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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간의 남미 일주

[도서] 40일간의 남미 일주

최민석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지구 중심으로 일직선을 그려서 그 반대편으로 나오는 지점을 '대척점'이라고 한다. 전세계의 2/3이 바다이다보니 '대척점'으로 매칭되는 곳은 주로 동아시아와 남미이다. 한국의 경우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그 '대척점'에 해당된다. 쉽게 말하면 한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이 바로 남미라는 뜻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떠나는 경우가 많으니 아무리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한국 사람들에게 남미는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최민석 작가에게 남미는 그가 유일하게 가보지 못한 곳이었으니 그의 세계여행의 화룡점정의 결과물인 『40일간의 남미 일주』는 이래저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40일간의 여행을 위한 그의 준비는 의외로 간단했다. 열 시간의 스페인어 개인 교습과 멕시코로 향하는 항공권, 첫날에 묵을 멕시코 시티의 숙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숙소 예약이 전부였으니까. 시작부터 해외여행에 도가 튼 고수의 느낌이 묻어난다. 이제 해외여행을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언제 다시 가게 될지 알 수 없기에 많은 준비와 함께 여행지에서 최대한 여기저기 둘러보려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해외여행에 대한 익숙함과 40일이라는 장기간의 여행을 세세하게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것일까? 이런 점에서 나는 이 책에 더 몰입할 수밖에 없다. 남미라는 생소한 지역은 물론이고 결코 저자와 같은 마인드로 장기간 해외여행을 갈 자신이 없으니까.

 

 그런데, 저자의 여행은 시작부터 왠지 허당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동안 많은 여행을 통하여 항공사회원 등급이 높아서 따로 줄을 설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항에서 오랜 시간 줄을 서는 것부터 '글로벌 호구'를 인증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온갖 바자기 요금에 당하는 모습들이 여행 내내 등장하기 때문이다. 현지의 저가 항공사를 이용하면서 각 나라마다 항공권을 프린트 하지 않아서 현장에서 프린트하면서 엄청난 추가 비용을 내야 했으며, 숙소로 선택한 곳 역시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거나 방음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행지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그때그때 대처해나가겠다는 저자의 당찬 의지와는 달리 온갖 시행착오를 겪게 되니 도대체 왜 해외에 나가서까지 저렇게 호구짓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심지어 남미의 고산지대를 다니면서 고산병에 시달리고, 잦은 복통을 달고 다녔으니 이게 정말 온전한 해외여행일까 싶은 의구심마저 생겨났다.

 

 하지만 저자의 글을 읽을수록 어쩌면 내가 만약 남미로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면 절대로 해볼 수 없는 경험과 거기에서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는 저자의 여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나라면 가이드를 동반하거나 인터넷을 통하여 관광명소로 유명한 지역을 찾아서 다니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런 여행이라면 그저 직접 유명한 해외 관광명소를 보고 거기에서 큰(?) 감동을 느끼거나 여행경비에 따라 그 차원이 달라졌다는 것말고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곳에서의 일상을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그 나라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고 있었으니 이 책도 그러한 관점에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아닌게 아니라 이 책은 여행명소에 대한 기행문이 아니라 거기에서 보고 듣고, 체험하고 느낀 것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쓴 에세이가 아니었던가?

 

 하루밖에 안 됐지만, 멕시코 여행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

 '빠시엔시아(Paciencia)'.

 인내심이다. 이들은 나의 느리고 말도 안 되는 스페인어를 인내심 있게 들어준다. (중략) 멕시코에서 인내심은 한 명의 공동체 구성원이 지녀야 할 기본 품성이자, 공동체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약속인지도 모르겠다.

 - p. 31 中에서 -

 어디서든 경쾌한 음악을 틀고 일처리가 늦기 때문에 '빠시엔시아(Paciencia)'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배려를 통하여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는 이 멕시코 여행의 '인내심'이라는 덕목은 그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만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덕목은 멕시코는 물론 남미 곳곳에서도 통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러 국가가 존재하는 남미에 하나의 공식만이 있을 수는 없다. 분명 호구처럼 당했으면서도, 또 자신의 스페인어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기에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빠시엔시아(Paciencia)'에 대한 신봉의 자세로 무마하고 있지만, 정작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펼쳐진 다양한 거리 공연에 누구나 거리낌없이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내가 틀렸었다. 남미 여행을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빠시엔시아(Paciencia, 인내심)'가 아니라, 모든 것을 즐길 줄 아는 자세였다. 소음 같은 음악도, 추위도, 그리고 냉수 샤워마저도.

