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문학은 정말 간만인 것 같다. 총 6권으로 이루어진 6명의 프로, 아마추어 작가들의 공포소설. 모두 짧은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어,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장편소설보다 굉장히 읽기 쉬웠다. 작가별로 여러 편의 단편이 실려 있기 때문에 사실 제목과 내용이 모두 머릿속에서 이어지는 소설은 없다. 전부 다 기억하기는 어려워서 특히나 무섭고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 몇 개만 추천하고 싶다.
무섭고 잔인하면서 슬펐던 소설 ‘행복한 우리 집에 어서 오세요’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좀비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서울경기일대로 좀비바이러스가 퍼지고 사람들은 좀비를 피해 집안에 꼭꼭 숨는다. 주인공가족은 평범한 중산층으로 부모님, 딸, 아들 이렇게 4식구가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좀비로 변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어쩔 수없이 화장실에 아버지를 가두게 된다. 그리고 집안에 고립된 채 좀비의 위험에 떨면서 겨우 삶을 연명해간다. 다리를 다쳐 남의 부축 없이 걸을 수 없게 된 딸. 아직 어린나이에 엄마와 누나를 지켜야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진 아들. 남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엄마와 좀비로 변해버린 아버지. 누나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흘러가고, 뒤늦게 깨달은 소소한 행복을 그리워하며 그들은 행복한 집에서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섬뜩하고 괴이한 이야기 ‘고치’
두 번째 아이를 유산하고 여행을 오게 된 남편과 아내. 빗속에서 이상한 마을로 들어서게 된 그들은 일단 허기를 채우기 위해 들어선 식당에서 ‘고치’라는 이상한 생선을 맛보게 된다. 동네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고개를 처박고 열심히 먹던 ‘고치’. 생전 처음 들어본 그 생선의 맛은 접시를 핥아먹을 만큼 맛이 있었다. ‘고치’로 배를 채운 부부는 민박집에서 1박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내가 없어진 것을 알고 남편은 그녀를 찾아 마을을 빙 돈다. 하지만 어디에도 아내는 보이지 않고, 그 와중에 배가 고픈 남편은 자꾸만 생각나는 ‘고치’의 맛에 혼자 식당으로 가 ‘고치’를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식당아주머니에게 밤 8시에 저수지로 가면 아내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남편이 저수지로 갔을 때는 ‘고치’를 위한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하고 있었는데, 그 제물의 정체가 어쩐지 사라진 아내의 모습 같아 남편은 공포를 느끼는데…. 과연 ‘고치’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이야기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소름 돋는 이야기였다.
혼자보다는 다 같이… ‘공포 인자’
공포증, 포비아(phobia). 이것은 정말 인류종말을 원하는 신의 의지일까?
어느 날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공포증, 포비아(phobia), 일명 ‘공포증 바이러스’가 지구곳곳으로 퍼져간다. 첫 번째 증상은 감기와 다를 바 없다. 가벼운 기침과 열을 앓고 감기기운이 사라지면 끔찍한 15일(일명 블랙 보름) 2차 증상이 나타난다. 2차 증상은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게 되는데, 대상은 사람마다 다르며 보통 무의식중에 공포를 느꼈던 것이 주 대상이 된다. 극심한 공포를 느끼게 되는 15일이 지나도 그 공포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3차 증상으로 사람들을 괴롭힌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과 접촉을 피하고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외출을 삼가고 늘 마스크(혹은 방독면)를 쓰고 다닌다. 하지만 속수무책으로 번지는 바이러스를 막을 수 없는데, 주인공의 엄마역시 감기기운을 앓은 후 모서리 공포증을 느끼고, 여동생은 귀신공포증, 아버지는 고립공포증을 느낀다. 하지만 이 가족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끔찍한 공포증을 느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옆에 있어주는 가족들이 공포를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다해 도와주기 때문이었다. 주인공도 마지막에는 바이러스에 걸려 고소공포증을 느끼지만, 그는 자신 있게 한걸음을 내딛으며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다짐한다.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이야기, 그리고 다양한 메시지들을 담은 단편들. 총 6작가나 되기에 단편이지만 읽는 시간은 꽤 길었던 것 같다. 하지만 상당히 즐거운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