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과 찾아든 여유를 [클래식이 알고 싶다]와 함께 한 이유는 클래식이 알게 모르게 나의 삶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어린 시절에 배웠던 피아노를 지금은 아예 다루지도 못하는 점과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대학 시절에 교양 수업으로 만난 클래식이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덕분에 클래식으로 내 삶의 여백의 일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 결국 클래식은 꽤 고상한 취미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책과 더불어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존재이기에 피아니스트 안인모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 책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음악과 함께 온전히 나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저자는 왜 19세기에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 그 시기를 향유한 낭만주의가 곧 지금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격정적인 사랑의 극단적인 감정들을 묘사한 그 낭만(Roman)처럼 우리 역시 지금도 그렇게 사랑을 하고 있기에 어쩌면 낭만주의는 결코 특정한 시기에 한정될 수 없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사랑은 지성 또는 이성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직관과 감성, 그리고 상상력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기에 열정과 환상, 자유가 넘쳐나는 낭만주의는 치열한 경쟁으로 인하여 점점 각박해지는 현재의 상황에 오히려 더 필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러한 낭만시대를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통하여 그려내고 있다.
살롱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친 슈베르트, 선의의 경쟁을 통해 인간적으로 그리고 음악적으로 발전해나간 쇼팽과 리스트, 그리고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려 한 슈만과 그의소개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쇼팽과 브람스, 그리고 슈만과 브람스가 사랑한 클라라까지.
- p. 305 中에서 -
이토록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면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독창적인 음악의 길을 걸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마 이러한 점이 저자가 이들을 통하여 낭만 시대를 다루고 싶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그러한 저자의 시도를 통하여 슈베르트에서부터 번외로 다뤄지는 멘델스존에 이르기까지 음악과 더불어 그들의 삶의 흔적을 따라가게 된다. 글을 통하여 작가를 이해하는 것처럼 음악을 통하여 음악가를 이해하고자 한 우리에게 이 책은 거꾸로 그들의 삶이 오히려 음악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면서 탄생된 것인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음악은 그들의 삶의 일부이기에 이것을 모두 모아보면 결국 그들의 삶으로 귀결되는 것이고, 또한 이들의 삶이 곧 낭만 시대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가곡 [송어]와 [피아노 5중주 '송어]를 비롯하여 [피아노 3중주]는 영화 [해피엔드]의 복수 테마곡으로, 그의 [마왕]은 모차르트의 [밤의 여왕의 아리아]와 비교하며 들을 수 있는 잘 알려진 곡들이다. 어쩌면 31세로 짧은 생을 마감하였기에 그의 음악에 대한 친근함은 그가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한 청년의 모습 때문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의견에 일견 공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음악은 그의 사랑과 삶을 오롯이 반영하고 있었으니, 그가 젊은 시절에 남긴 곡들은 여전히 사랑을 갈망하는 우리의 정서와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슈베르트의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뭉침 '슈베르티아데'라는 친구들과의 모임도 있었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항상 외로움이 따라다닌 그의 음악은 왠지 모르게 슬픈 구석이 있다. 즉흥적으로 곡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기에 그의 음악은 별다른 고민없이 그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에 그의 음악은 오롯이 그의 삶처럼 다가오게 된다.
그가 그토록 처절하고 애절하게 원했던 건 사랑이었고, 그의 선율은 사랑을 갈망하는 몸부림이었어요. 그에게는 수많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가 태생적으로 타고난 고독감은 음악 외에는 그 누구도 채워주지 못하는 것이었어요.
- p. 55 中에서 -
그런 점에서 조르주 상드와의 만남과 이별을 경험한 쇼팽의 음악적인 변화는 사랑이 그들의 음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프랑스 남부 노앙에 있는 상드의 조용한 별장에서 쇼팽은 가장 행복하고 생산적인 시기를 보내는데, 이 시기에 그가 작곡한 [즉흥곡 2번], [발라드 3번], [발라드 4번], [피아노 소나타 2번]은 그러한 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반대로 상드와 헤어진 이후 그녀와의 행복한 추억을 그리는 듯한, 눈물이 떨어질 만큼 슬픈 [마주르카 4번] 역시 음악에 깃든 쇼팽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상드와 헤어진 이후에 별다른 작곡을 하지 못한 그의 모습은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후 그를 사모하던 제인 스털링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쇼팽은 더이상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된다. 조르주 상드에 대한 사랑은 그의 음악 뿐만이 아니라 삶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쇼팽은 그 자체로도 낭만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나의 몸은 프랑스 파리에 있지만, 나의 심장은 조국 폴란드와 늘 함께했어. 내 심장을 폴란드에 묻어줘."라는 그의 마지막 유언이 조국 폴란드에 대한 쇼팽의 사랑을 담아내고 있지만, 혹여 조르주 상드와의 사랑이 끝까지 지속되었더라도 그 유언은 변함이 없었을지에 대한 의문을 표하게 된다면 쇼팽에게는 실례가 되는 생각일까?