 - p. 270 中에서 -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군대에서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겨졌는데, 남미에서도 이 말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저자는 칠레에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이다. 주위의 소음과 부당한 일처리, 추운 날씨에도 온수가 나오지 않아서 냉수로 샤워하는 상황은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떠난 해외여행에서 그리 반가운 상황은 아니다. 초반에 저자는 그러한 상황을 '빠시엔시아(Paciencia, 인내심)'로 견뎌냈지만, 그것도 계속 쌓이게 된다면 언젠가는 폭발할 수밖에 없다. 그 폭발 직전에 산티아고에서 그는 그러한 상황조차 즐기는 것으로 덜어내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후 그는 불편함과 호구로서 당하는 과정을 그냥 받아들인다. 심지어 40일 간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자신의 신용카드가 멕시코에서 도용되었다는 소식에도 그는 그러려니 한다. 이정도면 그가 남미 여행에서 확실한 수확을 거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또 하나의 묘미는 바로 『40일간의 남미 일주』라는 책이 만들어지는 그 날것의 과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한국에 복귀하여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약속한 것처럼 여행하는 동안 매일 일기를 쓰는 것처럼 그 날의 여행에 대한 글을 쓰고 그것들이 모여서 이 책의 탄생으로 이어졌으니 한 권의 책을 읽는 느낌보다 그날그날 현장의 기록을 생생하게 읽는 느낌이 더 강하다. 비록 그가 잘 알려진 유명한 관광명소로 향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생동감있는 그의 글은 그곳이 어디가 됐든 책을 읽는 과정 자체를 여행으로 탈바꿈시키는 마법처럼 보여지기까지 한다.

 

 아마 이 책에서 저자가 방문한 보편적으로 잘 알려진 관광명소는 바로 '마추픽추'였다. 하지만 '마추픽추'를 담아내는 그의 글은 보통의 여행의 글과는 다르다.

 "아 더워. 여름이잖아. 여기는!"

 유년기부터 그토록 궁금했던 마추픽추를 눈앞에 두고, 고작 뱉은 혼잣말이었다. 슬픔조차 느낄 수 없다는 슬픔이 밀려왔지만, 그 슬픔조차 그리 크지는 않았다. (중략)

 속으로 인정했다.

 '그래, 사십 대의 여행이란 이런 것이구나.'

 아, 덥다!

 - p. 244 中에서 -

 어린 시절 백과사전을 통하여 보던 '마추픽추'의 모습을 실제로 보면서 그만의 개인적인 유년 시절에 대한 슬픈 기억,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가보기를 동경하는 '마추픽추'의 모습에서도 그가 처음으로 내뱉은 '덥다'라는 표현이 그곳을 직접 가보지 못한 나로서도 묘하게 동질감이 느껴진다. 저자와 같은 나이라서 그런 것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으로서의 여행 에세이지만, 저자의 날카로운 시대를 향한 시선이 곳곳에서 웃음 코드로 처리되는 부분도 무척 흥미롭다. 여타의 남미 국가와 달리 차분한 칠레의 모습이 우리로서는 지극히 편안함을 느끼게 되지만, 그것이 피노체트 독재 정권의 오랜 개인에 대한 통제와 그 과정에 이루어진 양적 성장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의 과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또한 남미에서 진행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견해라든지 '마추픽추'에서 각 나라별로 그곳을 어떻게 운영할까에 대한 상상 속에서 한국은 그곳을 월세로 받을 수 있는 부동산 투자처로 활용하였을 것이라는 저자의 농담같지 않은 농담은 남미 여행에서 저자의 시선이 남미에게만 머무르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글을 쓰는 작가이기에 남미의 다양한 작가의 흔적을 찾는 모습과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남미의 문화와 사정, 이를테면 페루에 순수 인디언 출신이 그나마 많은 이유라든지 '탱고'의 의미, 동성간의 사랑을 다룬 '해피투게더'가 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촬영을 했는지에 대한 내용들 역시 이 책이 에세이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다.

 

 『40일간의 남미 일주』의 저자의 프로필을 찾아보니 공교롭게도 나와 동갑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이가 주는 동질감 때문인지 그의 글 하나하나에 공감하게 된다. 그의 개그 코드와 호구적인 기질, 한국의 현실에 대한 예리한 표현 모두가.

