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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도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저/김남주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열 꼬마 검둥이가 밥을 먹으러 나갔네. / 하나가 사레들었네. 그리고 아홉이 남았네.

 아홉 꼬마 검둥이가 밤이 늦도록 안 잤네. / 하나가 늦잠을 잤네. 그리고 여덟이 남았네.

 여덟 꼬마 검둥이가 데번에 여행 갔네. / 하나가 거기 남았네. 그리고 일곱이 남았네.

 일곱 꼬마 검둥이가 도끼로 장작 팼네. / 하나가 두 동강 났네. 그리고 여섯이 남았네.

 ........

 한 꼬마 검둥이가 외롭게 남았다네. / 그가 가서 목을 맸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네.

 - p. 44 ~  45 中에서 -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잊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책 속에 등장하는 이 동요 때문일 것이다. 동요라고 하기에는 다소 끔직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 동요에 따라서 한 명씩 비슷한 죽음을 맞이하며 동시에 인형 조각이 하나씩 사라졌으니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이 작품을 30년 전에 접했을 때에는 '검둥이'가 아닌 '인디언'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당시 내가 읽었던 책은 정식 판권 계약을 맺고 출간된 책이 아니었던 것 같다.

 

 추리 소설보다는 다소 기괴한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강했던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사실 충격이 컸다. 그 당시에는 홈즈나 뤼팽과 같이 사건을 푸는 또는 만드는 주인공의 활약에 환호하면서 추리 소설을 읽었었는데,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중 처음으로 만난 이 작품은 그러한 기존의 구도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비슷한 설정 또는 아예 나쓰키 시즈코의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와 같이 오마주한 작품도 있지만, 1939년 출간 당시에는 이 작품이 꽤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구성이었으며, 고립된 공간에서 한 명씩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이야기가 너무 비현실적인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사실 우리 역시 고립된 곳에서 누군가가 살인자라는 단서가 있다면 함께 행동하거나 한 곳에서 서로를 감시하면 되는데, 이들은 평온한 일상처럼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한 명씩 희생되는 이야기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죄자와 탐정 또는 형사'라는 명확한 관계 설정이 아니라 고립된 곳에서 누구나 범인이 될 수 있다라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아이디어는 오히려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비현실적인 부분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오늘날 추리 소설들이 기존의 것과 차별성을 더하기 위하여 기발한 트릭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애쓰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미 애거서 크리스티는 그녀의 작품을 기존 작품들의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바로 이 작품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미스 마플'이라든지 '푸아로'라는 인물을 내세운 소설도 있지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같이 특정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고도 독자의 관심을 자극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추리 소설을 쓸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저마다 각기 다른 이유로 한 섬에 초대된 10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틀어 놓은 축음기에서 그들의 숨겨진 과거 이력이 흘러나오는 순간의 그 긴장감은 작품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섬이라는 고립된 상황에서 겉모습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법적 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살인과 연관되어 있다는 서로의 모습에 대하여 그들은 애써 상황을 부정하지만, 곧바로 동요의 내용대로 한 명씩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서로 협력하면서도 의심하는 상황이 형성된다. 분명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 사람들을 섬으로 모이도록 만들고 한 사람씩 살해하는 이러한 설정은 당시로서는 꽤 낯선 설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 역시 이 작품을 30년 전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긴장과 흥미를 동시에 느끼면서 읽을 수 있던 점을 감안한다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 작품은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추리 소설로서 충분히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원래 추리 소설은 한 번 읽고나면 그 사건의 진실을 알아버린 상황이 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반복하여 읽는 경우가 드문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오히려 다시 읽으면서 당시로서는 그 기이한 범죄에 대한 진실이 무엇일까라는 궁금함 때문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들을 새로이 알게 된다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믿음이 없는 자는 자기가 파놓은 구덩이에 빠지고, 자기가 감춘 올가미에 자기 발이 걸리리니. 주는 당신이 내리는 심판으로 스스로를 드러내시고, 악인은 자신이 판 함정에 빠지리니. 악인은 지옥으로 들어가리라."

 - p. 52 ~ 53 中에서 -

 에밀리 브렌트가 읽은 이 성서의 구절은 본격적인 사건이 진행되기에 앞서 등장하는 부분인데, 이 문구는 단순히 에밀리 브렌트의 종교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섬에 있는 이들에게 닥쳐올 재앙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기에 저자의 숨은 의도를 담아낸 부분이라 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섬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이곳에 오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데 있지...... 끝에 이른 셈이니까......'

