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10월 마지막 주 리뷰를 남겨주세요!
초판본 데미안

[도서] 초판본 데미안

헤르만 헤세 저/이순학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어렴풋이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데미안』이었다. 작품의 주인공이 겪는 과정이 당시 나로서도 충분히 공감하고 겪을 수 있었던 것이기에 이 작품을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난 뒤로 『데미안』은 꽤 오랜시간 잊혀지게 되었다. 끝까지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뜻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고, 난해한 책이라는 인상이 머릿속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40대에 들어선 지금 나는 다시 『데미안』을 읽게 되었다. 열 다섯살 때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에밀 싱클레어의 이야기가 놀랍게도 우리가 사춘기를 겪던 그 시기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 p. 6 中에서 -

 언제 읽어도 『데미안』의 이 첫 구절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부분일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이 작품을 42세가 되던 1919년에 『데미안 : 에밀 싱클레어의 청년 시절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이 작품은 그의 또 다른 작품 『수레바퀴 아래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자전적인 내용을 반영하여 쓰여진 것으로서 일종의 회고 형식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이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가늠자가 된다. 사춘기 시절의 방황을 꽤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한 성장통이었음을 이해하고, 또 그것이 많은 어려움과 문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측면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 이 작품이 출간된 1919년은 독일이 제1차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지 1년이 지난 비참한 상황 속에서 독일 청년들이 이 작품에 열광하였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이야기는 부유한 집안 출신인 에밀 싱클레어의 열 번째 생일이 지났을 무렵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 엄청난 시간과 공간의 간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싱클레어가 겪으며 방황하고 성장하는 과정은 놀랍게도 우리가 사춘기 시절에 겪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한 거짓말로 인하여 프란츠 크로머에게 협박을 당하는 과정은 그 시기에 일탈 내지는 평범한 것과는 다른 길을 걸어보려는 시도로 볼 수 있고, 아버지로부터 추궁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내심 즐기는 그의 모습은 그가 속한 세계와 별개의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자각하는 과정으로 연결된다.

 아버지의 권위가 최초로 찢긴 자국이니까. 유년기를 지탱하는, 하지만 자기 자신이 되려면 반드시 무너뜨려야만 하는 기둥들에 생긴 최초의 균열이니까. 운명의 핵심적인 길은 이런 보이지 않는 체험들이 그려간다.

 - p. 27 中에서 -

 

 이러한 에밀 싱클레어의 회고는 '일탈'로 보여지는 행위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사춘기라는 이유로 어느 정도 수용되는 부모님에 대한 반항과 거짓말은 사춘기를 경험하기 이전에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것이지만, 기존에 속해 있던 세계 말고도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인식과 기존 세계에 대한 균열로 보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사춘기를 떠올리면 얼굴이 달아 오르는 것을 경험한다. 또 부모가 된 지금 상황에서는 그저 자녀의 사춘기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데미안』을 읽으면서 이 지극히 당연한 생각과 감정이 어쩌면 우리는 에밀 싱클레어와는 달리 또 다른 세계를 아예 염두에 두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든다. 즉,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길을 묵묵히 가야 했고, 그 과정이 힘들어서 잠깐 반항하기도 하지만 결국 기성세대에 의하여 만들어진 그 길로 다시 복귀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에밀 싱클레어의 복잡한 내면의 갈등과 방황을 우리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고, 그가 그토록 막스 데미안이라는 존재를 갈망하게 되었는지를 쉽게 납득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하여 수긍하게 된다면 우리는 비로소 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거나 또는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없었던 그 시기의 방황을 에밀 싱클레어의 감정에 이입하여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싱클레어는 데미안과의 만남을 통하여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또 다른 세계의 형상을 조금씩 구체화하게 된다. 데미안은 성경의 내용을 기존의 관점과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해석함으로써 싱클레어를 일깨우게 된다. 『데미안』에는 유독 카인의 이야기와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과 같이 성경의 내용이 다수 인용된다. 당시 유럽이 여전히 종교가 삶의 지침으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파격적인 부분이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에덴 동산에서 금단의 열매인 사과를 먹었던 것을 연상케 하는 이러한 대목들은 파격을 넘어서서 이단에 가까운 것인데, 이는 오히려 기존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일깨우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반증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나의 어린 영혼의 샘물에 돌멩이 하나가 떨어졌다. 오랫동안 카인, 형제 살해, 표식에 관한 문제들이 나의 모든 인식, 의심, 비판의 출발점이 되었다.

