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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마리 아기 돼지

[도서] 다섯 마리 아기 돼지

애거서 크리스티 저/원은주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근육만 사용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몸을 구부리고 앉아 발자국을 조사하거나 담배꽁초를 줍고 유리 조각을 조사하는 것은 제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의자에 앉아 생각만 하는 걸로 충분하죠. 바로 이것..."

 푸아로는 달걀 모양의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바로 이것만 굴리면 모든 일이 해결되니까요."

 - p. 13 中에서 -

 사건을 의뢰한 칼라 레마챈트라는 숙녀 앞에서 한껏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이 남자. 현장에서 단서를 찾기 위하여 구석구석 예리하게 관찰하는 기존의 탐정의 이미지를 지워버리면서 단지 앉아서 머리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에르퀼 푸아로의 모습은 이전의 작품에서 그러한 뉘앙스를 살짝 풍기던 것에 반하여 이번에는 의뢰인 앞에서 대놓고 과시하고 있다. 도대체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다섯 마리 아기 돼지]는 에르퀼 푸아로가 생각하는 탐정으로서의 철학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모든 사건이 결국 인간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리있는 말이지만, 추리소설에서 심리 파악에만 주력한다면 독자로서는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에 다다를 수도 있다. 각종 증거와 단서를 찾아내고, 그것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야 고객은 그에 공감하며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에르퀼 푸아로는 이전 작품에서 현장에서의 각종 단서와 증언을 분석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일반적인 탐정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터라 그의 주장이 왠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인상마저 주게 된다. 그러나, 칼라 레마챈트가 의뢰한 사건은 푸아로의 그러한 수사 철학이 통용될 수 있는지를 이제 곧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 초반부터 독자의 주목을 끌게 된다. 바로 16년 전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의뢰이기 때문이다.

 

 칼라는 자신이 고작 대여섯살 무렵에 경험한 사건에 대한 진실을 확인해달라고 푸아로를 찾은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이자 유명 화가였던 에이미어스 크레일은 독살사건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게 되는데, 뜻밖에도 그 범인은 바로 그녀의 어머이니자 에이미어스의 아내인 캐롤라인 크레일이었다. 캐롤라인은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무기징역을 살던 도중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감옥에서 사망하게 되고, 어린 칼라는 캐나다에 있단 아버지의 사촌에 의하여 양육되어 이제서야 21살의 성인이 된 것이었다. 칼라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결백하다는 편지를 보냈음을 뒤늦게 알고, 이 16년 전의 사건을 바로 최고라 자처하던 푸아로에게 의뢰한 것이었다.

 

 이미 수사가 종결되어 재판까지 끝난 상황에서 그 사건을 다시금 조사해야 한다는 것은 오로지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그 사건을 재구성하여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야 함을 의미한다. 더구나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현장에서의 직접적인 단서는 경찰의 수사 기록이 전부였기에 푸아로는 사건을 처리한 인물들과 용의자로 의심될만한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인물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우선 캐롤라인의 변호사와 검사, 서기, 경찰 등을 만나면서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접하지만, 그 정보는 모두 캐롤라인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의 실질적인 이야기는 현장에 있던 인물들과의 대화와 회상을 통하여 진행되게 된다.

 

