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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바로사 작전

 - 1941년 6월 22일 히틀러는 소련에 대한 침공을 지시한다. 독일의 위대한 군주였던 프리드리히 바바로사의 이름을 따서 '바바로사 작전'이라 불리운 이 침공은 2차 세계대전의 향방을 바꾼 대표적인 사건으로 손꼽힌다. 사실 스탈린과 히틀러는 양립할 수 없었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을 비롯하여 각종 연설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은 물론 동부지역이 향수 독일의 레벤스라움(생활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불가침 조약을 통하여 2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불완전한 동거에 들어가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서부와 동부 모두 전선을 형성함으로써 위기를 겪은 독일 입장에서는 소련과의 불가침 조약은 필수적인 것이었고, 스탈린 역시 군부에 대한 숙청으로 인하여 그의 붉은 군대가 재정비된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 역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부 전선에 대한 마무리와 함께 이제 히틀러는 그러한 불가침 조약을 깡그리 무시하고 소련에 대한 침공을 시작한 것이었다.

 

 소련 침공에 독일은 무려 300만 이상의 병력과 함께 2700대의 항공기와 3400대의 전차를 동원하였다. 또한 이탈리아는 물론 루마니아, 헝가리와 같은 동맹국까지 동원하였으니 독일로서는 모든 전력을 바로 이 전선에 집중한 것이었다. 독일은 역시나 프랑스 침공과 마찬가지로 세 개의 집단군을 통하여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그리고 키예프의 세 방향으로 쇄도하기 시작하였다. 소련 침공 초기에는 독일의 이러한 전격전이 크게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개전 첫날 소련의 공군은 거의 활주로에서 날지도 못한 채 파괴되었으며, 육군 역시 수백만의 사상자를 내면서 순식간에 내몰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군부 숙청에 따른 스탈린의 붉은 군대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으며, 지휘관의 무능은 물론 스탈린의 독단이 주요 원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탈린은 후퇴는 무조건 총살이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방어를 고수하지만, 독일의 전격전으로 인한 피해는 더욱 늘어날 뿐이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여기에서 큰 실책을 저지르게 된다. 애초 침공의 주요 타겟은 바로 모스크바였음에도 불구하고 초반의 독일군의 선전에 힘입어 오히려 키예프 방면에 더욱 주력하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독일 국방군 총사령부는 적의 수도에 병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이미 몇 차례의 승리로 인하여 장군들의 전략을 무시했던 히틀러는 그러한 독단적인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물론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이 지역에 대한 공략은 독일에게 자원 공급이라는 이점을 가져왔지만, 모스크바의 입장에서는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어쨌든 히틀러가 의도한 것처럼 키예프 공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이후 다시 독일군은 모스크바를 향해 진군하게 된다.

 

 

 2. 작전의 지연

 - 하지만 히틀러는 나폴레옹 군대의 실책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 우기를 맞아서 도로가 라스푸티차(진흙길) 상태로 바뀌면서 그들의 전격전의 속도가 더뎌졌으며, 이후 소련의 동장군이라 불리우는 추위로 인하여 독일군은 더욱 고통받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1941년 겨울에 모스크바가 육안으로 보이는 지역까지 독일군은 진출하였지만, 애초 겨울을 준비한 군복과 장비를 준비하지 않아서 결국 모스크바 점령에는 실패하게 된다. 더구나 소련은 일본과 불가침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추위에 강한 시베리아 방면의 군대를 동원하여 전장에 투입함으로써 오히려 독일군을 밀어내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에 대하여 히틀러는 스탈린과 마찬가지로 후퇴 불가와 현상태 유지를 명령하지만, 독일군은 이미 진격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미 전략적으로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독일 공군의 공중 보급으로 인하여 몇몇 지역에서 진지를 고수한 것 말고는 겨울에 독일군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이후 상황

 - 1942년 이듬해 다시 전열을 재정비하여 독일은 진격을 하지만, 이제는 모스크바에는 다다를 수 없게 되었다. 비록 블라우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소련의 코카서스의 유전 지대를 목표로 새로이 진격로를 수정하지만, 잘 아는 것처럼 그들의 진격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돈좌되고 이후 독일의 정예라 할 수 있는 6군 전체가 역으로 포위되어 1943년 초에 항복하게 됨으로써 독일의 소련 침공은 이제 요원한 일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소련의 중전차 KV-1과 T-34는 독일의 군장비가 소련에 비하여 우세하다는 선입견을 깨트렸으며, 초기의 실책을 통하여 스탈린은 쥬코프와 바실리예프와 같은 장군들에게 작전을 일임하면서 여전히 사사건건 후퇴를 허용치 않는 히틀러의 독일군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된다.