 - p. 46 中에서 -

 동생인 아벨을 죽인 카인은 악인으로 간주하는 상황에서 데미안은 오히려 카인이 강자이며 우월한 자라 말하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 곁에 있던 두 도둑 중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도둑이야말로 자신만의 길을 고수한 인물이라 말한다. 싱클레어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이야기이지만, 데미안의 이야기는 그의 안에 어렴풋이 존재하던 '어두운 세계' 아니 '다른 세계'를 재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데미안의 그러한 생각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지만, 아버지로 대변되는 '빛의 세계'를 단번에 꿰뚫어 보면서 경멸하는 순간 그 스스로 자신 역시 표식을 새긴 카인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데미안은 그저 기존의 관점에 대한 반발로 현실을 부정하려는 것일까? 종교에 대한 그의 다른 해석은 기존의 체제에 대한 반항처럼 보일 수 있지만, '허락된 것''금지된 것'에 대한 구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전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오히려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나아가서 데미안은 자신이 속한 이외의 것에 대한 포용을 강조하며 기존의 체제가 편협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른 것들도 있어. 그 나머지 것들을 모조리 악마적인 것으로 취급하니까 이쪽 세상의 절반이 통째로 숨겨지고 묵살되지. 신을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 찬양하면서, 생명을 탄생시키는 성(性)을 아예 묵살하거나 악마적이라고 단죄하다니!

 - p. 81 中에서 -

 

 데미안 덕분에 싱클레어는 결국 의식을 남들과 다르게 갖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데미안에 의해 눈뜨게 된 사유 세계로 입문함과 동시에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데미안』이라는 제목 때문인지 이 작품에서 데미안에 초점을 맞추게 되지만, 오히려 싱클레어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하는 과정이야말로 우리에게는 더없이 현실적으로 보이게 된다. 기숙학교에 들어간 그가 점점 반항의식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든지 그러한 반항을 누군가에 대한 사랑으로 순화시키는 과정은 인생에 있어서 사춘기와 첫사랑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는 데미안 이외에도 알폰스 벡피스토리우스, 크나우어와 같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알게 모르게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심지어 직접 사귄 적은 없지만 베아트리체라는 여성은 싱클레어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는 존재로 등장하기까지 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 p. 123 中에서 -

 『데미안』에서 자주 인용되는 이 문구는 싱클레어가 비상하는 새를 그린 그림에 대한 답례로 데미안이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이해하고자 하면 상당히 간단한 내용이지만, 과연 새가 나오기 위하여 알을 깨뜨린 것처럼 우리는 세계를 깨뜨리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쉽게 감이 오지 않는다. 싱클레어 역시 그랬다. 아브락사스가 신성과 악마성을 결합하는 역할을 하는 상징적인 신적 존재라는 뜻을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바로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찾던 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교회 오르간 연주자이자 과거 목사가 되기를 염원했던 피스토리우스와의 만남 역시 상당히 의미가 있는 장면이다. 피스토리우스 역시 '아브락사스'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기에 싱클레어는 그를 통하여 데미안이 보낸 문구의 의미를 이해하고 또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는 당위성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내면의 세계를 지니고만 있는 것과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엄청나게 달라! (중략) 이 인식의 불꽃이 최초로 번쩍 빛나는 순간, 그는 곧바로 인간이 되지."

