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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늬

[도서] 나는 무늬

김해원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도로를 위태롭게 달리는 오토바이를 가끔 본다. 청소년이 오토바이 핸들을 이리저리 꺾으며 자동차 사이를 빠져나가는 곡예 운전을 하고 있다. 신호등을 무시하기도 하고, 신호등에 멈춰 서 있으면 어김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청소년이 운전하는 오토바이 뒷좌석에는 양철통이 묶여져 있다. 먹을거리가 들어 있다. 누군가 주문을 하면 빠른 시간 안에 배달하려고 오토바이를 몰고 달려가는 아이들. 운전면허는 갖고 있을까. 시운전을 충분히 한 뒤 운전을 하는 것일까. 배달 말고 다른 일을 하지는 않을까.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 아니 최저임금만이라도 받고 일할까. 혹시 사고라도 나면 산재로 처리될까. 여러 걱정들이 뒤따라온다.

 

여기,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다 뺑소니 차에 치여 죽은 청소년이 있다. 열일곱 살 이진형이다. 새도시로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족발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다 죽었다. 족발집 사장은 오토바이를 몰래 타고 나가서 사고가 났다며, 이진형을 오토바이 도둑으로 몰고 죽음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뺑소니에 일을 시킨 사장은 모르쇠다. 어른들이 그렇게 빠져나갈 때 이진형에게 동네 누나들이 있다. 사고 현장에 있다가 병원까지 쫓아온 윤지윤, 할머니가 쓰러져 병원에 갔다가 윤지윤에게 진형의 사고를 묻는 문희,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고 문희의 할머니 옆 병상에 있던 오사강, 이들은 모두 열여덟 살이다. 병원에서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이진형 죽음의 진실을 찾아 나선다.

 

, 사실은 창피해서 너네 안 보려고 했는데, 내가 맞고 사는 건 아무도 몰라. 그저께부터 학원 끝나고 여기 오면서 너희 생각했어. 그런데 정말 너희가 올 줄은 몰랐어. 오늘 너희가 와서……. ”

우리가 와서 뭐?”

감동이야.”

윤지윤이 훌쩍이면서 말하는데, 나는 소름이 돋았다. 좋아서 너무 좋아서 소름이 돋는다는 걸 처음 경험했다. 나는 언젠가 이 아이들한테 내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아이들이라면 내 얘기를 들어 주지 않을까 작은 기대가 뻔뻔하게 오소소 돋아 올랐다. (207 ? 208)

 

윤지윤은 성적이 떨어지면 부모한테 맞는다. 공부를 잘하여 모범생으로 보이지만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다. 지윤은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는 치욕을 문희와 사강한테 말한다. 소설의 화자인 문희는 일곱 살 때 엄마가 동반자살을 하려고 수면제를 주었으나 먹지 않아 살아남았다. 할머니랑 단둘이 살면서 숨도 크게 쉴 수 없었다. 오사강은 워낙 활달한 성격에 싸움을 잘할 것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평화주의자다. 사람들 마음을 잘 읽고 대처하여 폭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덕분에 이진형 사고의 진실을 찾는데 큰 활약을 한다. 진형과 같은 족발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태주도 합류한다.

 

저마다 상처가 큰 아이들이다. 살아서는 이름도 얼굴도 몰랐던 동네 동생 이진형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진실을 찾으러 가는 과정은 사고의 진실을 찾는 것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문희는 윤지윤이 문희라고 하지 않고 무늬라고 부르는 첫 만남 때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무늬를 찾아가게 된다. 어렸을 때의 아픈 일을 이야기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겪는다.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가능한 치유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북돋으며 포기하지 않고 끝내 진실을 밝혀낸다. 진실을 밝힌 것이 또다른 시련의 시작일지라도 이들은 이제 과거랑 완전 다르다. 태주가 그린 그라피티 앞에 선 모습은 스스로 빛나는 아이들이다.

 

벽에는 까만 밤의 도시가 그려져 있었다. 그 도시를 달리는 오토바이에 탄 사내아이는 한 팔을 번쩍 들고 있었다. 그 팔에 찬 노란 팔찌에서는 반짝이는 빛이 포물선을 그리며 흩어졌다. 마치 노란 팔찌에서 빛이 나오는 것처럼. 오토바이 뒤로는 빌딩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오토바이가 닿지 않는 곳은 어둠이었다.

도시에 불을 밝히는 아이, 내가 중얼거리자 김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런 뜻으로 그린 거야.”(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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