 문득 그는 자신이 이 섬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 103 中에서 -

 섬에 갇혀 있던 이들 중 한 명인 맥아더 장군의 이러한 심리 묘사는 예전에 읽었을 때에는 그들에게 닥친 상황을 너무나 편안히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그가 범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설정된 부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섬의 외딴 곳에서 홀로 바다를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섬을 떠나고 싶지 않다라는 이 장면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에 대한 인정과 더불어 그것은 결국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에 스스로 수긍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게 된다. 10명 중 오로지 맥아더 장군 단 한 사람만이 비록 법적으로는 처벌받지 않았지만, 양심의 가책에 따라 반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요의 내용처럼 사람들이 차례로 희생되면서 동시에 그들을 상징하는 인형이 하나씩 사라지는 이야기의 결말은 결국 제목처럼 흘러가게 된다. 그리고, 훗날 바다에서 발견된 범인의 편지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이 사건의 진상을 해결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점에서 꽤 충격적이다. 물론 이러한 구도는 오늘날의 추리 소설에서도 이미 구식이 되어버리긴 하였지만, 분명 당시로서는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을 정도로 꽤 충격적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추리 소설의 고전처럼 다가오는 이 소설은 오늘날 우리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무관치 않다라는 점에서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범죄에 대한 재판부의 양형 기준의 상이함에 따라 처벌이 천차만별이고, 동시에 분명 큰 죄임에도 불구하고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거나, 내부 부정을 통하여 무죄 내지는 거의 처벌을 받지 않는다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등장하는 범인의 고백에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꽤 많은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이 추리 소설의 고전으로 불리우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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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춍춍

    앗. 이책 제가 빌려줬다가 분실했던 책이네요ㅜㅜㅎ 제가 소장하고 있던 붉은 표지와 달라져서 한눈에 파악못했네요ㅎ 저도 책속 노래가 인디언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이책은 검둥이네요. 읽은지 오래되어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질 않지만 그 노래에 맞춰 한명씩 사라지는 오싹한 느낌은 다시금 떠오르네요. 괜시리 사라진 제 책의 행방도 궁금해지는군요^^;;

    2019.02.17 21:3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이 책이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최근 다시 디자인을 바꿔서 출간한 책이더군요. 또 이 작품에 한해서만 리커버 북으로 나오기도 했구요. ^^
      확실히 예전 작품에서는 인디언으로 나왔던 것이 맞군요? 이제 정신 판권을 갖고 출간된 책에서는 섬의 이름도 흑인을 상징하는 것이기에 아마 동요 내용도 검둥이라고 표현되는 것이 옳아서 그렇게 나온 것 같습니다. 이 리뷰를 통하여 분실한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게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

      2019.02.17 21:45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제목만 보고는 그랬답니다. 이 리뷰 누군가꺼를 읽었는데 어랏 또네. 서평 기한 마감 임박인가. 낮에 방문했다가 아래 리뷰에 댓글 남기고, 그 제목과 비슷해 혼동했음을요 ㅋㅋ

    2019.02.17 21:3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ㅋㅋ. 안그래도 저 역시 우연의 일치였지만, 이 책의 제목이 하인리히 뵐의 작품과 제목이 참 비슷하다는 점이 신기했어요. 아마 아자아자님처럼 혼동하시는 분들이 꽤 있으실 것 같아요. 의도치 않게 비슷한 제목의 다른 장르의 작품을 연달아 읽게 되었네요. ^^

      2019.02.17 21:40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제가 읽은 책은 검붉은 색이 조화로운 표지로 몇 년 전에 구매해 읽었는데, 비교적 얇은 편임에도 몰입감 대단하더이다. 하나씩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고립된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감과 서로를 의심해야는 분위기가 압권이더군요.

    2019.02.17 21:5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제가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의 감정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수 십년이 지난 이제서야 애거서 크리스티의 명작들을 하나씩 구매하여 읽고 있는데, 나름 저에게는 소확행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감동을 잊지 못하여 이제 다시 읽고 있으니 말이죠. ^^

      2019.02.18 05:35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