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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도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저/유영미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사내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TV를 보면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 아이의 모습과 함께 기부를 요청하는 광고를 자주 보게 된다. 사내 식당에서는 잔반 줄이기를 독려하는 캠페인이 진행중인데, 다른 곳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으니 나로서는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여러 의문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하여 각국에서 남는 식량을 굶주리는 지역에 공급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그리고, 기부금은 과연 TV에 나오는 아이들과 같이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전달되는 것일까? 불쌍한 그들의 모습을 비춤으로써 사람들의 인식의 전환과 동정심을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부 단체에서 공식적으로 정확히 기부금의 얼마가 원래 목표인 그들을 돕는 데 쓰여지는지 밝힌 적이 있었던가?

 

 이러한 의문이 꼬리를 물면서 정작 왜 이 세계에는 굶주리고 있는 사람이 많은 지에 대한 본질에서 멀어진다. 단순히 그들을 도우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지만, 기아의 원인은 고사하고 실제 그들을 돕는 프로세스는 물론 현황조차 제대로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이었던 장 지글러가 자신의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을 다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관심을 가져볼만한 책이다. 특히 기아가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점점 심각해지는 세계의 불균형과도 깊은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변화된 의식과 함께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노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천만 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수억 명이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것이 아주 자연스런 일로,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현재는 그 주범이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경제질서라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 p. 22 中에서 -

 장 지글러의 말처럼 그동안 기아는 식량이 부족한 곳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비극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돕는 것은 자발적인 선택의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의 근본적인 원인이 세계경제질서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세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기아에 영향을 끼친 것이기 때문에 전세계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이러한 문제점은 근본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하며 기아를 해결하는 과정에 적극 참여를 해야 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래서, 기아로 인한 떼죽음은 참으로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라는 저자의 말을 공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소말리아의 사례를 보면 왜 저자가 기아의 문제를 제도 또는 구조에서 찾는지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소말리아의 군벌의 세력 다툼으로 식량이 무기화 되었으며, 해외의 원조 물품을 실은 배를 수용할 수 있는 메르카 항은 그 시설이 빈약하여 극소수의 식량 지원 물품만을 확보할 수 있으며, 더욱 큰 모가디슈 항은 아예 그 지역 군벌에 의하여 폐쇄되었다는 점을 들어서 소말리아가 겪는 기아가 단순히 자연 환경의 영향에 따라서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군벌 난립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소말리아의 기아 사태는 더욱 장기화될 것이며, 또한 그들에 대한 지원 역시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굶주림은 비극적인 방식으로 더 심해지고 있어. 현재로서는 문제의 핵심이 사회 구조에 있단다. 식량 자체는 풍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어. 그런 식으로 식량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매년 수백만의 인구가 굶어 죽고 있는 거야.

 - p. 37 中에서 -

 지구의 식량은 현재보다 두 배나 많은 인구도 먹여 살릴 수 있다. 그럼에도 한쪽에서는 식량이 남아돌고, 다른 곳에서는 기아가 허덕이는 이유는 바로 식량 분배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애초 식량이 모자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아와는 관련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 역시 이 문제에 대하여 일정 부분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점점 높아지는 지구의 인구밀도를 기근이 적당히 조절하고 있다고 보는 일부 사람들은 오히려 기아를 자연이 고안해낸 지혜로 주장하고 있으니 장 지글러가 왜 이 글을 쓰면서 사람들의 기아에 대한 의식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지 깨닫게 된다. 기아를 산아 제한의 수단으로 여기면서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는 자연도태설은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주의마저 내포하고 있으니 기아를 해결하는 것은 단순히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을 돕는 것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게 된다.

