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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블 파이

[도서] 험블 파이

매트 파커 저/이경민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지금도 그렇지만 학창시절 수학은 내신과 수학능력시험에서 영어와 더불어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심지어 전공이 이공계라는 이유만으로 대학에서 강제(?)로 교양수업을 수학을 들어야 했으니 수학과는 참으로 질긴 인연을 맺게 된 셈이었다. 문제는 수학이 재미가 없었다는 점이다. 단지 시험을 목적으로 공부하여 어느 정도 점수를 얻는 것이 전부였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쨌거나 수학에 공들인 시간과 노력이 꽤 많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수학을 외면하는 것이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수학에 관심을 갖기 위하여 노력중이다. 다행히 시중에는 예전과 달리 수학을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하는 책들이 꽤 많이 출간되고 있는데, 『험블 파이』 역시 그런 책 중 하나이다.

 

 이 책이 돋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인류 역사 속에서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수학과 관련된 실수를 다루면서 '수학적 사고력'의 핵심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 최초의 계산 실수부터 거대한 다리의 붕괴 및 우주선의 추락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사건의 원인이 된 수학적인 문제를 다룸으로써 수학적 사고력의 중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책에서는 수학의 위대함 또는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수학을 다뤘던 것과는 달리 이 책은 오히려 치욕적으로 느낄 수 있는 수학적인 실수를 통하여 수학적 사고력을 점검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참신하다는 느낌마저 들게 된다.

 이 책은 온 시대를 통틀어 선별한 수학 실수 모음집이다. 이를 통하여 장막을 걷어내 암실에서 활동하는 수학의 민낯을 밝히고자 한다.

 - p. 409 中에서 -

 

 '정확(Accuracy)'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하는 수학이 인류의 역사 또는 현재의 일상에서 어떤 실수를 보여줄까? 그러한 예가 쉽게 떠오르지 않지만, 그것을 비웃듯이 저자는 무려 13장에 걸쳐 그와 관련한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수학적인 사고의 결여가 빚어낸 결과들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우선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달력을 생각해보자. 오늘날 1년 365일이 기록된 달력은 그레고리력의 방식을 따른다. 이전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정했다는 율리우스력을 사용하였는데, 이처럼 1년을 365일로 정하는 데 왜 다른 방식의 달력이 필요했는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회귀년, 즉 봄부터 이듬해 봄까지의 기간은 천문학적으로 365.2422이 된다. 즉, 지구가 태양 주위를 정확히 한바퀴 도는 기간이라고 보면 된다. 율리우스력은 4년에 한 번 윤년을 둠으로써 결과적으로 율리우스력의 1년 평균 길이는 365.25이니 0.0078일(11분 14초)이 길어서 128년마다 1일의 편차가 발생하게 된다. 이것을 개선하기 위하여 루이지라는 인물은 윤년의 개념을 다시 계산(자세한 방법은 각자 찾아보자.)하여 정한 것이 그레고리력인데, 그 방식대로라면 1년은 평균 365.2425이니 회귀년보다 0.0003일(26초)이 길고 3,300년마다 1일의 편차가 나는 셈이다.

 

 규칙적인 달력으로 3,300년마다 1일의 편차라면 수용할 수 있기에 오늘날 대부분의 달력은 그레고리력을 채택하였다. 그런데, 러시아와 같은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1900년대 초반까지도 율리우스력을 사용했다고 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6년에 만들었고, 128년마다 1일의 편차가 있었으니, 1900년대의 율리우스력과 1582년부터 사용된 그레고리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실제 1908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하여 러시아 사격팀 선수단이 영국에 왔지만, 그들은 끝내 사격대회에 참여할 수 없었다. 러시아에서의 7월 10일(율리우스력)은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7월 23일(그레고리력)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은 수학적인 편차가 시간이 흐를수록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이 사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왜냐하면 천문학에서는 여전히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문학에서 1광년은 율리우스력인 365.25일 동안 빛이 갈 수 있는 거리로 정의된다. 결국 현재 인류가 사는 지구에서는 그레고리력이, 우주는 고대 로마의 율리우스력이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달력에 이런 복잡한 수학적 사연이 있다는 점과 그것마저 꽤 복잡하게 느껴진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수학적인 실수 또는 한계를 다룬 부분은 공감과 함께 누구라도 쉽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엑셀 프로그램을 사용할 때, 무수히 많은 행과 열이 있지만, 호기심에 아래로 계속 스크롤하면 결국 행의 마지막에 도달한다. 그 마지막 행은 65,536행이다. 왜 그럴까? 바로 엑셀에서는 행을 셀 때, 16bit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엑셀에서 셀 수 있는 행의 숫자는 2의 16승이니 65,536이 된다.(별도로 확인해보니 엑셀 2003 버젼이 이에 해당되며, 엑셀 2007는 20bit를 행을 셀 때 사용하니 2의 20승, 즉 1,048,576행이 된다.) 개인적으로 숫자를 세는 부분에서 꽤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보통 10이라고 하면 당연히 10개로 인지하지만, 컴퓨터를 다루다보면 가끔 11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왜냐하면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보통 0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10이라는 의미는 어디부터 세는지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나이를 세는 방법에서도 이러한 부분이 나타난다. 한국식 나이라고 해서 태어나는 순간을 한 살로 세는 방법이 있지만, 해외에서는 1년이 지나야 비로소 한 살이라고 한다. 이 역시 카운팅하는 시점을 0이냐 1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내가 즐겨하던 『문명 5』 게임에서의 캐릭터인 간디에 대한 사례도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간디는 인도를 지배하는 영국에 대항하여 무저항 운동을 이끌면서 평화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이 게임에서도 간디의 공격성은 1로 가장 낮게 책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간디가 게임에서 핵무기를 무자비하게 발생하는 폭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대체 왜? 그것은 이 게임에서 문명이 한단계 올라가면 각국의 지도자의 공격성을 2씩 감소시키는 방식을 취한다. 따라서 간디의 공격성은 1에서 2를 뺀 -1이 되어야 하지만,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8bit의 음수를 표현하지 않는 방식을 취하다보니 1에서 2를 뺀 값은 255가 되어버린 것이다. 255는 8bit 체계에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큰 숫자이니 간디의 공격력은 오히려 가장 큰 값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버그가 발생한 것이었다.