 

 1943년 7월에 벌어진 쿠르스크 전투의 대규모 전차전은 비록 전술적으로는 독일이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지만, 이 대규모 전차전의 피해를 소련은 간단하게 복구할 수 있었으나 독일은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이 시점 이후로 동부전선은 소련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게 된다.

 

 4. 의의

 - 사실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선은 독일과 소련의 동부전선이었다. 그러나, 냉전으로 인하여 우리는 물론 서구권에서는 그러한 동부전선은 그리 부각되지 않았다. 비록 서구의 원조가 있었지만, 천만이 넘는 사상자를 낸 소련과 5백만의 사상자를 낸 독일의 피해는 바로 동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를 하는 과정 중에 소련의 역할이 상당하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 2

존 톨랜드 저/민국홍 역
페이퍼로드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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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가을남자

    저도 최근에 독소전쟁의 동부전선의 상황과 스타린그라드 전투에 관한 책들을 읽게 되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비해 더욱 처참한 상황이여서 놀랐습니다. 비록 소련의 승리로 끝나지만 천 만 이상의 사상자를 낼 정도로 소련은 자국민들을 잔인하게 몰아 붙여서 승리를 거두었더군요. 특히 동부전선에서 히틀러의 독단으로 인한 실수가 여러 번 반복되는 부분도 매우 인상이 깊었습니다. 아마 프랑스 점령에 대한 승리감에 도취었던 실수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2019.06.20 16:3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가을남자님도 이 부분에 대하여 관심이 많으시군요. 저도 [독소전쟁사]라든지 히틀러와 스탈린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동부전선의 참혹함이 서부전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소 신사적으로 전쟁에 임했던 서부전선과 달리 동부전선은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하여 다른 한 쪽의 절멸을 목표로 한 전쟁이었으니까요. 포로에 대한 열악한 대우 및 학살은 물론 민간인에 대한 폭압이 서로 교차되면서 더욱 잔인한 전쟁의 모습을 보였으니까요. 아울러 히틀러가 그러한 패배에 일조한 부분도 있지만, 물량에 장사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실 독일이 초반의 기습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점은 곧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이미 전쟁의 향방은 어느 정도 초반에 결정이 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2019.06.21 10:18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독일 입장에서는 프랑스와 소련 중간에 끼어 있는 형국이었기 때문에 프랑스가 있는 서부전선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소련과의 불가침 조약은 불가피했다고 생각되네요. 서부전선이 어느정도 안정화가 되니 조약을 깨버리고 소련 침공을 한 것은 히틀러가 평소 공산주의에 적개심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은데 히틀러의 오판과 작전 실패 등으로 소련 침공이 실패함으로써 세계 제2차 대전의 승패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네요. 책찾사님의 깔끔한 정리 덕분에 평소 관심 있었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사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책찾사님~ 감사합니다.^^

    2019.06.20 20:5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네, 적을 굳이 양방향에서 상대할 필요가 없었기에 독소 불가침 조약은 악마들의 협상이나 다름이 없었죠. 필경 스탈린도 결국 독일의 창끝이 자신들을 향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 기간 동안 준비를 하려고 한 것인데, 서부전선이 일찍 마무리되고 그들의 예상보다 빨리 기습이 이루어졌던 것 같습니다. 두 독재자의 스타일을 봤을 때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정리를 통해서 간단하게 2차 세계대전에 대하여 떠올려 볼 수 있었는데, 추억책방님에게 도움이 되서 더 뿌듯해지네요. 감사합니다. ^^

      2019.06.21 10:20
  • 스타블로거 ne518


    독일이 소련을 공격해서 거기 사람이 많이 죽고 여성도 전쟁에 나갔다는 말 본 적 있군요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그런 게 연합군이 이기는 데 도움이 됐군요 소련에서는 그 전쟁을 다르게 말하기도 하더군요


    희선

    2019.06.21 02:2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독일의 침공으로 인하여 소련은 총력전에 돌입하게 되죠. 희선님 말씀대로 소련에서는 여성들이 저격부대 및 전투기 조종사로도 활약을 하였으니까요. 그에 반하여 독일은 전쟁 중반이 되어서야 총력전에 돌입하게 되니 결국 전쟁으로 인하여 과거와는 달리 민간인들 역시 피해를 입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결국 연합국의 힘이 독일을 압도하였으니 전쟁은 필연적으로 독일의 패배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19.06.21 10:22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