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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걷다

[도서] 프랑스를 걷다

이재형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걷기를 무척 좋아해서 남들은 진저리를 내던 군 생활에서의 행군을 무척 좋아했다.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군장을 메고 딱딱한 군화를 신고 걷는 산악 또는 도로에서의 행군은 비록 몸은 힘들지라도 적어도 걷는 그 시간만큼은 오롯이 나만의 생각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걸으면서 발바닥에 느껴지는 감각과 규칙적인 걸음이 빚어낸 리듬감으로 인하여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다소 과장된 표현일 수 있지만,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종일 앉아서 컴퓨터를 바라보는 업무를 오랜 시간 반복하다보니 걷기가 주는 촉감과 움직임, 그리고 그로 인하여 떠오르는 많은 생각은 분명 나 자신의 현재는 물론이고 지나온 길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것으로 이어지니 걷기는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스페인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프랑스 르퓌 순례길을 안내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를 걷다』는 이런 점에서 읽어보고 싶었다. 성스러운 장소에 대한 여정으로서의 순례길이  이제는 새로운 사유를 가능케 하는 일상의 길로 탈바꿈하면서 그 길을 걷는 것은 이제 삶의 새로운 방향에 대해 갈구하는 이들에게 깨달음을 전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길은 또 다른 삶의 현장이다. 순례자는 길에서 몸을 움직이고, 걷고, 생각하고,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또 다른 삶의 순간을 산다. 부디 이 책이 그에게 떠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키게 되기를, 그리고 그가 길 위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 p. 6 中에서 -

 

 TV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위치한 숙소를 운영하는 컨셉의 방송을 접한 적이 있다. 그만큼 '산티아고 순례길'은 우리에게 순례길의 대명사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책 『프랑스를 걷다』는 그에 비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남부 르퓌(Le Puy)에서 스페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프랑스의 소도시 생장피에드포르(Saing-Jean-Pied-de-Port)로 이어지는 750킬로미터 여정'르퓌 순례길'을 소개하고 있다. 눈치빠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것처럼 '르퓌 순례길'은 프랑스를 기점으로 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또 하나의 연장선임을 알 수 있다. 프랑스 남부 지방을 따라 형성된 이 길은 많은 언덕과 계곡은 물론이고 고요한 숲길과 초원으로 이루어진 순례길로서 전 세계 순례자들을 불러 모으는 색다른 느낌의 순례길이라 할 수 있다.

 

 똑같이 걷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산책로와 순례길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이 다름은 단순히 그 규모에 근거한다기 보다는 산책길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걷기의 과정에 포함된 모든 것들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것에 반하여 순례길은 산책길에 비하여 그러한 제약에서 벗어나서 걷기는 물론 걷기와 함께 조금씩 바뀌는 풍경과 고요한 시간으로 인하여 사색의 시간을 꽤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저자는 순례길을 걷는 것을 '새롭게 태어남'이라고 정의한다. 아직 이 길을 걷지 못한 나로서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저자의 그러한 생각을 가늠하게 된다. 정말 순례가 성경 속의 요나가 고래 배 속에 갇혀 있다가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뜻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순례자는 성경에 등장하는 요나처럼 고래 배 속에 갇혀 있다가 또 다른 나, 새로운 나가 되어 그곳에서 나와 더 넓은 곳으로, 더 높은 세계로 걸어 나간다. 요나는 큰 물고기에게 씹힌 것이 아니라 삼켜져서 물의 동화작용에 의해 변형되어 새로운 요나로 태어나는 것이다.