쇼팽과 비슷한 시기에 살면서 교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리스트는 많은 면에서 쇼팽과 다른 행보를 보인 인물이었다.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에 전도되어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기교를 중심으로 한 그의 역동적인 연주는 사실 쇼팽으로서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허약한 체질의 쇼팽은 대규모 연주홀이 아닌 살롱 중심의 연주회를 열 수밖에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또한 리스트는 타고난 외모와 연주실력으로 이내 '리스토마니아'와 같은 여성 팬클럽을 거느릴 정도로 인기를 누렸으며, 커버송에 대한 개척과 리사이틀(한 명의 독주자만 출연하여 여러 작품을 연주하는 독주회)을 창시하였으며, 기교와 더불어 카리스마와 쇼맨십까지 신경을 쓰는 그는 음악가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그 역시 쇼팽과 마찬가지로 마리 다구와 카롤린이라는 여성과의 사랑을 빼놓을 수 없다. 화려한 연주자의 시절에는 마리 다구와 함께 열정에 사로잡혔으며, 이후 철학과 종교에 심취한 지적인 여성 카롤린과의 만남을 통하여 그는 연주자가 아닌 작곡가로의 변화된 삶을 살게 된다. 이러한 리스트의 사랑은 그를 젋은 시절엔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로, 바이마르에서는 드라마틱한 작곡가로, 로마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사제로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셈이었다.
브람스가 슈만의 집에 찾아온 그날은, 음악 역사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날이에요. 세 사람의 만남이 그려낸 사랑과 존경의 씨줄은 영감과 창작의 날줄과 만나 낭만이라는 한 폭의 멋진 그림이 되었으니까요.
-p. 182 中에서 -
낭만 시대의 음악가들이 서로 밀접한 영향을 끼쳤는데, 아마도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의 만남이야말로 그러한 면모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리스트와 마찬가지로 파가니니를 꿈꾸며 피아니스트가 되고자 했던 슈만은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결국 피아니스트를 포기하고 작곡가와 음악 평론가로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슈만의 글로 인하여 쇼팽과 브람스는 음악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으며, 브람스 역시 그러한 슈만에 대한 고마움과 더불어 클라라에 대한 연모의 정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가게 된다. 클라라는 그 사이에서 그들에 기대거나 또는 음악적인 영감을 제공해주면서 그녀 나름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이들의 모습을 오롯이 음악을 통하여 바라보게 될 수 있다는 점은 사랑을 노래한 낭만 시대의 음악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
여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슈베르트의 음악에서는 실연의 아픔을, 조국을 떠나면서 이방인으로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 쇼팽의 음악에서는 내재된 슬픔과 상실감을, 리스트의 음악에서는 드라마틱한 사랑의 꿈을 느낄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죠. 타고난 우울감을 음악에 담은 슈만, 보듬고 바라봐주는 사랑을 담은 브람스 그리고 희생과 고통을 아름답게 보여준 클라라.
- p. 306 中에서 -
이처럼 이들 음악가의 삶을 모아보면 낭만의 물결에 휩싸인 19세기 유럽의 풍경을 그대로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예술적 열정과 사랑의 열기만으로도 그 당시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진정 낭만시대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사랑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기쁨과 슬픔에서 쉽게 벗어나는 우리를 보여주고 또 위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독하지만 자유로웠던 낭만시대를 다룬 [클래식이 알고 싶다]는 여타의 책과는 달리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는 책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QR코드를 통하여 음악가의 대표곡을 한 번에 몰아서 들을 수도 있지만, 곡의 설명과 함께 해당 곡을 바로 들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동시에 음악으로 그 내용을 가슴에 꼭 간직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든다면 슈만이 리스트의 화려한 기교를 비판하는 대목을 설명하면서 그의 작품 [어린이 정경, Op.15]의 7번 '트로이메라이'를 언급하였다면, 이 곡을 아는 사람을 제외한다면 저자의 의도른 쉽게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곧장 QR코드를 통하여 그 음악을 영상으로 감상하게 된다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별다른 기교 없이 간단하게 연주하는 것 같으면서도 '트라이메라이'가 주는 그 정겨움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점을 통하여 저자의 그러한 설명을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물론 예브게니 키신과 같은 다양한 연주자를 별다른 고민없이 만날 수 있으니 이 또한 나중에 스스로 음악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유용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단순히 스토리텔링에 대하여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위와 같이 평생 베토벤을 존경했던 슈베르트가 그 유명한 [월광 소나타]의 1악장의 첫 부분을 슈베르트가 그의 가곡 [달에게]에 어떻게 적용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은 낭만시대의 음악에 대한 지식 전달에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설명 역시 곧바로 음악을 들어보면서 그 유사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기에 책을 읽고, 따로 음악을 감상하여 배우는 수고로움을 덜하게 된다. 음악가의 사랑에 대하여 치중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음악적인 기교와 업적도 그러한 스토리텔링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피아니스트이자 인문학 클래식의 강연으로 다져진 저자의 내공 덕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서히 저물어가는 가을 정취를 보면서 못내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분명 해마다 돌아오는 것이 계절이건만 항상 다르게 느껴지기에 올해의 가을이 거의 끝나가는 것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아쉬움들을 나에게 친밀한 책과 음악으로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이 와중에 만난 [클래식이 알고 싶다]는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읽으면서 점점 끝에 다다를수록 왠지 서운함이 느껴지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책이기에 두고두고 꺼내어서 음악과 함께 할 수 있으니 이 책과의 만남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 이 리뷰는 출판사 위즈덤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