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밤 12시 부근에 잠을 자고, 아침 6시를 전후로 일어난다. 바쁠 때에는 그보다 더 늦게 잘 수밖에 없지만, 기상 시간은 변함이 없다. 그러니 내가 잠들어 있는 시간은 5~6시간 정도 되는 셈이다. 그리 긴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이 시간에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잠을 자고 있기 때문에 그 시간에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의 관심 밖의 일이 되면서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과도 밀접하다. 우연히 새벽에 눈을 떴을 때(아마 새벽 2~3시 정도) 창 밖에서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청소 차량의 엔진 소리를 들을 때가 있었고, 눈이 내릴 때면 도로를 누비는 제설차도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시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왜 아니겠는가? 그저 피곤하다는 이유로 수면을 취하는 것 말고는 생각할 것이 없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 시간대에 벌어지는 일을 딸과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읽게 되었다. 나보다 훨씬 잠든 시간이 많은 딸 역시 이 책의 제목에 끌렸는지 이내 책장을 넘겨보게 된다. 예전에는 내가 옆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줘야 했지만, 이제 글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기에 내가 옆에서 아이가 읽는 것을 듣거나, 이렇게 뒤에서 아이가 책을 보는 모습을 그저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나와 아이에게 이 시간대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호기심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아빠와 딸이 자연스럽게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딸에게는 대부분 이토록 많은 일들이 그 시간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꽤 놀랐던 것 같다. 나와는 달리 딸은 그 시간에는 모두 잠이 든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나에게 모두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수많은 일들이 다수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몇 시간 전까지 운행되었던 열차와 버스를 청소하는 사람들
불꺼진 거리와 가게, 사무실을 깨끗하게 치우고 있는 사람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운반하기 위하여 밤새도록 달리는 화물 트럭들
주소에 맞게 분류되는 수많은 편지와 택배
보통의 그림책들이 아이들에게 재미를 주고,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하여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너무나 현실적인 그림책이다. 정말로 우리가 잠든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잠들어 있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현실적인 일들은 몽환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딸이 이 책에서 인상적으로 바라본 장면은 소방대원들의 긴급한 출동을 표현한 그림이 나오는 부분이었다. 평소 소방대원들의 존재를 자주 접하면서 누군가를 구조하고 불을 끄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소방대원들이 밤에도 대기하다가 신속하게 출동하는 모습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종소리가 울리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봉을 타고 미끄러지듯이 내려가,
소방차에 척척 올라타.
어둡고 컴컴한 밤거리를 단숨에 달려가지.
- 책 속 내용 中에서 -
그리고 이 책은 시야를 좀 더 넓혀서 인간과 잠시 떨어져 있는 동물들의 영역도 함께 언급한다. 밤 사이에 숲과 거기에 서식하는 동물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딸과 나에게 단순히 잠이 들어서 알지 못했던 일상의 것을 넘어서서 좀 더 상상의 영역으로 나아가게 한다. 앞에서 다룬 밤에 벌어지는 일상의 내용들은 딸이 조금 더 크면 충분히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는 것이지만, 숲과 동물들에게 이 시간대에 일어나는 일들은 그때에도 상상으로만 떠올려야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깊은 밤에 때때로 너는 눈을 뜰 수도 있어.
아마 무서운 꿈을 꾸었을지도 몰라.
아니면 뭐가 좀 불편해서
잠에서 깰 때가 있어.
그리고 아무리 애를 써도
잠이 잘 오지 않는 그런 밤도 있어.
- 책 속 내용 中에서 -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거나 혹은 무서워하는 아이들에게 다정스럽게 말을 건네는 이 책의 대목에서 나 역시 밤을 무서워하여 잠을 잘 때에도 무조건 불을 켠 채로 잠들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당시 나에게 부모님께서는 그 시간에 정반대인 미국은 낮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시면서 밤에 대한 나의 공포를 덜어주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혀 밤을 무서워하지 않는 내가 이제 딸에게 거꾸로 밤에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그림책은 누가 뭐래도 그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판가름난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에 대한 평가는 이 사진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글자를 이제 혼자 읽는 것만으로도 대견스럽지만, 그림책에 빠져 사진을 찍는지도 모를 정도로 몰입하는 딸의 모습에서, 그리고 나 역시 예전의 추억과 함께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일상의 또 다른 일면을 살펴볼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잠든 사이에]는 나와 딸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은 책 중 하나로 남게 될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