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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리어스 로젠월드의 기부에 관하여

 줄리어스 로젠월드(Julius Rosenwald·1862~1932)는 1910년부터 1925년까지 미국의 종합 유통업체인 시어스 로벅의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미국사 산책'의 6번째 책에서 다루는 시기에 언급되는 인물인데, 그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바로 그의 기부 철학과 함께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명예 박사학위와 같이 그의 이름이 남는 것에 대해서는 꺼려하면서 대부분 거절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부를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그의 이름을 남기도록 한 것으로 유명하다. 언뜻 보면 자신의 기부 행위를 과시하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으며, 특히 동양권의 시각에서는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그의 생각을 읽어본다면 아마도 그의 기부 철학이 달리 보여질 수 있을 것이다.

 "익명의 자선은 워낙 영웅적이기 때문에 찬탄은 불러일으킬망정 다른 평범한 보통사람들에게 선뜻 기부에 참여할 수 있는 자극을 주진 못한다. 자산, 기부 행위에 반드시 지역 사회를 광범위하게 개입시켜야 한다는 로젠월드의 자선 철학이 가슴에 와 닿는 이유다."

 - p. 66 中에서 -

 결국 로젠월드는 기부를 하면서 이름을 밝히는 행위는 기부에 대한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기부를 할 때, 이름을 밝히는 것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생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2. 여론 조사 - 갤럽의 등장

 1936년 민주당의 루스벨트와 공화당의 랜던 후보에 대한 선거 예측에서 당시 여론 조사의 선두주자였던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랜던이 당선될 것이라고 예측하였으나, 조지 갤럽(George Horace Gallup, 1901~1984)은 이 조사가 자동차와 전화를 가진 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루스벨트의 우세를 주장하였고, 실제 루스벨트가 선거에서 승리하게 된다. 이를 통하여 갤럽은 여론 조사에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였으며, 이후 단 한 번의 미국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고 모두 당선 예측을 하면서 오늘날 여론 조사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론 조사는 점점 폐해를 보여주는데, 책 속의 내용은 이러한 변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갤럽은 원래 여론에 순응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이상 아래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여론 조사가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들이, 또 여론 조사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할 사람들이 여론 조사를 양산해내고 또 언론이 비교적 생산원가가 싸게 먹히는 뉴스의 일종으로 여론 조사 결과를 함부로 이용함에 따라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오히려 매우 무책임하고 변덕스렁 정부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을 뿐만 아니라 여론 조작을 더욱 쉽게 만들어주는 결과까지 초래하고 만다.

 - p. 187 中에서 -

 오늘날 여론 조사가 언론에서 뉴스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과 정치권에서 여론을 의식하면서 이를 이용하려는 불온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기에 이 역시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3. 미국의 '기습 유도설'(진주만 기습 : 1941년 12월 7일)

- 1941년 11월 25일 루스벨트가 육군장관에게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그에 대하여 큰 피해를 입지 않으면서 일본의 침략성을 부각시킬 방법을 지시한 것.

- 1941년 11월 26일 영국 처칠 수상의 일본 항공모함 이동에 대한 경고를 미국에 전달.

- 주미 일본 대사에 대한 미국의 모욕

- 미 국무장관이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12월 7일에 있을 것이라고 기자에게 말한 점.

- 12월 5일(진주만 기습 2일전) 루스벨트는 군 내부에서 감지되던 일본의 진주만 공습 임박에 대하여 함구할 것을 지시

- 12월 6일(진주만 기습 1일전) 루스벨트가 내일 전쟁이 터진다고 말하였으며, 진주만 공습을 "위대한 구원"이라고 반긴 점.

 위의 6가지 사항이 이 책에서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미국의 유도 내지는 방관 하에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제시하고 있는 대목이다. 위의 사항이 실제 사실이라면 미국은 전략적인 차원에서 진주만 공습이라는 전투를 유도한 셈이다. 이는 미국 내에서 여전히 전쟁에 참여하지 말라는 여론이 우세하였기에 이를 뒤집기 위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진주만 기습 이후 미국의 반전 여론은 참전 여론으로 돌아섰다. 더구나 '진주만 기습' 당시 미국의 주력 항모는 정박하고 있지 않아서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으며, 점점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져가는 전함 몇 척만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기습 유도설'이 큰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대목에서 전쟁에 대한 미국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실제로 전쟁에 참여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한 음모였다면, 1941년 이 시기는 히틀러의 제 3제국의 독일군의 최대 전성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오히려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기 때문에 이미 세계의 패권은 미국에게 넘어가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4. 프랑코의 장기집권 비결

 이 책에서는 스페인 내전에 대한 부분도 꽤 상세히 언급되어 있는데, 흥미로운 부분은 쿠데타를 일으킨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사망할 때까지 무려 36년간(1939~1975) 장기 집권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동시대의 독재자인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가 비교해 본다면 분명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가톨릭을 전면에 내세운 점

 - 개인적으론 축재나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 않은 점

 - 실용적인 테크노크라트의 등용과 현실주의 외교 노선

 - '버터와 소형승용차 파시즘'으로 불릴 정도로 민생을 돌본 점

 개인적으로는 프랑코의 현실주의 외교 노선이 아마 그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생각된다. 그가 내전을 일으켰을 때,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한 인물이 히틀러와 무솔리니였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코는 세계대전 기간 중에 중립을 고수하였다. 물론 추축국에 보다 협조적인 자세를 보여줬지만, 공식적으로는 중립국의 자리를 지켰기 때문에 전쟁 이후에도 그의 정치 생명은 유지될 수 있었으며, 이후 열강들과도 외교적으로 일정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기에 그의 정치적 기반은 확고해질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하여 나도 이 책을 통하여 처음 알게 된 부분이지만, 사생활과 민생, 종교적인 부분에서도 나무랄데 없는 행적을 보였기에 그의 장기간 독재가 힘을 받을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다만 독재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독재자들이 내뱉는 달콤함에 취하여 그러한 독재에 항거할 수 없었던 스페인의 역사는 분명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미국사 산책 6

강준만 저
인물과사상사 | 201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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