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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도서]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조던 스콧 글/시드니 스미스 그림/김지은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1984년 이승하 시인의 데뷔작은 놀라웠다. 신춘문예로 세상에 얼굴을 내민 25살 시인의 첫 작품은 내용도 좋았지만 말하는 방식이 눈에 띄었다. “어디서 우 울음 소리가 드 들려 / 겨 겨 견딜 수가 없어 나 난 말야 / 토 토하고 싶어 울음 소리가 / 끄 끊어질 듯 끄 끊이지 않고 / 드 들려 와로 시작하는 시는 세기말의 음울한 세계를 절묘하게 그리고 있었다. 말을 더듬는 방식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드러내었다. 말더듬이의 말이 어떤 웅변가의 말보다 더 설득력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침마다 낱말들의 소리를 들으며 깨어나는 아이가 있다. 아이가 듣는 낱말 소리는 완전하지 못하다. 소나무의 스-, 소나무 가지에 내려앉은 까마귀의 끄-, 아침 하늘에서 희미해져 가는 달의 드-. 소나무의 스-가 입안에 뿌리를 내리며 혀와 뒤엉켜 버리고, 까마귀의 끄-는 목구멍 안쪽에 딱 달라붙으며, 달의 드-는 마법처럼 입술을 지워버린다. 그러니 아이는 그저 웅얼거릴 수밖에 없다. 온전한 말이 되지 못하는 말로 하루를 여는 아이의 아침은 얼마나 참담할까.

 

아이의 슬픔은 학교에 가면 더해진다. 학교에서는 맨 뒷자리에 앉고, 말을 할 일이 없기를 바란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무언가를 물으면 모든 아이들이 돌아다본다. 아이들은 아이가 저희들처럼 말하지 않는다는 것에만 귀를 기울인다. 얼굴이 얼마나 이상해지는지, 얼마나 겁을 먹는지만 본다. 아이의 입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이는 어서 집에 가고 싶다. 데리러 온 아빠는 아이의 표정을 보고 강으로 데리고 간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단둘이 있으며 강물을 오래 바라본다.

 

아빠는 내가 슬퍼하는 걸 보고 나를 가까이 끌어당겼어요.

그러고는 강물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아빠의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의 말에 아이는 강물을 자세히 본다. 물거품이 일고 굽이치다가 소용돌이치고 부딪치는 강물. 아이는 어느새 강물과 하나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그리하여 울고 싶을 때마다, 말하기 싫을 때마다 아빠의 말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 그러면 빠른 물살 너머의 잔잔한 강물도 떠오른다. 그곳에서는 물결이 부드럽게 일렁이며 반짝인다. 아이의 입도 그렇게 말한다. 그렇게 나온 말은 비록 더듬더라도 강물이다, 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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