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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산에 산다

[도서] 그래서 산에 산다

최성현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홀로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좋아하다보니 산 속에서의 삶을 꿈꾸곤 한다. 하지만 그러한 삶을 일회성이 아닌 오랜 시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과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인하여 그것은 꿈으로 머루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간접적으로나마 그러한 삶을 느껴보고자 '자연인'이 등장하는 TV 프로그램을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산에 산다』를 읽고 싶었던 이유 역시 이러한 나의 바램의 연장선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도 잠깐 읽어보았지만, 아무래도 내가 있는 현재와 공간에 근접해 있는 이 책이 더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 책을 보는 순간 오랜만에 책의 표지를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언뜻 숲과는 어울리지 않는 저 작은 공간에서 무엇 때문에 저자는 머물고 있으며, 거기에서 과연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어디를 보나 나무다. 숲이다. 산이다. 그곳에 단 한 채의 집이 있다. 작은 집이다. 집이라기보다 오두막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작은 집이다. 열다섯 평쯤 될까? 커다란 밤나무들이 그 작은 집을 둘러싸고 있다.

 방 두 개에 부엌 하나.

 (중략) 서른둘이었던 1988년 3월에 나는 그곳에 갔고, 그곳을 떠나온 건 2008년 11월이었다. 20년 5개월!

 - p. 7 中에서 -

 책 표지의 공간에 대한 의문이 조금이나마 풀리게 된다. 마을을 지나 숲으로 더 들어가면 나오는 이곳에서 저자는 무려 20년 이상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후에도 여전히 강원도 산골에 기거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공간에 대한 이 짧막한 설명과 함께 거기에서 그는 과연 무엇을 깨달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증폭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약 10분 정도 걷다보면 이러한 산을 만나게 된다. 논밭이 아파트로 바뀌면서 도시의 형태로 변화하지 않았다면 이곳도 마을에서 동떨어진 곳으로서 아마도 저자가 머물렀던 곳과 비슷한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저자가 머무른 외딴집이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산 중에 집이 있어서 그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조금만 사는 곳에서 벗어나면 저자의 글을 읽으며 그 생각을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우리 곁에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자연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언뜻 그들이 산 속에서 자연에 적응하면서 사는 것 같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그러한 삶도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아닌 자연에 인간의 문명을 그대로 이식시키는 과정으로 보일 수 있다. 외딴집에서의 저자의 삶이 자연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자급자족을 위하여 벼를 심고 온갖 농작물을 심지만, 그는 벼농사를 위한 논을 따로 만들지 않고, 농작물을 심기 위하여 땅을 일구지 않는다. 그저 땅에 그대로 벼와 농작물을 심는다고 한다. 처가에서 농사일을 도우면서 얻은 약간의 지식에 빗대어 본다면 사실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이다. 그렇게 해서는 원하는 수확량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논에 물을 대고, 밭은 자갈과 돌을 골라내면서 온갖 잡초를 뽑아주면서 관리해야 가을걷이가 가능한데, 저자는 그러한 것을 일절 생략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에는 온갖 풀이 있다. 그것이 원래의 자연이다. 따라서 잡초란 인간의 힘으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을 없애려는 데서 고생의 씨도 끝이 없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 p. 59 中에서 -

 별꽃, 오이풀, 뚝새풀, 짚신나물, 고추나물,졸방제비꽃, 방동사니... 숲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풀의 이름을 부르며 '잡초'에 대한 의미를 재정립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고개가 숙여진다. 흔히 보고 지나쳐버리는 잡초마저 함께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아마 그가 산 속에서 오랜 시간 살면서 깨우친 진리 중 하나일 것이다. 이게 무슨 대단한 것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시골에서 밭일을 하다보면 재배 작물 이외의 것은 모두 '잡초'로 분류하여 모두 뽑아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저렇게 다양한 이름과 함께 각각 특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관점에서 '잡초'라는 명목으로 제거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풀들과의 공존을 추구한다. 그것들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살짝 잘라주면서 재배하는 작물과 함께 자라날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한다.

 

 

 산으로 가는 산책은 작은 출가와 같다.

 새로운 사람으로 돌아오기 위함이다.

 - p. 172 中에서 -

 저자의 이러한 남다른 행동과 생각을 접하면서 문득 나 역시 동네의 산 속으로 들어가는 이 길을 걸으면서 가졌던 생각과 다시 산에서 내려오면서 든 생각에 차이가 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는 그 차이를 알아내고자 어쩌면 이 책을 읽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잠깐의 산책 또는 산행만으로도 과연 저자가 오랜 시간 숲 속의 외딴집에서 살면서 얻은 깨달음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겨울 준비란 눈을 감고 보면 곡식과 야채의 형태로 한여름의 에너지를 거두어들이는 작업이다. 호박과 고추 모양으로 햇살과 땅을 거두어들이는 작업이고, 토란과 무청의 형태로 바람과 비를 담아 들이는 작업이다. 우리는 땔감이라는 이름의 땅과 햇살을 지펴 방을 따뜻하게 만들고, 쌀과 김치라는 이름의 햇볕과 비와 바람을 먹으며 겨울을 나는 것이다.

