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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아트 트립

[도서] 이탈리아 아트 트립

김현성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톰 행크스와 이완 맥그리거가 열연한 [천사와 악마]는 영화의 스토리 자체도 무척 흥미로웠지만, 성 베드로 성당과 그 광장을 비롯한 바티칸 곳곳의 예술 작품과 건축물에 오히려 시선이 쏠렸다. 도시 전체가 그토록 선망하는 예술 양식의 소산물로 가득하니 이탈리아는 누구나 한번쯤 가보기를 원하는 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탈리아를 아예 예술(아트)로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니 [이탈리아 아트 트립]은 제목부터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해 보인다. 동시에 이 책이 이탈리아를 다룬 기존의 책과는 과연 어떤 점에서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도 이 책을 읽는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먼저 이 책을 쓴 저자이 이력이 눈에 띈다. 가수이지만 오히려 글쓰기를 너무나 좋아했고, 관심이 있는 분야에 깊고 오래 몰두한다는 그에 대한 설명을 접하니 이 책의 출간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재다능이라는 말에 잘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에 열중하여 나름의 성과를 이뤄내는 그의 능력이 대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아트 트립] 역시 그가 조토 디본도네라는 화가에 대해 반하면서 그와 관련된 중세 미술을 공부하는 여정을 통하여 탄생되었으니 이 책의 출간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를 통하여 저자는 자신이 정의한 '조토 루트', 즉 아시시와 피렌체, 파도바라는 세 도시에 대한 여행을 통하여 조토는 물론 중세 예술을 함께 다루고 있으니 이 책이 여타의 책과는 시작부터 확실한 차이가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신비롭고 매혹적인 예술 사조 고딕과 황금빛 노스탤지어 비잔틴, 그리고 르네상스를 예고하는 최초의 근대 회화인 조토 디본도네의 예술과 현대인에게 거의 알져지지 않은 무명의 화가들의 눈부신 작품들까지.

 - p. 7 中에서 -

 잘 알려지지 않은 중세 예술에 대한 저자의 예찬은 그가 왜 조토 디본도네를 통하여 중세의 재발견을 이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설명하고자 하는 것인지 충분히 짐작케 하고 있다. 사실 중세의 예술은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에 가려진 예술가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접하기란 어려웠다. 중세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르네상스에 접어들면서 쏟아져 나온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와 같은 예술가들을 보면서 비로소 서양 예술의 특징에 감탄을 쏟아낸 점을 떠올려 본다면 저자가 예찬하는 중세 예술은 확실히 우리에게는 낯선 존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세를 휩쓸던 고딕에 대응하는 새로운 화풍을 확립하고 전파하였으며 이것이 르네상스 미술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교두보 역할을 한 조토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통하여 우리는 조토의 삶은 물론 중세의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게 된다.

 

 조토는 확실히 중세 예술의 후반부라 할 수 있는 고딕의 마지막과 르네상스의 시작이 겹치는 13세기 말부터 14세기 초에 활동한 예술가이다. 암흑이라 불리우던 중세 시기에 활동한 점과 르네상스에 쏟아져 나온 천재들로 인하여 그간 가려진 조토의 미술사적 의미를 저자는 조토 라인이라 명명한 아시시와 피렌체, 파도바에 대한 아트 트립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단순히 그 의미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도시에 남아 있는 조토의 작품은 물론 그 시기에 활약한 다양한 중세 시대의 예술가들과의 비교를 통하여 새롭게 부각되는 조토를 재조명하고 있다. 그의 첫 여정인 아시시는 피렌체와 파도바에 비하면 상당히 낯선 지역인데, 로마의 서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다. 이 도시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일대기를 벽화로 남긴 조토의 그림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시가 보전하고 있는 것은 도시의 외양이 아닌 인간의 정신이며 때문에 아시시는 신실한 믿음과 인간애에 대한 의지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 p. 21 中에서 -

 무엇이 저자로 하여금 아시시를 이렇게 표현하도록 만든 것일까? 중세에 가난한 서민이 편에서 부패한 성직자들을 비판하고 신앙의 회복을 외치면서 성 베네딕도회처럼 보수화된 기존의 수도회를 대체하는 새로운 수도회 '작은형제회'를 바로 성 프란치스코가 아시시에서 창시했다는 점이 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아시시에는 성 프란치스코 사후에 그를 기리면서 그의 유해를 보관하는 성 프란치스코 성당이 세워졌고, 조토는 이 성당의 2층에 [성 프란치스코의 일생]이라는 연작 벽화를 프레스코 기법으로 남겼던 것이다.

