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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윌리엄 화이트의 [조직인간]

 1950년대 미국은 점점 개성이 상실되어가면서 동시에 중산층 역시 표준화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윌리엄 화이트 역시 자신의 저서 [조직인간]을 통하여 당시의 미국인의 모습을 설명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윌리엄 화이트에 대한 설명을 [미국사 산책 8]에 언급된 내용으로 공유해 본다.

 '조직인간'은 그간 미국 사회를 지배해온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역사적 변형을 의미했다. 일과 근면, 절제된 만족과 같은 청교도 윤리가 '사회화'와 '순응주의'로 대치된 것이다. (중략) "조직인간은 기본적으로 대단위 집단이 옳으며 개인은 틀리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이 조직에 맞추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굳게 믿었다. 화이트에게 이는 미국적 가치의 중요한, 그리고 어쩌면 영환한 변화를 의미했다......미국인은 과거와 다르게 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투표, 기도, 옷차림, 구매, 사랑 등 모든 방식이 달라졌다. 이 모든 것은 기업문화의 변화에서 나왔다. 돈 버는 방시이 바뀌면 다른 모든 것도 따라서 변화한다."

 - p. 23 中에서 -

 

2. 숭미(崇美)주의에 관하여

 1950년대의 숭미(崇美)주의는 오늘의 시점에서 비판하거나 조롱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당시 한국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엄연한 현실로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숭미(崇美)주의에 내재해 있던 물질주의가 오늘의 한국을 만든 원동력이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물질주의가 좀 심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는 가능하겠지만, 이를 전면 부정하는 짓은 어리석은 일이다. 배가 고플 때 물질 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 p. 142 中에서 -

 오늘날 친미와 반미가 공존하는 상황 속에서 1950년대의 숭미(崇美)주의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대하여 솔직히 누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을까 싶다. 먹고 살기 위해서 지푸라기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고쳐야 할 것은 고쳐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오늘날 우리의 경제 성장이 분명 미국의 원조에 기인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미국에 대한 찬양은 영원할 수 없다. 미국도 자국의 실리에 따라 지원한 것은 사실이기에 이제는 그들의 의도를 명확히 이해하고 그에 맞게 대처해야 하지 않을까? 무조건적인 친미 또는 반미는 내부 분열과 더불어 일부 세력에 의하려 놀아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이제는 확실히 인식하고 행동으로 대응해야 할 시기인 것이다.

 

3. 1964년 미 연방대법원의 '설리번 판결'에서 '현실적 악의'에 대한 언급.

 루터 킹 목사의 억울함을 주장하기 위하여 흑인 인권 단체는 신문에 주 정부의 차별적인 탄압을 신문 광고로 내게 된다. 그러나, 그 내용 중 몇 가지는 사실과 다른 것이 있기에 당시 앨라배마이 경찰 책임자인 설리번은 이에 대하여 소송을 제기한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미 연방대법원에서 '현실적 악의'를 입증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결국 흑인 인권 단체의 손을 들어준다. 그렇다면 '현실적 악의'란 과연 무엇인가? 상당히 낯선 개념이지만, 이 책에서는 허위(거짓말)의 인지 또는 진실에 대한 무모한 부주의를 '현실적 악의'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판결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그것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정부 관리가 명예훼손소송을 통해 과거 선동방지법의 목적을 성취하고자 하는 시도에 쐐기를 박았다.

 - 공적 이슈에 관한 논의는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 어느 정도 사실과 다른 진술은 자유스러운 토론에선 불가피하다. 표현의 자유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그것은 보호되어야 한다.

 - 공인은 비판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사인과는 달리 반박할 수 있는 언론매체에의 접근이 용이하다.

 - 나주에는 공인의 범위가 확대되어 노벨상 수상자까지 포함되었다.

 색다른 개념이지만, 결국 거대한 단체 또는 공권력이 소송을 통하여 개인 또는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단체에 대한 압박을 방지하는 것이 바로 1964년의 판결에 주요 골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도 그러한 사례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개인을 압박하기 위하여 무조건 소송을 거는 회사 또는 기관이라든지 의료 사고 발생시 그 입증을 전문가인 의료인이 아닌 피해자가 입증을 해야 하는 것도 넓은 범위에서는 이와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미국에 대하여 부정적인 사람이더라도 미국의 개인 보호에 대한 노력이라든지 개인에 대한 피해 보상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은 한국에서의 개인에 대한 보호와 권리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4. 하워드 진의 아이젠하워 행정부에 대한 지적

 아이젠하워는 1953년 비밀리에 이란 정부를 전복시키고, 1954년에는 민주 절차를 거쳐 선출된 과테말라 정권을 무너뜨리면서도 국민을 기만한 채 미국이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U-2 정찰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한 사실에도 국민에게 거짓말을 늘어놓았습니다.