 

 저자는 올림, 내림, 반올림에서 비롯된 수학적인 문제도 언급한다. 사실 0.5 또는 0.7에서 1로 반올림하는 것이 그리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다가오지만, 이러한 반올림이 반복되거나 그 반올림을 적용할 모수가 상당히 크다면 그 차이는 한없이 커질 수밖에 없게 된다. 사실 이 대목은 우리의 현대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바로 1954년 '사사오입 개헌'이 그에 해당된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독재 정치를 지속시키기 위하여 헌법을 개정하기 위하여 선거를 실시하였는데, 재적 인원 203명 중에서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의 결과가 나왔다. 개헌을 위해서는 재적 인원 203명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136표가 필요했으니 부결된 것이었지만, 이승만 정권은 기묘한 계산 방식을 내세운다. 재적 인원 203명의 3분의 2는 135.33...이니 '사사오입(즉, 4까지는 버리고, 5부터는 올리는 방식)'으로 계산하여 135명이기에 정족수를 충족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 그러한 억지에 가까운 주장은 개헌으로 이어진다.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우리의 현대사에서도 이처럼 수학적 사고가 중요함을 느껴볼 수 있다니 아마 저자가 한국의 역사를 잘 알고 있었다면 분명 '사사오입 개헌'은 이 책에서 다뤄졌을 것이다.

 

 확률은 우리의 상식을 벗어날 때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틀릴 때도 많은 수학 분야다. 우리는 확률에 근거해 다소 성급할 수 있는 판단을 내리도록 진화했고, 이는 가장 정확한 답이 아니라 가장 큰 생존 가능성을 제공한다. (중략) 틀렸지만 살아남는 것이 정확성을 추구하다가 잡아먹히는 것보다 진화의 관점에서 더 낫다.

 - p. 201 中에서 -

 돌이켜 생각해보면 수학에서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아마도 확률과 통계가 아닌가 싶다. 안타깝게도 이 부분들은 대부분 수학책 끄트머리에서 다뤄서인지 소홀히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하긴 확률을 제대로 배우고 이해했더라도 저자가 말한 정확성 추구보다는 틀렸지만 살아남는 것을 더 중요시하는 인간의 습성 때문에 정확하게 활용될 지는 미지수이다. 로또를 봐도 왠지 직전의 1등 당첨번호와는 겹치지 않게 선택하거나, 각 구간마다 골고루 선택하는 것이 1, 2, 3, 4, 5, 6 또는 40, 41, 42, 43, 44, 45와 같이 선택하는 것보다 더 당첨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라든지 확률은 동일한데도 말이다.

 

 이 책에서 나는 대중에게 공개된 과거의 조사 자료에서 많은 사례를 훑어봤지만, 자료는 끔찍한 재앙이 벌어진 후에야 공개되어왔다. 지금도 공개되지 않은 더 많은 수학 오류들이 물밑에서 처리되고 있을 것이다.

 - p. 9 中에서 -

 현대 사회는 수학에 의존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학적인 실수는 알게 모르게 발생하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수학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안주하는 건 그 자체로 매우 위험할 수 있다. 파인만이 발견한 우주선의 폭발 이유가 설계 도면과는 달리 실제 육안으로는 구분할 수 없었지만, 원 모양의 유지를 해야 하는 부품이 미세하게 틀어졌기 때문이라는 사례는 미묘한 수학적인 실수 또는 오류가 얼마나 큰 재앙으로 다가오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치부를 드러내고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도덕적인 교훈을 전달하기 위하여 다뤄지는 이러한 방식들이 이 책에서는 '수학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쓰여지고 있다. 그래서, 읽으면서 자연스레 수학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별다른 수학적인 지식이 없다고 해도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심지어 재미를 느끼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억지로 수많은 공식을 외우고 그 공식에 맞게 기계적으로 문제를 푸는 것으로 수학을 경험하였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복잡한 공식과 문자가 뒤섞인 괴상한 숫자들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오히려 수학이 무엇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자발적으로 수학에 대하여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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