 

 저자는 성 프란치스코 성당의 조토가 남긴 28편의 벽화를 차례로 설명하면서 그림에 담긴 의미는 물론 그가 새롭게 시도한 기법을 통하여 그것이 훗날 여러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훗날 르네상스에도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의 일생]이라는 벽화의 이름처럼 조토는 성 프란치스코의 제자 성 보나벤투라가 쓴 [성 프란치스코 대전기]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사실적인 표현들로 서민적이며 개혁적인 성 프란치스코의 철학과 사상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이는 중세의 신앙의 권위와 전능함을 부각시키는 것에 반하여 빈민 구제는 물론 설교를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 방언으로 진행한 프란치스코의 생각마저 반영한 것이기에 중세의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조토는 기존과는 선을 긋는 기법을 바로 이 벽화에 선보인 것이었다. 특히 벽화 중 [새들에게 설교함]이라는 작품은 중세 회화에서 볼 수 없는 서정성을 담아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저자의 [성 프란치스코의 일생]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문득 르네상스의 주요 특징과 겹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인물인 페트라르카가 기존과는 다른 서정적인 시를 썼다는 점이라든지 신이 아닌 인간의 감정에 충실한 사실적인 표현 역시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와 궤를 같이하고 있기에 조토의 그림에 담긴 의미가 르네상스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즉, 중세라는 이름에 가려진 조토의 진가는 물론 르네상스가 중세와 별개로 어느 순간 등장한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줌으로써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아시시에서의 밤을 보내면서 저자가 느낌 시간에 대한 감각은 비록 시간대가 명확히 구분된다 할지라도 서로 이어져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성 프란치스코의 사상이 조토의 벽화로, 조토의 기법이 화가들을 거쳐 르네상스의 천재들에게로.

 원시의 밤은 태초의 우주로 곧장 열린, 무엇의 방해도 받지 않고 신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바라보던 별과 그 너머의 천상 세계를 우리도 똑같이 마주할 수 있습니다.

 - p. 136 中에서 -

 

 조토가 피렌체 근처에서 태어났음을 떠올린다면 저자의 발길이 아시시에서 피렌체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는 조토가 이십 대 중반에 그린 십자가상이 있는데, 나무 위에 그린 템페라화(물감에 계란 노른자를 섞어 칠하는 방식)는 치마부에를 비롯한 이전 시대의 전통과 결별을 의미하고 새로운 예술의 도래를 의미하고 있기에 저자는 꽤 비중있게 이를 설명하고 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은 우선 중력이라는 공간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으며, 예수의 몸이 고통으로 움츠려 있는 조토의 십자가상은 확실히 기존의 십자가상에서의 예수를 권위있고 전능한 존재로 표현한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평면에서 나름의 공간적인 부분을 구현하려고 한 점과 인간적인 감정에 충실하였다는 점에서 이 작품 역시 르네상스의 특징과 자연스레 연결되고 있음을 느끼게된다. 비록 과학적인 묘사에 집착하여 성화로서는 숭고미는 부족하지만 사실적인 묘사에 치중한 조토는 당시 예술의 중심지인 피렌체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인물임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 비하면 그리 인기 있는 곳이 아니지만, 산타 크로체 성당은 역시 조토의 벽화를 볼 수 있는 바르디 예배당이 있기에 저자는 이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그곳에는 조토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그렸던 [성 프란치스코의 일대기]가 다시 그려져 있기에 그의 기법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피렌체의 바르디 예배당의 벽화는 아시시의 벽화에 비하여 공간적인 효과의 구현에 주력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건물을 완전한 평면으로 보여준 이전과는 달리 굴곡을 통하여 공간의 효과를 강조한 것이었다. 물론 공간과는 별개로 벽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전의 구조와 달라지지 않았으니 조토의 그러한 시도는 완성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백년이 훌쩍 지난 르네상스의 시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공간의 구현을 통한 입체감을 표현하고자 골몰하였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조토의 그러한 새로운 시도 역시 당시 중세로서는 섣불리 시도하기에는 어려운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토의 새로운 시도는 그의 제자인 타데오 가디, 마소 디반코 등이 공간이나 인물의 배치에 대한 탐구를 그림의 이야기 속에 녹여냄으로써 조토가 구현하고자 한 공간의 미학이 자연스럽게 그림을 통하여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 따라서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르네상스가 완전히 중세와의 단절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중세 후반의 변화에 영향을 받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동시대에 유명세를 떨치던 오르카냐는 오히려 상당히 무겁고 엄숙하며 경직된 분위기의 그림을 그렸는데, 이는 단순히 이전의 비잔틴 양식으로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1347년 흑사병이 발발하면서 두려움에 떨던 당시의 시대상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중세 후반은 예술의 다양한 면모가 공존하던 시기임을 추가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조토의 새로운 시도라든지 중세 예술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현재의 피렌체는 저자는 물론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옴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약 900년 전 꽃이라는 어원을 가진 이 도시가 이름처럼 화려하게 피어올랐던 모습을 중세 당시의 모습 그대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중세인들이 바라보던 마천루 너머의 하늘을 똑같이 볼 수 있고 그들이 거닐던 베키오 다리 위에서 똑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 p. 234 中에서 -

 