 주식 중개인이자 살해된 에이미어스의 죽마고우인 필립 블레이크, 필립 블레이크의 형이면서 에이미어스의 근처에 살고 있던 아마추어 약초 연구가인 메러디스 블레이크, 에이미어스의 마지막 작품의 모델이자 그의 내연녀였던 엘사 그리어, 캐롤라인의 이복여동생인 안젤라 워런, 그리고, 안젤라의 가정교사인 세실리아 윌리엄스가 바로 푸아로가 만나야 할 인물들이다. 이들은 캐롤라인에 대하여 각기 다른 감정을 내비친다. 필립은 자신의 친구를 죽인 그녀를 원래부터 못마땅했다고 생각했으며, 메러디스는 거꾸로 그녀에 대한 연정을 간직하고 있기에 호의적이었지만, 에이미어스의 내연녀인 엘사는 그러한 이유로 인하여 그녀에 대하여 상당히 적대적이었다. 세실리아는 호감을 갖고 있었고, 안젤라 역시 비록 이복자매이지만 언니에 대한 믿음이 강하였다. 캐롤라인에 대한 감정이 각기 달랐지만, 당시 어렸던 안젤라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캐롤라인이 범인이라는 사실에는 한결 같았다. 에이미어스가 이전과 마찬가지로 예술에 대한 열망을 이유로 대놓고 엘사와 바람을 피우는 상황에서 캐롤라인은 이에 분노하였으며,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그녀가 메러디스의 실험실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면서 '코닌'이라는 독을 몰래 훔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건의 주요 내용은 에이미어스가 엘사에 대한 그림의 막바지 작업을 하는 상황에서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다가 시원한 맥주를 요구하였고, 캐롤라인이 흔쾌히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가져다 주었는데 이후 에이미어스가 쓰러진 것이었다. 맥주병에는 '코닌'이 검출되지 않았지만, 잔에서 그 성분이 발견됨에 따라 경찰은 캐롤라인을 유력한 범인으로 체포하였다. 시원한 맥주를 가져다 준 사람이 캐롤라인이었고, 그 맥주를 마실 때에 에이미어스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바람을 피던 에이미어스에 대한 그녀의 분노를 감안한다면 그녀는 살인에 대한 동기와 수단, 기회를 모두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확실한 증거와 정황으로 인하여 캐롤라인은 법정에 섰는데, 그녀는 법정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도 않음으로써 결국 유죄를 선고받게 된다. 그나마 교수형이 아닌 무기징역으로 감형이 되었지만,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감옥에서 사망함으로써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명백한 사건의 결과를 16년이 지나서 다시금 푸아로가 조사를 하자 그 다섯 명은 당황해하면서도 푸아로와의 인터뷰는 물론 그 사건에 대한 자신들의 기억을 글로 작성하여 푸아로에게 제공을 하게 된다. 이는 이 작품이 초반에 푸아로가 장담한 인간 심리에 기반한 추리가 필수적인 상황을 형성하게끔 하고 있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는 시원한 맥주병과 맥주잔, '코닌'과 같은 몇몇 물질적인 단서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과거의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내용 그대로이기 때문에 거기에 추가하여 푸아로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이들의 관점과 그들의 심리가 고스란히 반영된 과거 그 사건의 기록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여 사건의 진실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었다. 과연 이들 중 범인은 누구일까? 혹은 원래의 결과처럼 특별한 반전이 없이 그대로 캐롤라인이 범인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에이미어스가 자살을 한 것일까? 설마 사건을 의뢰한 칼라 레마챈트가 저지른 것이었을까?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기 전에는 모두에 대한 의심을 쉽게 거둘 수 없게 된다. 16년 전의 사건을 의뢰한 것 자체에 의심을 품는다면 반전의 요소를 의뢰자인 칼라에게 찾아볼 수 있지만, 칼라는 작품에서 사건의 의뢰와 결말에서만 등장하고, 당시 대여섯살짜리 꼬마이기에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확실한 반전의 증거가 없기에 그대로 '캐롤라인이 범죄자가 맞습니다'라는 푸아로의 선언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범인은 그 내부에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증언과 기억을 통하여 알리바이라는 측면을 감안한다면 확실히 의심스러운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실제로 결말 부분에서 사건을 재구성하는 푸아로의 설명을 읽으면서 미소를 짓게 된다. 바로 그 인물이 거의 범인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지없이 곧바로 이어진 또 한 번의 반전을 통하여 전혀 다른 인물이 부각되면서 뒤통수를 맞게 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다섯 마리 아기 돼지]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창조한 에르퀼 푸아로 그 자체에 대한 설명을 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16년 전의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은 기존의 탐정들과는 확연히 다른 에르퀼 푸아로의 특징을 집중하여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력이 넘쳤다! 열정적인 젊음이 넘쳤다! 바로 에이미어스 크레일이 엘사 그리어에게서 발견한 것, 그가 온화한 부인에게서 등을 돌려 버리도록 만든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엘사가 바로 생명력이고 젊음 그 자체였던 것이다. (중략)

 '하지만 젊음은 그런 게 아니야! 젊음은 거칠고, 젊음은 강인하고, 강렬한 거야. 그래, 그리고 잔인하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젊음은 상처입기 쉬워.'