 - p. 129 中에서 -

 매서운 추위로 인하여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겨울을 산 중에서 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월동 준비는 필수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 역시 남다르다. 보통은 겨울을 나기 위한 생존의 방법으로 그러한 행위를 이해하기 마련인데, 저자는 그 과정을 한여름의 에너지를 모아서 각각 여러 형태로 겨울에 그것을 재현하는 과정으로 보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서 겨울을 단순히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봄, 가을, 여름의 또 다른 형태로 보는 점이 흥미롭다.

 

 도시에 살면 사실 계절의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다. 더우면 에어컨을 틀고, 추우면 보일러를 돌리면 되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도시에서는 계절이 인간의 삶에 그리 큰 제약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마냥 좋은 것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 제약없는 활동이 끊임없는 경쟁과 소모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도리어 지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어쩌면 기계처럼 쉬지도 못한 채 생존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기구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저자가 말하는 겨울이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동경하던 시골 또는 산에서의 삶을 실천으로 옮겼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나 역시 홀로 이렇게 산 속에서 잠시 머물다보면 애초 산에 들어섰을 때와는 달리 별의별 생각이 든다. 아무도 없는 곳이라고 인식되는 순간 곧바로 위험 신호가 여기저기에서 감지된다. 확실히 보이는 것과 실제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산 속에서의 그 오랜 삶을 통하여 자연과의 조화, 세상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모습,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지혜를 터득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산 속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 아니다. 결코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자연농법의 실천, 방문하는 손님들과 함께 하는 오랜 시간 속에서 조금씩 알게 되고 그것이 켜켜이 쌓이면서 이 책에서 말하는 깨달음이 된 것이다.

 

 자연과 함께 한다는 신념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잡초 또는 이름없는 풀들과의 공생으로 이어졌으며, 인간 본연의 외로움은 결코 인간과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청설모와 집쥐, 땅벌에 이르는 산 속의 모든 존재를 친구로 삼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사람들 속에서는 쉽게 고칠 수 없었던 사람에 대한 편견 또는 선입견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산에 사는 이유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산에 산다』를 읽으면서 왠지 그러한 삶을 살지 않으면 저자가 말하는 깨달음을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치열한 경쟁과 물질적인 것이 만연한 이 사회에서는 결코 깰달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으로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고, 설령 들어간다고 저자와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다. 오랜 시간 누군가의 깨달음을 글로 만난다고 당장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읽으면서 그 글에 몰입하면 조금씩 그 깨달음에 다가갈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그리고, 그 내용을 곱씹으면서 근처 산으로 산책을 나가면서 석양의 하늘을 바라본다. 저자의 말대로 자연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또 자연으로 연결될 수 있으니 이렇게 함으로써 글과 몸으로 이 책이 말하는 바를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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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eunbi

    하늘이... 맘을 싸~아~~~ 하게 하는군요...^^

    2020.09.24 09:2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요즈음 석양을 바라보며 마음이 잦아드는 느낌입니다.
      산 중턱에서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잠시 모든 것을 잊게 되는 것 같아요. ^^

      2020.09.25 07:46
  • 파워블로그 산바람

    우리 주변에는 가까운 곳에서 항상 크고 작은 산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산지가 많은 나라에 살고 있는 특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산이 크거나 황폐하게 거칠지 않아서 포근함을 느끼게 되니 더욱 정이가는 곳이지요. 시간이 날때마다 가까이 할 수 있다면 건강을 비롯해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생각됩니다. 좋은 책에 대한 잘 정리된 리뷰 잘 읽고 갑니다.

    2020.09.24 18:4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저도 산바람님 생각에 공감합니다. 유명한 산도 있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돌아보면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산들이 많지요. 요즈음 산들에 나무가 베어지면서 태양광이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다소 마음이 아플 때가 많지만, 그래도 우리를 위로해주는 산들이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질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2020.09.25 07:51
  • 스타블로거 ne518


    산에 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깨달은 듯하네요 논과 밭에는 사람이 기르는 작물 말고는 잡초라 하죠 그것도 나름 이름도 있을 텐데... 산에 살면서 여러 가지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군요 이건 사람이 사는 세상과도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다른 사람들, 지구에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도 살지요 그런 것과도 잘 지내야 할 텐데... 산에 살면 마음 편하고 좋을 것도 같네요 산이 아니어도 아주 편하게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 자연을 느끼고 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 다 멋지네요 책찾사 님이 걸으면서 담으셨나 봅니다 저기 걸으면 기분 좋겠습니다


    희선

    2020.09.25 01:4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네, 평소 일상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다보니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아직 가슴으로 진정 느끼고 행동으로 옮기기에 부족한 우리의 일상이 떠오르더라구요. 그래서, 이러한 삶을 동경하지만, 그게 또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연과 함께 하는 그 마음이 진정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필요하건만 그것을 잊은 채 다소 각박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기도 해요.

      요즈음 날이 좋아서 멋진 하늘과 함께 하는 일상의 풍경도 사진으로 담아보면 모두 예쁘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

      2020.09.25 07:55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