 처음 읽을 때에는 적어도 해외여행에 대하여 상반된 기질적인 차이가 느껴졌지만, 어느새 책을 다 읽은 시점에서는 그 차이가 하나로 봉합된 느낌이 든다. 이러한 점이 바로 에세이의 매력이 아닐까?

 

p. s 근데 왜 저자의 약력 중 '6,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했다.'로 되어 있을까? 저자가 1970년대 중후반에 태어났는데, 출판사에서 잘못 기재한 것은 아닐까? 출판사에서 이 글을 읽어본다면 확인 부탁드려요.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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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산바람

    남미여행 꼭 해보고 싶었는데 코로나19로 꿈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데, 이렇게 리뷰로 만나니 반가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2020.09.13 20:0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아, 어쩌면 산바람님께 남미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꼭 가보고 싶은 그 퍼즐의 마지막 조각일 수도 있겠군요? 어서 코로나 19 상황이 해제가 되어 산바람님의 그 기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래봅니다. ^^

      2020.09.14 14:45
  • 스타블로거 ne518


    <밴드 ‘시와 바람’은 정통 6,70년대 지방 캠퍼스 록 사운드를 지향하는 향토 록 밴드다> 네이버에는 이런 식으로 쓰여 있네요 잘못 쓰인 거겠네요 라디오 방송에서 노래 들은 적 있고 방송에 나온 것도 가끔 들었습니다 지금도 나와요 이 책 나온다는 말도 했는데 책찾사 님은 보셨군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멕시코에 가서 버스를 탔는데 음악소리가 컸다고 한 게 생각나는군요 남미 쪽은 거의 일처리가 느리다는 말이 많더군요 거기에서는 그러면 그런가 보다 해야 할 듯합니다 한국 사람은 빨리 해주기를 바라겠지만... 그곳에서는 그곳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겠습니다 지금은 가기 어려워도 언젠가 거기에 갈 사람은 이 책을 보고 그곳에서 즐기면 괜찮겠네요


    희선

    2020.09.14 02:4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밴드 '시와 바람'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으셨군요? 저는 사실 생소한데, 저자가 여기에서 보컬로 활동했다고하니 1970년대에 태어난 저자가 그러기에는 무언가 오류가 있는 것 같더라구요.^^

      하루키가 그랬던 것처럼 저자 역시 멕시코에서 그런 경험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택시도 그렇고 심지어 비행기 안에서도 그렇게 음악을 크게 듣고 감상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하더군요. 우리 기준에서는 사실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걸 이해하기 위함이 바로 이 여행의 이유 중 하나일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되려 멕시코인의 관점에서 한국인을 바라보면 어쩜 저렇게 감정 표현이 소극적이고 침묵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

      2020.09.14 14:49
    • 스타블로거 ne518


      더운 나라 사람은 좀 느긋하지 않을까 싶어요 멕시코 한국보다 덥죠 라틴아메리카 사람은 다들 느긋한 듯도 합니다 아프리카도 그럴지도, 더운 나라 사람은 빨리빨리 하기보다 천천히 움직이는 걸 좋아하겠지요 그러면서 흥은 많은 듯해요 사람이 어떤 기후에 사느냐에 따라 다르기도 하네요 어디든 좋은 점 안 좋은 점이 있는 거겠지요 그런 걸 그대로 받아들이고 좋아하게 되는 사람도 있고 자기하고는 안 맞다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희선

      2020.09.15 00:44
    • 파워블로그 책찾사

      네, 저도 어디선가 그런 글을 읽어본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기후대에 따라서 사람들의 습성과 성격이 차이가 난다는 글이요. 그리고, 남미는 물질적인 가치 추구에 있어서 우리보다는 좀 덜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어느 정도는 추구하겠지만, 그래도 부족한 상황에서도 꽤 유쾌하게 지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낯설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2020.09.15 09:54
  • 파워블로그 찻잎향기

    빠시엔시아!!! 인내심!!! 멕시코 여행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사회 생활에서도 꼭 필요한 덕목 같아요.

    모든 리뷰가 황금왕관을 써야할 만큼. 정성이 가득하고 참으로 멋지십니다!!!

    2020.09.14 19:4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그렇죠. 인내와 또 누릴 때는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은 비단 여행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겠죠. ^^
      항상 찻잎향기님의 격려는 저에게 큰 힘이 되네요.
      사실 이번 리뷰부터 글자 크기를 11에서 원래의 크기 10으로 바꿔서 썼는데,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리뷰에 다양한 변화를 다시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

      2020.09.15 09:57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