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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

[도서]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

듀나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SF작가 듀나의 미스터리 단편집이다. 모두 여덟 편이 실려 있다. 작가의 말에서 “저는 미스터리 작가인데요.”라고 말하는데 그래도 SF작가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의 해명을 듣고 싶다면 작가의 말을 읽으면 된다. 장르에 대한 이해도 상당히 넓혀주는 글이다. 이 단편집에 실린 상당히 많은 소설들이 잡지 미스테리아에 실린 글들이다. 잡지를 거의 읽지 않지만 잡지 제목 정도는 알고 있다. 한 번 읽어볼까 생각했지만 밀려 있는 다른 책들 때문에 손을 내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손탁 호텔은 정명섭의 소설에서 만난 적이 있어 낯익다.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역사적 공간이란 점 이외는 작가의 창작들이다.

 

나의 머리가 점점 굳어간다고 느낀 작품이 바로 <성호 삼촌의 범죄>다. 밀실 트릭을 하나 놓고, 성호 삼촌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설명과 그 배경 등을 하나씩 들려준다. 성호 삼촌은 할아버지의 재혼 상대가 데리고 들어온 아들이고, 잘 생겼고, 서울대 출신이다. 방송에서는 실장님 전문 배우다. 이런 배경과 어떻게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우발적이고, 실수다. 살짝 변호한다면 운이 없었다. 하지만 이 살인은 은폐한 것은 큰 잘못이다. 피살자의 시체를 그의 공간으로 옮긴 후 밀실로 만들어 그가 범인이란 가능성을 지웠다. 잠시 그를 의심하는 부패 형사가 나오지만 말이다. 사실 이 트릭은 너무나도 많은 추리소설에서 이용한 것이다. 알고 나면 나처럼 자신을 탓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는 아주 잔혹한 살인 사건이 나온다. 우발적인 살인이 아니고 계획적이다. 연쇄살인이다. 참혹한 시체 모습은 잠깐 상상력에 제동을 걸고 싶다. 형사는 이 살인 사건을 좇으면서 단서를 하나씩 발견한다. 범인이 놓친 지문도 발견한다. 한국에서 지문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범인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범인의 행적을 찾을 수 없다. 연쇄살인범을 알지만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그의 자식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작가는 화려하게 범인의 마지막을 보여주지만 왜 그가 이런 연쇄살인을 저지르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괜히 장면들을 가지고 상상할 수밖에 없다.

 

표제작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는 이제는 약간 시들해진 것 같은 연예게 미투 운동과 관계 있다. 날짜와 시간을 표시하고, 화자를 이 영화에 참여한 배우로 정했다. 한 편의 영화 제작을 둘러싼 분위기와 권력 관계를 보여준다. 감독의 의도가 아닌 제작자의 입김이 더 강해지면서 망가지는 영화는 그렇게 낯설지 않다. 배우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재밌게 풀어낸다. 그리고 살인은 나중에 일어난다. 이 살인이 자살이나 실수로 마무리된다. 일기의 화자가 마지막에 깨닫는 진실을 솔직히 나는 깨닫지 못했다. <돼지 먹이>는 왠지 읽고 난 후 머릿속에서 줄거리나 이미지가 사라졌다. 몇몇 장면에서 실웃음이 난 것은 기억난다. 언젠가 다시 읽으면 다르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본다.

 

<콩알이를 지켜라>도 문단 내 성폭력 운동과 관계 있다. 오랫동안 그림책 콩알이로 사랑받아온 작가가 남편을 죽였다는 다른 여성 최은비의 전화를 받는다. 그녀를 강간하려는 것을 저항하다 저지른 살인이다. 보통 이런 경우라면 경찰에 연락하고, 자수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성폭행하려고 한 것을 아는 순간 콩알이에게 모성애 같은 것이 생긴다. 이후 진행되는 상황이나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더 추악하다. <누가 춘배를 죽였지?>는 과거 의문의 실종 혹은 살인 사건과 그 당시 감독의 아들이 새롭게 제작한 영화를 엮어서 풀어낸 소설이다. 그 당시 배우였지만 지금은 철학박사가 된 여인이 화자다. 시간의 흐름 속에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이 나오고, 용의자들은 한 명씩 사라진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감독의 의도는 상당히 흥미롭게 진행된다. 작가의 문제점이 하나 녹아 있다.

 

<그건 너의 피였어>는 범죄 사실을 고백하는 편지 형식이다. 낯익은 설정인데 마지막에 가서야 “그래, 예전에 이것과 같은 설정을 본 적이 있었지!”라고 생각했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방 하나 가득 흘러져 있는 피가 살인을 암시한다. 경찰은 이 방에 기거했던 사람들의 기록을 좇는다. 화자의 연인인 장수가 죽었다. 범인이 누군지 우린 안다. 하지만 우리가 안다고 생각한 것이 작가의 의도다.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관계가 드러나고, 숨겨진 섬뜩한 살의가 느껴진다. 재밌다. <햄릿 사건>은 오래 전 하이텔에 쓴 글을 다시 썼다고 한다. 원본이 사라져 다시 썼다고 하는데 이전 텍스터도 궁금하다. 햄릿을 다르게 해석한 시도는 약간 억지 같지만 햄릿을 좋아한다면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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