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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도서]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곽재구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시인은 중고등학교 시절 한 여자만 사랑하다 세상을 뜨기를 바랐다. 대학 시절엔 여기저기 길 위를 떠돌아다니며 시를 쓰다 어느 눈 많이 내린 겨울날 눈 위에 쓰러져 얼어 죽는 낭만을 꿈꾸었다. 청소년 시기의 꿈을 이루고 있는지 그리고 대학 시절의 꿈은 여전히 유효한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의 꿈은 오롯이 시인에게 새겨져 있는 듯하다. 여기저기 길 위를 떠돌아다니며 시를 쓰는 꿈은 이루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여기저기 길 위를 떠돌아다니고 그 어떤 시인보다 더 많은 시를 길에서 쓴 시인이 아니던가. 그도 그럴 것이 시인은 수없이 많은 한뎃잠을 잔 뒤에야 별처럼 맑은 영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믿었거니와 실제로 그러했다. 시인이 쓴 시는 별처럼 맑은 영혼의 노래였다.

 

시인의 여행은 사실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시만 써서 살아가려고 했지만 암초처럼 부딪치는 현실의 벽이 높았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든 게 막막하고 삶이 시시해 보였다. 그럴 때마다 떠돌아다녔다. 포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한 힘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저녁놀을 보며 온몸으로 자신을 느끼는 시간을 거치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고, 이튿날이면 세상 속으로 들어갈 힘을 얻었다. “밀려오는 파도의 물살마다 뜨겁게 새겨지는 햇살들. 불기둥처럼 내 가슴속으로 밀려오는 그 햇살들의 광휘 속에서 나는 다시 내가 써야 할 시의 체온을 느꼈고, 기꺼이 세상의 톱니바퀴 속으로 다시 맞물려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기에 시인이게 포구는, 여행은, 시와 다르지 않다.

 

섬마을 학교의 국어 선생님. 유 선생님의 도움으로 넙도 초등학교 전교생 30명과 유치원생 여덟 명을 한데 모은 교실에서 한 시간 동안 행복한 시 수업을 했다. 만나는 모든 이에게 인사를 하세요. 할머니에게 할아버지에게 선생님에게 하늘의 구름에게 오리에게 눈사람에게 감나무에게 벽시계에게 의자와 버스에게 연필과 동화책에게. (234)

 

시가 별것인가요. 입이 없고 손이 없고 발이 없는 것들과 함께 걷고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거예요. 그러다 해가 지면 함께 잠들고 해가 뜨면 함께 새날의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345)

 

시인은 천상 시인이다. 날마다 시를 보고 날마다 시를 쓴다. 보고 듣고 쓰는 모든 게 시다. 여행 산문집조차 시로 다가온다. 포구며 거기서 만난 사람과 풍광에 한정되지 않는다. 시인의 몸짓 또한 시로 다가온다. 이를테면 2백여 젼 전 구강포 바닷가를 핏발 선 눈으로 바라보았을 왕조시대 지식인에게 사과와 귤, 홍주와 설아차, 세 권의 책과 제물들을 바치며 가을 햇살이 참 좋네요. 어른 계실 때는 더 좋았겠지요. 이곳 갈대밭에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어른이랑 밥 한 끼 먹고 싶었지요”(133) 말하는 시인이라니! 영덕 바닷가에서 마지막 버스를 타려다 할머니가 들고 내린 짐을 보고 버스를 포기하고 할머니 집까지 짐을 들고 가는 시인이라니! 할머니에게 저녁밥을 얻어먹고 아들 내외가 오면 잠을 잔다는 곳에서 시를 쓰다 잠을 자는 시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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