 - p. 324 中에서 -

 미국에 의한 패권이 결코 정의에 기반한 것이 아닌 자국의 이익에 우선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하워드 진의 이러한 지적은 이후에도 계속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승만에 대한 제거를 계획한 점이라든지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독재 정권이 미국의 눈치를 보았다는 점은 그러한 사실을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확인된 부분이기도 하다. 심지어 훗날 칠레의 정상적인 절차로 집권한 아옌데 정권마저 무너뜨린 점도 하워드 진의 지적에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물론 칠레의 경우는 아이젠하워 정부 이후에 벌어진 사건이지만) 따라서 이러한 미국의 행보는 분명 염두해 두어야 한다. 우리 역시 그들의 실리에 부합되기에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이 된 것이지 그것이 어긋나기 시작한다면 현재의 관계는 보장될 수 없으니 말이다.

 

5. 나세르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사건 : '팍스 브리태니커'의 확실한 종언

 1956년 7월 나세르는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고 영국과 프랑스의 침공을 물리침으로써 제3세계 민족주의의 영웅적 존재가 되었으며 나세르의 아랍민족주의, 비동맹주의, 사회주의 노선은 '나세리즘(Nasserism)'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 p. 274 中에서 -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나세르가 부각되면서 아랍 세계에서 영웅으로 등장한 사건인데, 그 이면을 바라보면 영국에 의한 질서 내지는 평화를 상징하는 '팍스 브리태니커'의 확실한 종언을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한 이유는 아스완 댐을 건설하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것인데, 애초 미국이 그 비용을 지원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이집트가 미국의 간섭에 대하여 반발함으로써 그러한 지원은 백지화된다. 그래서, 나세르는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기로 선언한 것인데, 이 운하에 대한 이권을 갖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는 당연히 반발할 수 밖에 없었고, 이스라엘을 끌어들여 이집트를 공격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미국 입장에서 소련이 중동 아랍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는 것으로 판단되어 미국은 영국에 압력을 가한다. IMF 차관을 봉쇄하여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를 하락시켰고, 석유 공급 지원마저 중지하겠다고 천명하면서 결국 영국은 이에 굴복하여 군대를 후퇴하게 이르게 된다. 이리하여 나세르는 어부지리로 아랍민족의 영웅으로 등극할 수 있었으며, 소련 역시 아랍 진영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가장 큰 의미는 미국의 일방적인 압력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던 영국의 초라한 위상에 따른 확실한 '팍스 브리태니커'의 종언을 상징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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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異之我...또 다른 나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이제사 읽기 시작한 책인지라 뭐라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미국'이지만, 단지 강준만과 하워드를 읽기 시작했는데도 '미국의 오만함'이 하늘을 찌른다는 생각이 앞서고 있답니다. 역사적으로 그런 나라들이 결말이 좋지 않았는데 말이죵~

    2019.04.09 19:4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생전에 그러한 미국의 결말을 볼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또한 그러한 좋지 않은 결말에 우리도 괜히 엮이는 것이 아닌지도 좀 두렵기도 하구요. 그래서, 이 책을 통하여 미국사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지아님도 읽고 계신다니 힘을 받으면서 저도 강준만 교수가 아닌 다른 책들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역사란 다양한 시선을 통하여 바라봐야 하니까요. ^^

      2019.04.10 09:10
  • 파워블로그 춍춍

    책에 실린 내용이고, 리뷰에 담지 못해서 이렇게 따로 정리해주신거지만 책을 읽어보지 않은 저에겐 이 리뷰가 부록처럼 또 한권의 소책자로 다가오네요^^ 일목요연한 정리 덕분에 유익하게 읽을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미국과의 관계가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낄때가 참 많아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네 번째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2019.04.09 21:2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춍춍님에게 도움이 되서 다행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저도 좀 도움이 되고 있거든요. 나중에 책을 다시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이렇게 기록해 두면 틈틈이 활용할 수 있으니 말이죠. ^^
      우리가 일방적으로 미국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사례를 잘 떠올리면서 새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데, 그것이 잘 이루어지는지 우리 역시 함께 지켜봐야 한다는 점에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2019.04.10 09:12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