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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도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마렌 고트샬크 저/이명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의 작가이다. 100권이 넘는 작품을 써 85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13천만 권 이상 판매되었다. 그이가 펴낸 책을 한 줄로 이으면 지구를 세 바퀴 두를 수 있을 만큼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독일에서는 172개 학교가 그이의 이름을 따서 학교 이름을 붙였다. 스웨덴의 언어문화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영향을 깊고 꾸준하게 받아 왔다. 오늘날에는 많은 아이들이 그이의 책에 나오는 인물로 이름을 불리고, 책에 쓰인 낱낱의 문장들도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자리 잡았다. 그런 만큼 스웨덴 정부는 그이가 세상을 뜬 해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제정하여 어린이 문화 발달에 기여한 작가들에게 엄청난 상금의 상을 준다.

 

아스트리드 안나 에밀리아 에릭손은 19071114, 스웨덴 남부 지방의 스몰란드 주 빔메르뷔 시 외곽에 있는 네스에서 농부 사무엘 아우구스트와 한나 에릭손 사이의 둘째로 태어난다. 네스에서의 어린 시절은 거침없는 모험으로 가득했다. 반항기의 청소녀기를 거쳐 1923년 중등학교 시험을 끝으로 학교생활을 마친다. 열일곱 살에 빔메르뷔 지역 신문의 수습기자로 일하기 시작한 아스트리드는 아이와 부인까지 있는 기혼의 중년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다. 기혼 남자에게서 혼외 아이를 임신한 그이가 선택할 여지는 거의 없었다. 첫 아이인 아들을 남의 손에 키우게 한 일은 두고두고 그이를 괴롭혔다. 그러나 그이의 두 번째 남자 또한 직장 상사였고, 그이는 외도까지 했다. 두 번째 아이인 딸을 처음부터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은 다행이었다.

 

무엇이 아스트리드로 하여금 미혼모의 상황을, 경제적인 어려움을 거치면서도, 세계가 사랑하는 어린이 책 작가로 만들었을까.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도 한결같이 어린이 편에 서서 활동하게 했을까. 어린이 책 작가와 편집자로 일하다 회사를 그만둔 뒤에는 세금 체계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폭력은 절대 안 된다고 역설했으며, 원자력 발전의 낙관론에 대해 무책임하고 용서할 수 없다고 하고, ‘린드그렌법이라고 불리는 동물보호법을 만드는 데 앞장서게 했을까. 이러한 활동 전체는 결국 자기 내면에 있는 어린이를 위한 것이었을 텐데, 무엇보다 어린 시절 네스의 자연환경에서 마음껏 자란 것이 큰 힘이었을 테고, 꾸준한 책 읽기도 영향이 컸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아스트리드의 글쓰기 습관과 폭력에 관한 이야기가 울림을 준다.

 

한 문장을 열 번 넘게 고쳐 쓰는 일이 잦았다.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문장들을 내 귀로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내 귀에 최고의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올 때까지 쓰고 다시 쓰고 또 고쳐 썼다. 어느 한 곳도 뚝 끊어지는 일 없이 문장들이 선율을 타고 흐를 때까지. …… 난 독특한 언어의 가락을 가지고 있는데, 이 가락도 이야기도 내 마음에 꼭 들어맞아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울림이다.” (132)

 

그녀는 한 엄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들이 얌전히 굴지 않자 엄마는 매를 들려고 했다. 그런데 때마침 회초리를 찾을 수 없자, 아들을 뜰로 내보내 막대기를 하나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아이는 한참 뒤 울면서 돌을 하나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막대기를 하나도 찾을 수가 없으니 그 돌을 던지라고 말했다. “그때 엄마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모든 일을 아이의 시선으로 볼 수 있었으니까요. 아이는 분명히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엄마가 정말로 날 아프게 할 생각이구나. 막대기 대신 돌로도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엄마는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한동안 함께 울었고 돌을 부엌 바닥에 내려놓았어요. 그때부터 그 돌은 언제나 경고물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자기 자신과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폭력은 절대 안 돼!”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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