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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납치사건

[도서] 우리 가족 납치사건

김고은 글.그림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회사 일로 지칠 때면 바다가 보고 싶어진다. 탁 트인 바다, 하늘보다 넓은 것 같은 바다 앞에 서서 쏴아 쏴아 밀려들었다가 나갔다가 다시 밀려들었다가 나가는 바닷물을 보면 저절로 속이 시원해진다. 바다로 달려가면 마음이 그리 시원해지는데도 가지 못한다. 회사에 붙들려 도시에서 꼼짝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교와 학원에 붙들려 지낸다. 그렇지만 가슴속 한구석에 바다에 가고 싶은 열망이 잠자고 있어 언제든 살짝 일으켜 깨우기만 하면 이내 바다로 달려가고 말 게다. 여기 납치된 가족들처럼.

 

전일만 씨는 아침 7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일해역 3-1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린다. 일만 씨가 겨우겨우 지하철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사람들에게 떠밀려 벌러덩 나자빠지고 만다. 지하철은 일만 씨를 남겨 두고 휭하니 가 버린다. 그때 일만 씨 가방이 입을 쩍 벌리더니 일만 씨를 꿀꺽 삼켜 버린다. 그러고는 바람처럼 달려간다. 가방은 기차역에 가서 기차표를 끊고, 삶은 달걀이랑 사이다를 산다. 가방은 기차에 올라타 느긋하게 달걀도 까먹고 사이다도 마신다. 일만 씨가 회사에 가야 한다며 버둥거리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일만 씨가 마음을 비우고 한숨 늘어지게 자고 일어났을 때다. 가방이 기차에서 내려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왝 하고 일만 씨를 토해낸다. 그곳은, 그렇다, 바다다! 아무도 없는 바다. 일만 씨는 그만 회사도 집도 다 잊고 신나게 논다. 애들처럼 홀라당 벗고서.

 

나성실 씨는 8시면 늘 그렇듯 딸을 두드려 깨운다. 아침을 먹이고 학교에 보낸다. 그런 다음 재빨리 화장을 하고, 설거지까지 말끔히 해치운다. 회사에 가려고 현관문을 나설 때다. 치마가 훌러덩 뒤집어지더니 성실 씨를 보쌈하듯 싸안고 높이높이 날아오른다. 성실 씨가 지각하겠다며 발버둥을 쳤지만 치마는 더 꽁꽁 싸맬 뿐이다. 치마가 성실 씨를 내려놓은 곳은 남편이 있는 바닷가다. 성실 씨는 그만 회사도 집도 다 잊고 신나게 놀기로 한다. 훌러덩 치마도 벗은 채로.

 

전진해는 9시 30분 세상에서 가장 큰 칠판 앞에 서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수학 숙제를 풀고 있다. 알쏭달쏭한 숫자랑 기호 때문에 금방이라도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다. 문제를 다 풀지도 못했는데 띠리리리링! 수업 마치는 종이 울린다. 그 순간 머리 끈이 툭 끊어지더니 바람 빠진 풍선처럼 머리에서 숫자들이 빠져나간다. 숫자가 빠져나가는 반동으로 진해는 이리저리 날아다녀 엄마 아빠가 있는 바닷가에 툭 떨어진다. 진해는 그만 학교도 학원도 다 잊고 신나게 논다. 홀라당 훌러덩 벗고서.

 

밥때가 되자 일만 씨 가방이 바다로 뛰어들어 물고기를 잡아 오고, 성실 씨 치마가 산속에 들어가 과일을 따 온다. 세 식구는 실컷 먹고 치마 위에 누워 쿨쿨쿨 잔다. 회사도 집도 학교도 다 잊고서.

 

마지막이 압권이다. 해가 뜰 때까지 팔다리를 쫙 펴고 쿨쿨 자는 세 식구.

 

그래도 별일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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