 - p. 151 中에서 -

 에이미어스가 그린 엘사의 그림을 통하여 젊음에 담긴 그의 분석은 지극히 심리적인 것이었다. 그가 만난 다섯 명의 인물들과의 대화와 기억 속에서 심리적인 불안감을 통하여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려고 했던 것처럼 그림과 같은 물질적인 증거마저 그는 오히려 심리적인 요소를 짚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이 작품은 그의 추리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점들로 인하여 이 작품은 스토리 자체도 흥미롭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수의 작품에 등장하는 에르퀼 푸아로 그 자체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는 점들이 많기 때문에 이 시리즈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오히려 이 작품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 향후 푸아로의 활약을 즐기고 또 이해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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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ne518


    푸아로도 안락의자 탐정이었나요 이번 이야기에서는 그런 모습이 많이 보이는군요 푸아로는 사건에 따라 다른 듯도 하네요 열여섯해 전 일이고 수사 자료를 본다고 해도 새로울 건 없고 사건이 일어난 곳에 간다 해도 뭘 알 수 없잖아요 그때 사건과 관계있는 사람 마음을 볼 수밖에... 그럴 때는 보통 사람보다 한사람 한사람이 하는 말에 마음을 더 써서 들어야겠네요 책을 볼 때는 그런 거 깊이 못 보기도 해요 푸아로는 잘 듣겠지요 뜻밖의 사람이 범인이라니... 누굴지... 실수로 그런 일이 일어난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모르겠네요


    희선

    2019.10.30 01:1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이전 작품에서는 현장에서도 활동을 하는데, 독자에게는 그저 보기만 하는 장면만 보이고 그에 담긴 의미는 마지막에서 몰아서 설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현장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아니라 이미 벌어지고 또 해결된 것으로 알려진 사건을 재수사하면서 그의 지론대로 증언하는 사람들의 내면 심리를 분석하여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으니 이전 작품과는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뜻밖의 사람이라기보다 결말을 제가 지목한 인물로 동의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한번 더 꼬아서 다른 인물을 범인으로 내세우고 있어서 왠지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지요. ^^

      2019.10.30 10:11
  • 스타블로거 異之我...또 다른 나

    범죄수사에 '심리'를 이용한 것이 꽤나 오래되었더군요. 요즘에는 '프로파일링'이라고 불리는 분들이 주로 담당하고 있지만 강력계 형사들도 '현장'에서 노련하게 범인을 검거하는데 널리 쓰이고 있죠. 하다못해 '가위바위보'를 할 때도 쓰는게 심리추리니까요. '네가 보자기를 낼 확률이 높으니까 난 가위를 내면 이기겠지. 하지만 넌 보자기를 내서 져본 적인 많기 때문에 다른 걸 내고 싶을꺼야. 그렇다면 가위를 낼까? 바위를 낼까? 확률적으로 바위를 내면 승리할 거라고 믿을 거야. 하지만 넌 지금 무척 긴장했고 지면 안 된다고 걱정하고 있을 거야. 그래서 과거의 경험 따위는 생각나지도 않고 당황해서 바위가 아닌 가위를 낼게 분명해. 결정했어. 난 바위를 내게써~' 안내면술래~가위바위보!! '음...보자기를 냈군. 하지만 난 진게 아니야. 왜냐면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를 한 거거든. 다음부터는 나의 연승이 이어질거야. 왜냐면 넌 지금 오랜만에 이겨서 무척 기분이 좋아졌거든. 분명 방심하게 될거야. 음화화 이건 나의 정신승리다'

    2019.10.30 01:4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그렇죠. 이 작품이 쓰여진 1900년대를 감안한다면 푸아로가 말한 심리 위주의 수사는 오늘날의 '프로파일링'의 원조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아님 말씀처럼 그 심리가 참 일상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든다면 확실히 수사에서도 활용할 여지가 있을 것 같아요. 가위바위보 같은 경우에는 보통 남자들은 주먹을 선호하다보니 전 남자하고 가위바위보를 하면 대부분 보를 냅니다. 그럼 적어도 비기거나 이기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비기게 되면 이후부터 순간적인 심리 분석과 나름의 확률에 근거한 감으로 무엇을 낼지를 정하지요. ㅋㅋ

      2019.10.30 10:13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 문제를 풀어간다니 대단합니다 증거도 물론 활용하겠지만 머리로 추리로 사건을 해결하는 멋진 탐정이군요

    2019.10.30 19:3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그 자신감에 다소 위축되긴 하지만, 사건에 대한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그러한 그의 수사방식이 결코 허언임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부분에서 희열마저 느끼게 되는 작품이지요. ^^

      2019.10.30 20:53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