 

 장 지글러는 기아를 '경제적 기아''구조적 기아'로 분류한다. 먼저 '경제적 기아'는 "돌발적이고 급격한 일과성의 경제적 위기로 발생하는 기아"를 말하며, '구조적 기아'는 "장기간에 걸쳐 식량공급이 지체되는 경우"라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분류를 통하여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기아를 그 성격에 맞게 나눔으로써 그에 맞는 해결책을 강구할 수 있다. 여기에서 장 지글러가 보다 주목하는 것은 '구조적 기아'이다. '경제적 기아'는 자연적인 재해 또는 전쟁과 같은 원인으로 발생되기 때문에 그러한 돌발적인 위기가 지나간 이후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만, '구조적 기아'는 외부적인 재해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 구조로 인해 빚어지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점에서 그러한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는 기아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구조적 기아'는 비윤리적인 것들, 이를테면 난민 캠프에서 한정된 구호 물품을 감안하여 어린 아기들 중 생존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을 선별하는 작업이 버젓이 행해지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외부의 구호와 지원만 있다면 기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러한 지원 자체는 면밀한 검토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장 지글러의 설명은 구호와 지원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수단이나 아프가니스탄에 공중에서 낙하산으로 수많은 물품을 떨어뜨리면서 "드디어 구호의 손길이 닿다!"라고 외치는 언론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구호가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러한 방법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알게 된다. 수단과 아프가니스탄은 곳곳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러한 방법은 그것을 수거하려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따라서 전문 의료지식을 바탕으로 대단히 면밀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구호는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많은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

 

 더불어 장 지글러는 기아를 초래한 식량 분배의 본질을 다룸으로써 점점 불균형이 심화되는 상황도 다루고 있다. 전 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4분의 1을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고 있다는 사실, 세계시장에서 비축된 식량의 가격이 종종 인위적으로 부풀려진다는 사실, 자국의 농민들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농산물 가격을 높게 유지하거나 폐기하는 정책을 수행하는 선진국들의 행태는 기아의 원인이자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장애물이 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장 지글러는 곡물 메이져 회사들을 '화이트칼라 강도들'이라고 비판하는데, 정작 이들은 자신들의 이윤 추구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냈으니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신자유주의'와 기아가 어떠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것의 대가가 한 세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 비참한 것은 배고픔의 저주가 세대에서 세대로 대물림된다는 거야.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린 수백만의 엄마들이 매년 지구 곳곳에서 수백만의 건강하지 않은 아이들을 낳고 있어.

 - p. 63 中에서 -

 가난의 대물림처럼 기아마저도 대물림이 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태어나자마자 곧 죽는 아이들을 위한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라든지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이라는 표현들이 그곳에서는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닌 것이다. 한국에서는 가난의 대물림으로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고 한탄하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성공이 아닌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는 상황인데,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것에 따른 문제라는 점이다.

 

 더구나 기아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기아를 아예 하나의 수단으로 삼는 사례까지 등장하고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르완다에서 대량학살을 주도한 후투족에게 유엔이 식량을 지원하면서 그들이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으며, 북한의 경우에는 기아원조 물품 중 3분의 1 또는 절반 정도가 군부와 비밀경찰이 가로채고 있어서 이는 기아 해결을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모습으로도 비춰질 수 있다. 실제 한국에서는 북한의 난민들을 돕자는 말이 나와도 그것이 결국 북한 군대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반대한다는 입장이 팽배한 상황이니 기아를 해결하는 선한 의도가 의심을 받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경제봉쇄 정책은 아예 기아를 일으켜 주도권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스위스의 대형 이유식 업체는 그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칠레 아옌대 정권의 요청을 무시하며 역시 식량을 무기화하였으니 기아를 극복하는 대상이 아닌 수단으로 활용한 예로 볼 수 있다. 심지어 가나와 북한은 수용소 생활을 통하여 기아를 강요함으로써 체제 유지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니 굶주림을 국가 테러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자주관리 정책'을 채택한 탈중앙집권화, 인두세 폐지, 토지의 효율적인 활용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했던 부르키나파소의 토마스 상카라의 개혁은 4년 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된 점을 들어서 기아 극복의 성공적인 예로 삼고 있지만, 동시에 이러한 토마스 상카라의 성공이 주위 아프리카의 독재 정권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점과 선진국들의 그들 나라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토마스 상카라를 죽이고 다시 기아에 허덕이는 상태로 되돌아갔다는 내용은 기아를 해결하는 것마저도 정치적인 논리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불평등이라는 부당한 역동성이 현재의 세계질서를 결정하고 있다. 한쪽에는 민족을 초월한 소수의 과두체제에 지배되는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 학문적, 군사적 힘의 집중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미래가 불투명한 삶, 몇억 인구의 절망과 기아가 있다.

