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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가는 계단

[도서] 우주로 가는 계단

전수경 글/소윤경 그림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지수는 삼촌이랑 월드아파트 20층에 산다. 삼촌은 3년 전 그날 이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파트 앞 상가에서 작은 편의점을 한다. 엄마가 떠나면서 삼촌에게 준 선물이라고 했다. 그래서 저녁에만 잠시 나가고 다른 때에는 지수를 챙기는 일에 열심이다. 때로 너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삼촌은 지수를 챙기고 눈물이 많다. 3년 전 그날은 지수 식구가 동남아시아 피루섬에 있었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스노클링 장비를 쓰고 바닷속 물고기들을 보았다. 얕은 바다에도 물고기가 가득했다. 고요한 바다에 예고 없이 해일이 닥쳤다. 그날 관광객이 100명 넘게 죽었고, 그중 한국인은 17, 그중 3명이 지수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이었다.

 

20층에 사는 지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한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식은땀이 나고 숨이 가빠진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쓰러져 응급실에 간 적도 있다. 삼촌은 계단으로 다니는 지수를 안쓰러워한다. 폐소 공포증이 마치 재앙이라도 되는 양. 정작 지수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건강해졌고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 놀이도 만들어내었으니 남의 집 문 관찰하기다. 물론 남의 집 앞을 어슬렁거린다거나 해를 주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냥 문을 보며 그 너머에 사는 사람들을 상상한다. 별것 아니지만 재미있거니와 문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701호 할머니를 만난 행운은 엘리베이터를 탔으면 잡지 못했을 것이다.

 

701호 할머니는 항상 문을 10센티쯤 열어 둔다. 그날 6층에서 7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쯤을 지날 때였다. 갑자기 할머니가 열린 문틈으로 얼굴을 쑥 내밀고 지수에게 말을 건다. 우유를 마시고 가지 않겠냐고 묻는다. 우유를 싫어하는 지수였지만 만유인력의 법칙, 우주에 있는 모든 물체 사이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존재한다는 법칙에 따라 할머니 집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내 지수는 할머니에게 빠져버린다. 202597일 월식을 케임브리지에서 함께 보기로 약속하는 관계로 나아간다. 그러다 할머니가 갑자기 사라지고 지수는 할머니를 찾는다. 삼촌과 삼촌 여자친구, 동무들과 아파트 사람들까지 나서지만 할머니 행적은 묘연하다.

 

텔레비전을 봤다. 다른 우주에서, 또 다른 내가, 지금의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사람들이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공상 과학 소설가나 마술사가 아니라 물리학자들이었다. 나는 점점 몸을 세웠고, 결국 똑바로 앉아 다큐멘터리를 끝까지 보았다.

좋았다. 그냥 좋았다. 다 이해한 건 아니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과학이 아니라 미신이라 할지라도 믿고 싶었다. 꼭 여기가 아니더라도 다른 우주에 엄마 아빠와 동생이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건 내게 구원이었다. 가장 좋은 소식이었다. (152 ? 153)

 

지수는 할머니가 남긴 흔적을 통해 추론한다. 할머니는 6개월 전 다른 우주에서 우리 우주로 건너왔다. 2081년 케임브리지 물리학 연구소 701호에서 2018년 서울 월드 아파트 701호로. 할머니의 우주에서 만날 수 없었던, 충남 보령에 사는 누군가를 만나러 왔을 것이다. 그 누군가에 대해 할머니가 말한 적은 없지만 지수는 그 사람이 할머니가 영국으로 가기 전에 헤어진 가족이 아닐까 생각한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직감이다. 할머니는 돌아갈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매일 문을 조금 열어 두고 살았다. 그러다 지수를 만나고, 202597일 케임브리지에서 함께 월식을 보기로 약속했으며, 마침내 문이 열렸을 때, 자신의 우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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