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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eBook] 파과

구병모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구병모] 파과

 

처음에는 책 제목을 <파괴>라고 잘못 읽었다가 뒤늦게 <파과>인걸 알고 대체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파괴된 과거? 파괴된 과일? ‘의 뜻은 대략 추측이 가는데 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최 모르겠으나, 주인공이 예순을 넘긴 노부인 방역업자(Killer)라는 것에 이건 무조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읽다보면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중간쯤, 냉장고에 오래 방치되어 물러진 복숭아를 주인공 조각이 걷어내는 장면에서 파과-흠집이 난 과일이 맞는다고 결론 내렸다. 흠집이 난 과일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못하고 노화된 조각의 육신과 수십 년 동안 이어온 방역 업으로 인해 온통 흠집투성인 조각의 손톱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파과>라는 소설은 60대 할머니 킬러라는 굉장히 특이한 캐릭터 조각의 슬픈 인생사를 그린 노래의 마지막 곡조다. 한때 손톱으로 불리며 뛰어난 살인재능을 뽐냈던 조각은 방역업체의 원년멤버이자 류가 직접 길러낸 업자였다. 가난하고 아이만 많은 집에서 태어나 입하나 덜겠다고 당숙의 집에 보내진 조각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집에서 귀금속 사건으로 조각은 쫓겨나는데, 돌아가 보니 이미 가족은 사라지고 없었다. 오갈 데 없어진 그녀는 길거리를 방황하다 류와 그의 아내 조를 만난다.


류가 소개시켜준 주점에서 식당일을 하게 된 조각. 어느 날 자신을 욕보이려던 커다란 체구의 미군을 조각이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고, 류는 그녀가 살인을 하는 것에 소질이 있음을 알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침착함. 류는 조각에게 갖가지 살인기술을 전수시켜주고 그 둘은 함께 방역 업(살인청부업)을 시작한다.


조각은 한때 임신도 했지만 아이는 낳자마자 입양 브로커의 손에 넘기고, 오로가 나오는 몸으로도 살인을 해야 했다. 조각은 어느 순간 류를 남몰래 사모하게 된다. 하지만 류는 이미 <조>라는 아내가 있었고 그들 사이에는 아이도 있었다. 그래서 마음을 숨긴 채 동업자로써만 류의 곁에 있으려고 하지만, 방역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괴인의 습격으로 이미 시체가 된 조와 아이를 발견하게 되고 그 둘은 마치 조와 아이를 위한 진혼 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딱 하룻밤을 지내게 되지만, 류는 이제 소중한 것은 곁에 두지말자며 선을 긋는다.


그렇지만 집이 폭발하던 그날, 류는 조각을 지키기 위해 몸을 날려 그녀를 구해냈고, 그 일로 소중한 것을 모두 잃은 조각은 강박처럼 주변에 뭔가를 두려고 하지도, 마음을 주려고도 않는다. 그리고 류는 평생 잊지 못할 주홍글씨처럼 그녀의 가슴에 남아버린다.


예순이 넘는 나이에도 방역을 계속하는 조각에게 투우라는 젊은 방역업자가 어느 순간, 눈앞에서 깔짝거리기 시작한다. 그는 퇴물 취급받는 조각과 달리 우수한 방역업자로 특히 에이전시 담당자인 손 실장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데, 이상한 점이 있다면 조각만 보면 시비를 건다는 것이다. 원년멤버로써 에이전시에서 대모로 불리며 그래도 나름 공경을 받던 조각에게, 투우는 건방지다 못해 가끔은 살인충동까지 일으키는 건방진 놈이었다. 처음에는 귀엽게 보려고 했지만, 도를 넘어선 그의 비아냥거림이 거슬리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자기가 투우를 이길 수 없음을 알기에 조각은 참는다. 그렇지만 조각이 방역을 할 때 그가 괜히 기웃거리거나, 그녀가 우연히 스쳤던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그녀가 신세졌던 강 박사의 가족을 건들이면서부터는 조각은 투우를 가만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투우가 강 박사의 딸을 이용해 도전을 해온다.


조각도 뒤에 투우의 정체를 알게 되고, 투우는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함을 내심 분해하는 것 같은데, 아마도 짧은 시간 자신을 보살폈던(이유가 불순했던 간에) 조각에게, 세미나다 뭐다하며 바빴던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결핍을 조각을 통해 채우지 않았을까알약을 삼키지 못하는 자신을 위해, 잊지 않고 절구에 곱게 약을 갈아주었던 가사도우미가, 어느 날 제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로 변모했을 때 투우는 공포감보다는 높은 곳에서 사뿐히 뛰어내려 신기루처럼 사라진 조각에게 일종의 동경도 느꼈던 것 같다.


우습게도 조각이 투우의 눈을 감겨주며 이제 알약은 잘 먹니? 라고 물었을 때 눈물이 왈칵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작가, 완전 내 감성이야)


아직은 갈 때가 아닌 것 같아요, . 드디어 제 손톱위에 인조손톱을 올린 조각은 그렇게 류를 떠올리며 처음으로 삶에서 낯선 기쁨을 맛보며 이야기는 끝난다. 평범한 삶. 곧 남들 다하는 것을 원했다는 것에 괜한 자책과 자괴감을 느끼고, 평범하지 못한 삶을 살기에 버리고 감추고 잊어야할 것이 많았던 조각이, 짧게나마 행복감을 느낀 것에 모든 독자들 역시 나처럼 조금은 가슴이 짠하지 않았을까싶다.

 

파과의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다. 부서진 과일, 흠집 난 과실이 그 첫 번째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 나이 16세 이팔청춘, 즉 가장 빛나는 시절을 뜻한다. 우리 모두 깨지고 상하고 부서져 사라지는 파과(破果)’임을 받아들일 때, 주어진 모든 상실도 기꺼이 살아내리라 의연하게 결심할 때 비로소 파과(破瓜)’의 순간이 찾아온다. 이처럼 소설 파과는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뜨거운 찬사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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