 - p. 162 中에서 -

 

 '르퓌 순례길'이라는 낯선 여정은 길과 주변의 풍경에 대한 묘사로 실감하게 된다. 고요한 숲길을 걸으면서 고독한 순례길로서 당나귀와 함께 이 길을 걸었던 루이스 스티븐슨(『보물섬』의 저자)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길 곳곳에 마련된 순례자를 위한 숙소와 자선병원, 그리고 평범한 농촌과 탄광 지대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우리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의 안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보이는 것에 그치게 된다면 그저 색다르다는 정도의 느낌에 머물 수밖에 없다. 마치 그런 점을 의식한 것처럼 저자의 시선은 그저 보이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길 곳곳에서 마주하는 것들에 담겨진 역사와 사회적인 의미를 이끌어내면서 '르퓌 순례길'이 역사와 함께 오래전부터 형성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브락 자선병원'과 같이 순례자를 위한 장소가 길 곳곳에 생겨난 이유는 거꾸로 생각하면 순례자가 길에서 보호받기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생각할 수 있으며 각 건물들의 흥망성쇠를 통하여 프랑스의 신교와 구교의 갈등, 프랑스 대혁명에 따른 박해를 설명하는 부분은 이 길이 단순히 그냥 보여지고 지나치는 것으로만 볼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또한 오방 광산을 중심으로 한 마을의 흥망성쇠와 근로자의 투쟁은 우리 스스로도 잘 알지 못했던 한국의 '사북 항쟁'을 연상케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길은 한국과 프랑스라는 엄청난 공간적인 간극을 넘어서서 서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길이기에 길을 걷는다는 것은 곧 역사를 밟아가는 과정임을 일깨워주고 있는데, '백년전쟁' 기간에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은 물론이고 최근 프랑스 현대사에서의 알제리 독립에 따른 상처 역시 이 순례길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이 책은 그저 '르퓌 순례길'에 대한 단순한 안내서가 아님을 보여준다.

 

 어디 그뿐인가. 프랑스의 예술과 문화 역시 이 길을 걸으면서 느낄 수 있는데, 건축물에 새겨진 그림과 조각을 통하여 프랑스의 예술을 논하다가 순례길에 위치한 마을의 저마다의 특산품과 음식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프랑스의 식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된다. 마을에서 기르는 거위를 보면서 오리의 푸아그라와 거위의 푸아그라에 대한 비교는 물론이고 자신이 추천하는 프랑스 파리에서의 푸아그라 전문점에 대한 소개, 바게트가 왜 프랑스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주식이며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이 순례길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프랑스 역시 극우파에 의하여 인종 차별적인 발언과 함께 이민족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심심찮게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순례자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나눔은 물론 스스럼없이 그들의 축제와 결혼에도 이방인인 순례자를 초대하는 모습에서 국적과 출신을 뛰어넘는 공존과 연대의 가치를 느끼는 부분도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한 사람들의 순례자에 대한 환대로서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깔린 공존과 차별없는 모습은 과거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거창한 역사적인 사건을 통하여 자유, 평등, 박애의 의미를 강조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가치들을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하는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읽다보면 『프랑스를 걷다』'르퓌 순례길에서 만난 생의 인문학'이라는 부제가 더없이 잘 어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프랑스의 역사와 예술, 문화는 물론 사회적인 가치를 느끼는 것은 지나친 확장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날 마들렌을 홍차에 찍어 먹다가 문득 그 맛에 의해 떠올리게 된 과거의 추억들을 하나하나 더듬어가는 회상을 담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떠올린다면 그러한 지적은 오히려 이 책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프랑스를 걷다』를 읽고 '르퓌 순례길'에 대한 동경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하지만 이 책은 그저 '르퓌 순례길'에 대한 소개를 위한 책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저자는 '르퓌 순례길'의 여정을 통하여 20년 이상 프랑스에서 거주하며 알게 된 것들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진리를 발견하는 인문학적인 여정을 그린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굳이 '르퓌 순례길'은 아니더라도 주변의 길을 걸으면서 느껴지는 그 변화의 순간을 통하여 그동안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삶을 위한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저자가 이 책을 통하여 말하고자 한 부분은 아닐까?

