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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도서]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이병률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슬픔이라는 구석

 

 

쓰나미가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 마을에

빈 공중전화부스 한 대를 설치해두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 통하지도 않는 전화기를 들고

세상에는 없는 사람에게 자기 슬픔을 말한다는데

 

남쪽에 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휴전선을 넘어

남하한 한 소녀는 줄곧 직진해서 걸었는데

촘촘하게 지뢰가 묻힌 밭을 걸어오면서

어떻게 단 하나의 지뢰도 밟지 않았다는 것인지

가슴께가 다 뻐근해지는 이 일을

슬프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나

 

색맹으로 스무 해를 살아온 청년에게

보정 안경을 씌워주자 몇 번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안경 안으로 뚝뚝 눈믈을 흘렸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너무 벅차서라니

이 간절한 슬픔은 뭐라 할 수 있겠나

 

스무 줄의 문장으로는

영 모자랐던 몇 번의 내 전생

 

이 생에서는 실컷 슬픔을 상대하고

단 한 줄로 요약해보자 싶어 시인이 되었건만

 

상대는커녕 밀려드는 것을 막지 못해

매번 당하고 마는 슬픔들은

무슨 재주로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슬픔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2020년 7월 25일 엄마가 돌아가셨다. 아흔일곱 살.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혼인을 하고 시아버지랑 단 둘이 살던 시기가 있었다. 이주 노동자의 아내로 살기도 했다. 자식 여덟을 낳아 셋을 먼저 보냈다. 남편이 저 세상으로 가고 10년 뒤에 가시겠다고 말씀하셨으나 29년을 더 사셨다. 자식들이나 다른 사람들한테 큰소리 한 번 치지 않았다. 고기를 드시지 않고, 도시에 살면서는 층계와 옥상에 꽃과 나무를 환하게 키우셨다. 아흔이 넘어서도 소녀처럼 부끄러움을 탔다. 돌아가시기 하루 전까지 아들과 며느리를 또렷이 알아보시고 떡을 챙겨 주고 싶어 하셨다. 당신보다 늘 자식이 먼저라고 여기며 실천한 엄마였다. 잠깐 기억을 잘 못하는 시기가 있었을 뿐 기억이 초롱초롱해 더 오래 사실 줄 알았는데 자식들을 부르지 않고 홀로 조용히 가셨다.

 

2020년 9월 11일 작은자형이 돌아가셨다. 일흔네 살. 워낙 덩치가 크고 체력이 좋아 그 누구보다 오래 사실 줄 알았다. 작은누나하고 금슬이 좋아 서로 사랑하는 게 느껴졌다. 3월에 간암 판정을 받고 항암 과정을 거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집에서 장례식장까지 스스로 걸어와 문상을 하기도 했다. 작은자형은 엄마가 당신네 집 근처로 이사하면서 빛이 났다. 엄마한테 날마다 찾아뵙고 말동무를 해 드리며 우스갯소리를 하여 즐겁게 해 드렸다. 어떤 아들도 엄마한테 하지 못한 일을 작은사위가 한 셈이다. 작은자형이 돌아가시기 엿새 전에 찾아갔을 때 우리를 알아보았다. 그러다가 급작스럽게 떠나셨다. 자식들이 미리 준비를 했는지 작은자형은 햇빛 잘 드는 언덕배기 소나무 밑에 묻히셨다.

 

지난해에 큰 누나가 떠난 뒤 올해는 식구 둘을 잃었다. “우리는 어찌어찌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태어난 게 아니라 / 좋아하는 자리를 골라 / 그 자리에 잠시 다녀가는 것”(「여행」)인가. 누나가 가끔 보고 싶고, 누나의 떠들썩한 수다와 하하하하 크게 웃는 소리를 듣고 싶다. 엄마한테 전화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제서야 엄마의 부재가 확 느껴지며 슬픔이 찾아온다. 작은자형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만 식구들의 죽음을 거치면서 세상이 달리 보인다. 푸른 하늘, 흰 구름, 눈부신 햇살, 물들어가는 나뭇잎, 가을 바람, 새의 힘찬 날갯짓, 물고기가 수면 위에 뛰어올라 반사하는 눈부심 따위 “보이는 모든 것들이 너무 벅차서” 이 “세상에는 없는 사람에게” 전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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