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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

[도서] 화창

김영승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이방인

 

버스비 900

버스 타서 죄송하다고

百拜謝罪하며 내는 돈

 

화장실 100

오줌 눠서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아들 고등학교 신입생 등록금 사십오만 구천오백팔십 원

학교 다녀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상갓집 부조금 3만 원

살아 있어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공중전화 100

말 전해서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돼지고기 한 8,000

처먹어서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서러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있기 때문에

 

含笑入地할 수

있는 것이다

 

 

데뷔 때부터 반성하던 시인이 백배사죄한다. 버스 타서’, ‘오줌 눠서’, ‘학교 다녀’, ‘말 전해서’, ‘처먹어서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한다. 따지고 보면 백배사죄할 일이 아니다. 백배는 고사하고 전혀 사죄할 일이 아니다. 일상을 살아가려면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다. 그런데 왜 백배사죄하는가. 살아가는 일 자체가 백배사죄할 일이란 말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아니,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방인취급받으며, 백배사죄할 사람이라는 듯,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사실은 그렇게 살아가면 안 될 사람들, 이방인이 아닌 사람들. 하여 그들은 서럽고, 그리하여 죽을 수 있다. 서러움이 있기에, 한이 있기에, 웃음을 머금고 지하세계로 갈 수 있다.

 

이방인의 삶은 고독하리라. 그러나 그것이 自招한 고독이건 / 不遇의 고독이건 / 一生 고독했다는 것은 참 / 한 일이라고 여긴다. “더욱 고독해야한다고 여긴다. 비 오는 날 주전자 물이 끓고, 무궁화 살구나무 대추나무는 비에 젖으며, 폭우는 고매한 정신처럼 / 추상같이 쏟아진다”(고독). 폭우에 젖으면서도 고매한 정신으로 나아간다. 그러니 이방인에게도 좋은 일이 있어야 하겠다. “풍성히, 풍만히, 탐스럽게, / 나팔꽃이 수십, 수백 송이 활짝 피좋은 일이 있”(조금이었으므로 다였노라)어야 하겠다.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일상에서 죄송하지도 않은 일로 백배사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나팔꽃 활짝 피듯 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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