 - p. 143 中에서 -

 피스토리우스의 조언은 왜 세계를 깨뜨리고 신이자 악마인 아브락사스를 숭배해야 하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앞서 데미안이 말한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포용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과 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불어 세계를 깨뜨리고 하늘을 나는 자들이 땅만 걸어다니는 사람보다 더 많이 깨달은 사람이지만, 어떤 열쇠나 방향키도 없기 때문에 끝없는 심연으로 추락할 수 있음도 함께 지적한다. 이러한 깊은 깨우침을 전달하는 피스토리우스이지만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내려는 그가 도리어 기존의 종교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하기 때문에 결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기 위한 싱클레어의 여정은 계속 이어지게 되고 다시 데미안과 재회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싱클레어는 자신이 그토록 그리던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직접 만나게 된다.

 

 데미안과 에바 부인과 같이 카인의 표식을 지닌 자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자기의 내부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의지에 뒤따르며, 불확실한 미래가 초래할지도 모르는 온갖 일에 대해서 스스로 준비를 갖추도록 살아가는 것을 깨닫는 데 도움을 준 이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싱클레어는 어느 정도 성숙한 자아의 단계에 이른 것처럼 보였다.

 순식간에 바람이 누런 구름과 회색 구름과 파란 하늘을 뒤섞어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다. 거대한 새가 시퍼런 혼돈을 찢고 나와 큰 날개를 퍼덕거리며 하늘로 날아가버리는 모습이었다.

 - p. 211 中에서 -

 시종일관 『데미안』에서 새는 개인의 자아를 상징하는 존재로 등장하는데, 싱클레어가 우연히 하늘에서 본 이 장면은 내면적인 개인의 자아 성찰외부 환경과 완전히 별개로 동작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동안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개인의 자아에 관하여 일깨우는 역할을 하였지만, 작품 막바지에 꿈을 통하여 세계의 붕괴가 임박했음을 예견하는 부분 역시 싱클레어가 하늘에서 본 새가 의미하는 바와 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독일과 러시아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데미안은 장교로 이후 싱클레어 역시 사병으로 전쟁에 뛰어든다. 싱클레어는 전장에서 그동안 데미안과 에바 부인을 통하여 깨달은 바를 떠올리다가 포격으로 인하여 부상을 입고 야전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거기에서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난다. 데미안은 이제 싱클레어와의 만남이 마지막인 것처럼 오로지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하고 다음날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싱클레어는 그토록 갈망하였던 데미안이 야전병원에서 사라진 것을 보고 오히려 자신과 데미안의 존재에 대하여 확실하게 인식하게 된다.

 가끔 열쇠를 발견해서 내 자신의 깊은 곳으로,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형상들이 졸고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그 어두운 거울 위로 몸을 굽혀 내 모습을 비춰 보았다. 이젠 완전히 내 친구, 나의 인도자인 그와 똑같이 닮은 모습이다.

 - p. 228 中에서 -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에서 데미안을 발견하게 된 싱클레어. 하지만 이런 장면은 이미 앞에서도 등장하였다. 오로지 마음 속에만 사랑의 대상이었던 베아트리체를 그린 그림에 대한 싱클레어의 인식 변화 과정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점차 그 얼굴이 베아트리체나 데미안이 아니라 나라고 느껴졌다. 나와 닮아서가 아니라(닮을 필요도 없었다) 내 삶을 결정짓는 것, 내면의 나, 나의 운명, 나의 신(선이든 악이든)이었기 때문이다.