 - p. 162 中에서 -

 현재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는 기아는 단순히 식량의 문제가 아니다. 분명 식량은 전세계 모든 사람을 수용하고도 남는다. 다만 그것의 배분이 오늘날 인간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이념과 제도로 인하여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발생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며 또 부끄러운 일이다. 기아에 방치되어 먹는 습관을 잃어버린 아기가 울음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것을 스스로 멈추고 죽는 이 현실이 과연 옳은 것인가? 우리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주변에도 여전히 걸식 아동과 심지어 굶어죽는 사람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것이 과연 그들 개인만의 문제일까?

 

 1. 인도적 지원의 효율화

 2. 원조보다 개혁이 먼저

 3. 인프라 정비

 4. 시장원리주의의 폐해

 5.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

 장 지글러는 이 책을 통하여 기아에 의한 생명 파괴에 대처하는 방법을 위와같이 제시하고 있다.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기아의 원인과 그것을 가로막는 요소, 그리고 현실적인 구호와 관련된 것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식량에 대한 접근이 지불능력에 달려 있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배불리 먹을 수 없다. 기아문제를 시장의 자유로운 게임에만 맡길 수는 없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시장의 완전한 자유는 억압과 착취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우리로서는 저자가 말하는 바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기아는 부드러운 죽음이다. 점차 쇠약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고통 없이 죽는 것이다."

 장 지글러가 기아에 의한 죽음을 보면서 스스로를 세뇌시킨 말이라고 한다. 물론 이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반성하면서 기아를 해결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혹시 기아를 직접 느낄 수 없기에 그저 방관하거나 위와같은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면서 이 책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면서 기아가 갖는 진정한 의미와 그것을 해결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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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삶의미소

    기아문제는 제 상식으로 다른 국제적인 문제에 비해 쉽게 해결될 거란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마저도 쉽지 않은 문제였네요.
    아이에게만 읽어보라고 권해놓고는 정작 저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는데 조만간 이 책을 꼭 읽어봐야겠네요.
    리뷰 잘 읽어보고 갑니다 ~~
    11월 하루하루가 책찾사님에게 의미있는 날이 되길 바랍니다^^

    2020.11.02 00:3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네, 저도 기아를 바라보는 보통 사람들의 시선을 감안한다면 조금의 노력과 관심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 과정은 물론 신자유주의 체제에 따른 이윤 추구가 기아를 방치하거나 부추기는 경향마저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이 책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자녀분께 이 책을 벌써 권하시다니 대단하시네요. 저는 이번에 처음 읽었는데, 확실히 읽고나면 우리 주변을 돌아보며 기아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의미있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삶의미소님께서도 11월을 알차고 즐겁게 보내세요. ^^

      2020.11.02 14:19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이 책 집에 있는데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네요, 방관자가 되어 살면 안되는데 뭔가에 소리를 내고 참여한다는 일이 참 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2020.11.02 08:5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반갑습니다. 시골아낙님 ^^
      저도 이 책의 존재는 이전에도 알았는데, 이제서야 비로소 읽게 되었어요. 시골아낙님 말씀처럼 기아에 대한 별다른 사고없이 약간의 기부만으로 할 것을 모두 다 한 것처럼 생각했던 저 역시 일종의 방관자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2020.11.02 14:21
  • 파워블로그 찻잎향기

    불합리한 세계 경제 질서 - 그 피해가 고스란히, 가난과 가난으로 인한 죽음으로 연결되기에. 온 지구인들이 다함께 노력해야 함에도. 저도... 이처럼 방관하고 있습니다. 반성합니다. 실천 없는 반성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저 몇 푼의 기부만으로 안일한 책임감을 보여 주면서... 그래도 그거라도 하자.. 또 생각해 봅니다.

    2020.11.02 10:3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그들만의 문제로 알고 있던 기아가 신자유주의에 따른 극심한 불균형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기아는 전세계 모두의 문제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찻잎향기님처럼 약간의 기부로 그들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기아의 본질을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행위조차 진실성이 없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물론 당장 우리가 그들을 돕기 위한 방법으로 기부가 현실적이긴 하지만, 그 본질을 이해하는 것도 꼭 필요할 것 같아요.

      2020.11.0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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