 1222년에 설립되어 유럽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파도바 대학으로 잘 알려진 파도바는 베네치아 이웃에 있는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도시이다. 당시 젊음의 도시이자 권력에 비판적인 지식인의 도시였던 이곳에서 조토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스크로베니 예배당'이다. 건축 과정부터 조토가 직접 관여하였으며, 성서의 이야기가 담긴 서른여덟 편의 벽화들이 그려져 있는 이곳은 조토에 대한 매력에 흠뻑 빠져있는 저자로서는 분명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스크로베니 예배당은 안에 있는 벽화들의 보존 이유로 관람 시간을 15분만으로 제한하고 있으니 우리로서는 서른여덟 편의 벽화에 대한 저자의 설명에 고마움을 표해야 할 것 같다. 성모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의 이야기에서부터 예수의 재림까지를 벽화로 표현한 이 예배당은 조토의 이상이 모두 담겨져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벽화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시와 피렌체, 파도바에 대한 저자의 아트 트립은 우리에게 왜 오늘날 조토를 서양 회화의 출발로 꼽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평면에서 입체를 구현해야 하는 공간의 문제를 최초로 제기하였으며, 회화에서 모델의 입체감을 표현하는 기법인 모델링의 개념을 제시하였고, 인물의 표정에 감정을 담아내고 구도에 변화를 줌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탐구한 조토는 이후 서양 회화가 지향하던 모든 것이라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기에 조토에 대한 새로운 평가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울러 조토를 비롯한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중세 예술에 대한 내용을 이 책을 통하여 접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인물에 대한 관심과 그 관심을 열정적인 공부를 통하여 여행으로 확인한 저자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 책은 더욱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거나 또는 당장은 가볼 수 없다면 이 책은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을 눈으로 보고 지나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름의 의미를 지닌 여행으로 만들 수 있으며 또한 저자의 상세한 설명으로 인하여 글로나마 충분히 저자의 열정과 그 소산물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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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ne518


    조토 디본도네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듯합니다 이탈리아 하면 르네상스가 시작된 곳으로 14세기 초에 나타난 화가 이야기는 많잖아요 르네상스가 그냥 일어난 건 아니겠습니다 그전부터 그런 움직임은 있었겠지요 조토가 바로 그런 사람이군요 끝과 시작에 끼었다니... 저는 잘 몰라도 이탈리아 사람이나 미술을 잘 아는 사람은 이 사람 이름도 잘 알고 그림도 알겠습니다 벽화를 많이 남겼군요 15분밖에 못 보는 벽화도 있군요

    자신이 좋아하게 된 사람과 그 시대를 공부하고 이탈리아에도 가다니 대단하네요 그 시간은 즐거웠겠습니다


    희선

    2020.01.22 02:0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저도 사실 이전의 예술과 관련된 책에서 조토 디본도네에 대한 짧막한 언급을 마주한 것이 전부입니다. 이 책은 그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중세 후기의 미술을 조토를 필두로 하여 짚어보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틀을 마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조토가 남긴 작품에 대한 저자의 꼼꼼한 설명으로 중세 후기와 르네상스가 분리된 것이 아님을 이해하면서 중세 후기의 특징에 대해서도 꽤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즐기는 사람을 결코 이길 수 없다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한 열정으로 이탈리아에 대한 여행과 이 책을 썼다는 점이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 같습니다. ^^

      2020.01.22 08:25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어떤 사람을 좋아해서 그를 찾아 떠나는 여행, 정말 낭만적인 것 같아요, 저는 사람에게 그렇게 빠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그런 분들을 보면 참 부러워요. 그냥 좋아하는 정도이지. 그를 따라다니거나 그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거나..

    2020.01.22 12:3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그러한 열정과 또 그 열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더 강렬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시골아낙님과 비슷한 처지이지만, 그래도 살아가면서 한번은 저자와 같은 경험을 해보고 싶어집니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기약할 수 없지만요. ^^;;

      2020.01.22 17:16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중세 미술은 종교적 색채가 강하고 낯설어서 그동안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중세 미술의 매력을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자가 정말 조토와 중세 미술을 좋아하고 즐기며 썼다는 것을 조토 루트를 따라 아시시, 피렌체, 파도바 세 도시의 풍경과 건축물, 중세 미술을 보며 느낄 수 있었구요.
    저는 저번주에 이 책을 완독했는데 아직 리뷰를 못 쓰고 있네요. 책찾사님의 좋은 리뷰도 읽었으니 빨리 써야겠어요. 근데 오늘 회식이라서... 내일이나 모레 쓸 듯 해요.^^;
    책 속 내용을 다시 되새겨서 좋았습니다.^^

    2020.01.22 15:3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추억책방님께서 이 책을 통하여 알게 된 중세 미술의 매력을 저도 참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또 느끼는 것이 많아서 이 책의 여운이 꽤 오래 갈 것 같습니다.
      이미 이 책을 다 읽으셨으니 곧 추억책방님의 리뷰로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
      설날을 앞두고 적절한 시기에 회식을 하시는군요? 동료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

      2020.01.22 17:18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