 - p. 112 中에서 -

 이런 장면들은 어쩌면 데미안이라는 존재는 바로 싱클레어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가 점점 성장하면서 나중에 데미안이 떠난 순간 홀로 남겨진 상황에서 자신의 얼굴에서 데미안을 볼 수 있었다고 되뇌이는 부분은 드디어 그가 원하던 성숙한 자아의 단계에 도달해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데미안』을 다시 읽으면서 이전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또 다른 작품 『수레바퀴 아래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작품 모두 헤세의 자전적인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했지만, 『데미안』의 싱클레어와는 달리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인 한스 기벤라트는 주어진 길을 따라다가다 변화된 새로운 길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여 싱클레어는 무수한 고민과 방황,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하여 조금씩 성장하여 나중에는 그토록 갈망하던 데미안과 같이 성숙한 자아의 단계로 올라섰으니 두 작품의 인물은 상당히 대조적인 삶을 살았던 셈이다. 아무래도 『데미안』인생에 있어서 성숙기에 들어선 헤세가 전쟁의 패전이라는 시련을 겪고 있는 독일인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목적이 비슷한 줄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데미안』을 처음 읽었을 때, 쉽게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무래도 당시의 내가 여전히 알 속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어느 정도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현재의 상황이 알을 깨뜨리고 새로운 세계로 나온 상태라고 자신있게 말할 자신은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깨뜨려야 할 세계와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하여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성공 이외의 것은 실패라는 단어로 이단 취급을 받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결과야 어떻든 어떤 점에서는 그러한 길에 적응하려는 것이 더욱 편할 수도 있다. 굳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고민하느니 현실에 정진하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다. 알 속에서 지내는 것이 편하다고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혹시 그러한 편안함이 다른 세계에 대한 무지 내지는 무시를 기반으로 한 것 아닐까라는 의문을 이 작품을 읽음으로써 한번쯤 생각해 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8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ne518


    저도 예전에 데미안을 읽었는데 잘 못 읽은 듯합니다 그때 헤르만 헤세 다른 책도 봤는데... 그걸 어렸을 때 보고 감동받았다고 한 사람도 있던데, 그런 사람 부럽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책을 거의 안 봤는데... 사춘기를 힘들게 지나는 사람이 있고 별일없이 지나는 사람도 있더군요 제가 별일없이 지났군요 그래도 이런저런 생각한 것 같은데, 나중에 더 안 좋아진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헤세가 소설을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쓰기도 했겠지만, 자기 자신도 많이 생각했을 듯합니다


    희선

    2020.11.01 00:4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이제서야 이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 공감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마치 이 책의 주인공의 심정이 저의 예전 모습과도 비슷한 부분들이 있었으니까요. 저의 사춘기가 그렇게 요란스럽지는 않았지만, 저자와 마찬가지로 내면에서는 참 많이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후회가 되는 부분도 있고, 또 잘 한 부분도 떠오르니 이 책을 다시 읽어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2020.11.01 18:29
  • 스타블로거 삶의미소

    사실 3~4년 전에 읽을 당시에도 저에겐 좀 어렵게 느껴지던 데미안이네요. 전 데미안이 싱클레어의 상상속 인물일거라 홀로 결론을 내렸었는데 다시 읽으면 싱클레어가 어떤 존재로 느껴질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2020.11.01 01:3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아, 저도 삶의미소님하고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어요. 리뷰가 길어져서 언급하지 못했지만, 책 속의 데미안이 나오는 장면을 싱클레어의 또 다른 모습으로도 충분히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거든요. ^^

      2020.11.01 18:30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데미안>을 꽤 오랜 전에 읽었었는데 솔직히 당시에는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지는 못 했던 것 같아요. 이후 다시 읽어 보지는 못하고 최근에 이웃님들의 리뷰로 만나면서 이제야 <데미안>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네요. 옛 독서 기억을 되살리고 지금 리뷰를 읽어보니 데미안이 싱클레어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닐까라는 책찾사님 문장에 공감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 기회 되면 <데미안>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책찾사님~ 11월 바쁘시더라도 건강 잘 챙기시며 책과 함께 행복하게 보내세요.^^

    2020.11.01 20:2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추억책방님도 그러셨군요? [데미안]이 워낙에 유명해서 학창시절에 읽었지만, 그 당시에는 저 역시 이런저런 고민과 생각이 많아서 이 작품이 뜻하는 바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세월이 흘러서 싱클레어가 회고하는 것처럼 저도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공감되는 부분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벌써 11월이네요. 2020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추억책방님도 건강 잘 챙기시고 11월에는 여유를 되찾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

      2020.11.01 21:24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