 

* 이 리뷰는 출판사 문예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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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ne518


    많은 사람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도 하던데, 르퓌 순례길은 그런 길에서 하나인지... 산책길과 순례길은 많이 다르겠습니다 순례길은 길잖아요 어쩌다가 그런 길이 생기게 됐을지... 르퓌 순례길을 걸으면 프랑스 역사와 문화 예술도 생각하게 되는군요 사람도 만나고... 프랑스도 인종차별이 있기도 한데 순례하는 사람은 반겨주는군요 어떤 길을 걷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괜찮겠습니다


    희선

    2020.08.23 01:3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네, 프랑스쪽에서 시작한다면 르퓌 순례길은 산티아고 순례길로 향하는 또 하나의 순례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산책을 즐겨 하지만, 확실히 순례길은 산책에 비하여 그 걷는 것 자체가 목적이며 또 오랜 시간 걸어야 하는 것이니 규모 면에서도 상당히 다를 것 같아요. 저도 꼭 해외의 그 순례길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길을 그렇게 오랜 시간 걸어보고 싶은데, 그게 의외로 쉽지가 않더라구요. 차가 다니는 도로와 접한 길은 걷기가 쉽지 않고, 그렇다고 안전하게 걷기에 적당한 경로를 잘 모르니 좀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아마 그러한 길을 걷게 된다면 저도 이 책의 저자와 같이 꽤 많은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요? ^^

      2020.08.24 12:03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프랑스를 걷다]가 산티아고 순례길의 연장선에 있는 르퓌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군요. 순례길 여정이 인문학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르퓌 순례길에서 마주하게 되는 프랑스의 또다른 맛도 느낄 수 있을 것 같구요.
    산티아고 순례길 떠나는게 제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데 이 책을 읽고나면 르퓌 순례길도 떠나고 싶어질 것 같은데요.ㅎㅎ
    책찾사님께서 리뷰 마지막에서 이야기 해 주신 것처럼 꼭 르퓌 순례길이 아니더라도 자주 가는 주변의 길을 걸으면서 계절의 변화도 느끼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싶어지네요....^^

    2020.08.23 22:1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아, 유럽을 다녀오신 추억책방님이시라면 이곳 순례길도 확실히 버킷 리스트에 포함될 정도로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걷기를 좋아하는 저 역시 마찬가지지만요. ^^
      오랜 시간 길을 걷게 된다면 생각은 자연스럽게 하게 될 것 같아요. 그 오랜 시간을 마냥 걷는 것만으로 채울 수는 없을테니까요. 저자는 프랑스와 관련된 내용으로 인문학적인 생각을 글로 보여주고 있지만, 아마 누구라도 글로 정리하지 못할 뿐 아마 많은 생각들을 그 길 위의 여정에서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이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2020.08.24 12:05
  • 파워블로그 이루

    산티아고 순례를 마친 이들이 하나같이 다시 한번 가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프랑스를 걷다>는 단순히 걷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르피 순례길에서 만나는 프랑스의 역사와 예술, 문화를 느낄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로울 것 같아요. 책제목과 부제가 잘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비가 오네요ㅠㅠ 올해 너무 많은 비를 만나다보니 해의 소중함을 뼈져리게 느낍니다. 햇살 좋은 날을 오래 자주 봤으면 좋겠어요. 책찾사님~ 신나는 불금 보내시고, 가족과 함께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2020.08.28 14:2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저도 가끔 영상으로 보는 순례길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 책을 읽었는데, 순례길이 그저 고독과 성찰의 길이 아니라 걷는 순간 주위의 풍경을 즐기면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또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길로 다시 느껴지게 되더라구요. ^^

      아, 이루님이 계신 곳은 비가 왔군요? 제가 있는 곳은 무척 덥고 비는 전혀 올 기미도 없네요. 그래도 주말에는 날씨가 좋은 것 같습니다. 그저 해만 떠도 반가운 요즈음입니다. 물론 더위는 좀 그렇지만요.
      주말 즐거운 시간을 통하여 한 주의 고단함을 이겨내시길 바랄께요. 이루님 ^^

      2020.08.29 09:06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