이 죽임을 당하셨고 죽은자들 가운데 일어나 승리하셨다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10세기나 12세기의 기독교인들의 행동이 1세기에 보이신 그리스도의 행동에 의혹을 일으킬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는 반대 이유 때문에, 즉 회의를 막는 방파제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확신들을 녹이는 용해제로서 세속적 인본주의가 필요하다. 이것이 필요한 것은 우리의 삶을 의식도 못한 채 깊이 있게 규정하고 있는 신앙심들에 도전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세속적 인본주의의 부흥은 우리가 다시금 의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필수적이다.

의심스런 대상은 하나님의 존재가 아니라 교회 권력의 기초였다. 이것이 열쇠다. 교회 내의 권위는 인간 운명에 대한 권위주의 양상을 띠었는데 이것이 교회를 전복시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기독교는 자유에 기초한 믿음이다. 또한 이 점에서 절대성을 믿는 기독교는 인본주의와 가장 분명하게 대조가 된다.

쾌락과 행복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하게 좋은 것은 아니다.

- 과학주의 : 과학주의의 부분적 진리는 과학이 많은 것을 설명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이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과 인생의 가장 중요한 많은 요소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망각한다.

- 상대주의 : 상대주의의 부분적 진리는 다른 이의 관점으로 사물을 보기를 거부하는 것은 위험하며 사랑이 결여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이들도 가치 있고 존경받을 만한 존재라는 객관적인 관점에 이 사상이 기초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 범신론 : 범신론의 부분적 진리는 신성이 모든 곳에 있고 신성과의 연합이 운명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 연합은 동일함의 연합이 아니라 관계의 연합이다.

- 다원주의 : 다원주의의 부분적 진리는 어떤 세계관도 진리를 독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모든 세계관을 동등하게 진리로 보는 것은 분명 오류다.

- 인본주의 : 인간의 개개인은 참으로 위대함을 위해 조성되었다. 그러나 그 위대함은 인간의 자립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은총과 능력에 기인한다.

- 쾌락주의 : 쾌락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쾌락이 모든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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