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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더욱 화제가 될 얼굴없는 작가 엘레나 페란테Elena Ferrante 의 '나폴리 4부작' (2017, 한길사) 의 궁금증이 풀리는 드디어 대단원 4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The Story of the Lost Child > 이다.

3편까지 두 여성의 삶의 파란만장함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어마어마한 반전이 4편을 손에서 놓지 않게 만든다.

잡지커버 화보사진을 레누는 자신의 딸이 아닌 릴라의 딸 '티나' 와 찍게 된다. 그리고 사라진 티나.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릴라는 자신을 자수성가와 자유영혼의 능력자로 추앙하여 마지않던 나폴리의 모든 이웃과 친구, 가족으로부터 자신을 삭제한다.

엇갈렸을 수도 있는 두 딸의 운명이 레누와 찍은 사진으로 빚어진 비극일 수도 있었음을 릴라는 간파하고도 남았으나, 원망과 저주를 스스로에게 벌주며 레누와의 우정의 끈을 놓지않던 릴리. 그랬던 그녀가 마지막 레누에게서 마저
자삭한 것은 자신의 삶과 나폴리 이웃의 상처를 모티프로 책을 썼기 때문일까?

이 소설은 인형의 상실에서부터 티나의 상실까지 두 여성의 인생을 적절히 변형하며 #페미니즘 을 함축적으로 서술했다.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라는 제목이 나타내는 바대로 잃어버린 또는 버려진 인형의 테마는 나폴리 4부작 첫 장을 다시 들춰보게 한다.

레누와 릴라의 우정이 돈 아킬레의 현관으로 이어지는 층계에서 시작되었다. 티나와 누라는 두 아이의 인형의 상실은 두 친구의 우정의 출발점이며 릴라가 주도하고 레누가 뒤따르는 두 친구의 기본적 관계가 성립된 순간이다.

4권의 마지막 장면은 레누의 집으로 배달된 소포상자를 뜯고 돌아온 두 인형을 바라보는 60을 넘긴 레누의 우아하고 풍족하게 사랑과 존경받으며 늙어간 레누의 뒷 자태 아닐까?

소포상자 속 두 인형은 곰팡이가 피고 얼굴은 지워지고 50년 전 어여쁜 모습은 실종되고 유령신부처럼 재가 묻어있지 않았을까? 레누의 내면을 그렇게 보여주지 않았을까?

영화에선 나의 상상처럼 미스테리한 미술감 뿜어내며 #히치코크 적 연극적 연출을 하면 좋겠으나, 끈적끈적한 19금으로 4부작 스토리를 녹여낼께 뻔하다.

이태리식 #마담보바리, #롤리타, #블랑시 모두 섞인 무조건 정사신으로 관객을 빨아들이겠지. 엘레나 페란테는 그 방향으로 원작에서 많이 열어두어 각본도 필요없이 소설대로 시나리오를 써도 1시간 40분이 부족할 판이니 말이다.

레누의 마지막 연인은 여덟 설 연하의 폴리테크니코 대학 교수이다. 레누 스스로 그녀의 삶 저체가 <신분상승>을 위한 비참한 투쟁으로 전락할 것이다고 한다.

라파엘라 체룰로의 '#눈부신친구' 엘레나 그레코.
레누의 불안의 본질은 니노를 차지하는 것에서
60이 다가오며 레누에게 속한 그 무엇도 세월을 견뎌내지 못할까봐 두려움으로 바뀐다. 수십년 동안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환상 속에서 살았음을 불안해 한다. 이제 아무도 그녀의 책을 읽지 않는다.

레누의 불안의 본질은 #자삭 한 릴라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생각과 느낌으로 컴퓨터를 채워가며 할머니가 다된 지금이나 죽은 후에라도 릴라의 이름이 단 하나의 위대한 작품으로 영원히 남을 수 있다고 상상하며 불안해 한다.

릴라의 책은 시간을 이겨낼 것이다.

조만간 릴라의 파일에서 내 글보다 훨씬 좋은 글이 나오면 어떻게 하지? 나는 평생 영원히 기억될만한 소설을 쓰지 못했는데 릴라는 수년 동안 그런 글을 쓰고 또 쓰고 있는 거라면? (p.644)

황폐한 환경에서 태어나 모두에게 인정받는 지위에 안착한 작가로서의 레누의 이미지가 사실 텅 빈 허상이었음이 드러날 것이다. 딸들을 잘 키웠다는 만족감과 명성 그리고 마지막 연인에 대한 자부심까지 사라질 것을 불안해 한다.

그 불안을 이겨내다 보니 레누는 릴리가 썼을만한 거작을 쓰게 된다.
릴라는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고향동네 사람들에게 일어난 사건을 쓰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었다.

그러나 사라진 아이에 대한 릴라의 슬픔을 사라진 인형의 교차된 운명으로 선회적으로 쓴 레누의 노년의 소설은 책이 출간된 후 열광적 반응을 얻게 되고 노년에 그녀의 삶은 다시 충만해진다. 릴라는 자기 흔적을 완전히 지운다. 우정은 끝났거나 레누를 통해서 완성된다.

레누는 1980년 11월 23일 #베수비오 지진으로 처음으로 강한 릴라의 약함을 릴라의 고백을 듣게 된다. 그녀를 강하게 만든 것은 두려움이었다. 사랑도 오래가지 못하고 자식에 대한 사랑도 오래 가지 못하고 우정에도 집중할 수 없도 선의에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을 두려워 한다.

아~ 그래서 릴라는 레누가 리노를 떠나 고향 나폴리로 돌아오기를 집착했나?

재능이 차고 넘치는, 독립심이 차고 넘치는, 도전 정신이 차고 넘치는 릴라의 나폴리를 벗어나지 못하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독자로서 해석되지 않는 릴라는 <#경계의해체>는 무엇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단, 자기 스스로 삭제한 모두를 떠난 릴라는 무엇 하나 끝까지 해내지못한 패배자인가? 결혼도 실패, 자녀도 실패, 이웃, 사회적 성취, 우정... 모두를 실패한 여인인가? 상실의 아이콘인가? 레누처럼 독하게 페미니즘적 투쟁을 하지 않은 결과인가?

그런가? 그렇다면 레누처럼 연인과 기회와 심지어 친구의 스토리까지 차지하려고 투쟁하고 사는 것이 페미니즘적 투쟁이란 말인가?

나의 정답은, 레누의 시아버지가 흥얼흥얼 암송하던 시의 한 구절에 있다. - 글 착한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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