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빨강머리 앤]은 나의 추억 속에서 항상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년에는 앤의 어린 시절을 다룬 [안녕, 앤]을 읽고 그 감동의 여운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리뷰어클럽 이벤트를 통하여 좋은 책들을 만났지만, 이번에 만난 [2021년 안녕 앤 일력]은 나에게 여러모로 의미있는 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앤을 소재로 하였다는 점과 또 지금까지 활용해 본 적이 없는 '일력'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때문에 손목시계는 어느 순간 나의 손목에서 사라진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달력은 살아남았다. 스마트폰이 날짜도 알려주지만, 시계와는 달리 책상 위의 달력은 꼭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점점 나이가 들어서인지 날짜도 자주 잊어버리는 일이 많아져서 왠지 책상 위에 달력이 없으면 불안하기까지 하다. 이런 나에게도 '일력'은 생소한 존재이다. 예전에 벽에 걸고 쓰던 한장씩 떼어서 사용하던 달력과 유사한데, 굳이 '일력'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2021 안녕, 앤 일력]을 받아서 직접 넘겨보니 '일력'은 '달력'과 '일기'의 조합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반갑게 느껴진다. 아주 오래 전에는 꾸준히 일기를 썼지만, 어느 순간부터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일기 쓰기는 중단이 되었고, 지금은 다시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좋아하는 [안녕, 앤]의 그림과 함께 3줄로 구성된 쓰기의 공간은 나만의 안식처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렇게 책상에 세워놓고 잠시 고개를 들어 일력을 넘겨보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비록 2021년이 이제 5일 정도 지났지만, 모니터를 보며 일을 하다가도 곁눈질로 일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그리고, 일력의 활용은 그저 바라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2021 안녕, 앤 일력]은 꼬마 앤이 날마다 하나씩 질문을 하고 있어서 출근과 동시에 앤이 물어보는 내용을 확인하고, 퇴근 무렵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바로 일력에 써 넣는 것으로 이 일력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하루를 설레임으로 시작하여 편안함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사실 어제(1월 4일)은 나에게 여러모로 좋지 않은 일들이 발생했다. 물론 그 일들은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고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업무의 막판에 일이 꼬이고, 또 생각지도 않은 일이 발생하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누군가에게 일어났다면 그리 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정작 나에게 일어나니 소위 '유리멘탈'이라 불리우기 딱 좋을 정도로 당황했다. 결국은 마무리 되었지만, 새해 초반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서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날 꼬마 앤의 질문은 "새로운 취미를 가진다면 어떤 게 좋을까?"였다. 기존에도 그리 많은 취미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딱히 새롭게 하고 싶은 취미가 하루종일 떠오르지 않다가 곤란한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참선'이라고 하면 놀릴거지?
어제 우연히 본 영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참선'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까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참선'이 아닐까 싶어.
단 하루가 지난 지금 생각해도 끈금없이 새로운 취미를 '참선'이라고 대답하다니. 하지만 그날의 기분에서 그 꼬인 일상을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라만 봤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아마도 그런 대답을 한 것 같다.
2021년이 이제 5일 정도 흘렀지만, 꼬마 앤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렇게 차곡차곡 모아 놓는다면 일기 못지 않은 나만의 특별한 기록이 되지 않을까? 대략 3줄로 그 날의 나의 심리를 반영해 놓은 그 답변을 시간이 흘러 읽어본다면 그것도 흘러간 시간에 대한 나만의 추억으로 자리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된다.
여전히 집보다는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서인지 회사 책상의 자리를 차지한 [2021 안녕, 앤 일력]에 대한 나의 마음은 더욱 애틋해질 것 같다. 요즈음 스마트폰에서 '챗봇'이라는 어플들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아날로그적인 감성과는 거리가 먼 그들보다는 이 일력이야말로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믿음은 하루하루 더 커져만 갈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