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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1,2 세트

[도서] 자산어보 1,2 세트

오세영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정약전(1758년(영조 34) ~ 1816년(순조 16))

 :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서 다산 정약용의 형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있다가 벼슬에 오른 정약용의 권유로 벼슬길에 나서게 된다. 훗날 이승훈, 이벽과 같은 남인 인사들과 친밀하게 지내다가 서양의 역수학(曆數學)을 접하고 천주교에 관심을 가졌지만, 훗날 동생인 정약용과 함께 천주교를 멀리 하였다. 그러나, 신유박해(1801)로 인하여 신지도에 유배되었다가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인하여 정약용은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되었으며 유배 생활 16년에 유배지에서 사망하게 된다. 

 

 자산어보(玆山魚譜)

 : 정약전이 유배지인 흑산도에서 쓴 책으로서 3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흑산도 연해의 어족을 다룬 어보(다만, 그림이 아닌 글 위주로 되어 있다.)로서 어류와 갑각류, 조개류에 대한 정보가 상세히 적혀져 있다. 예전 문헌을 참고한 내용도 있지만, 현지인들의 증언과 직접 관찰한 것을 토대로 쓰여졌다. 원래 '흑산어보'라 이름을 지으려고 하였지만, 정약전이 '흑산'에 나쁜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되어 '자산어보(玆山魚譜)'라 명명하였다.


 오랜만에 흥미로운 역사 소설을 읽게 되었으니 바로 오세영 작가의 [자산어보(玆山魚譜)]이다.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유배지인 흑산도에서 정약전이 쓴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동생인 다산 정약용에 비한다면 정약전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은 말로만 듣던 '자산어보(玆山魚譜)'의 저술 과정과 더불어 유배지에서의 정약전의 삶을 역사적인 사실과 저자의 상상을 통한 재구성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기대된다. 특히 역사소설의 큰 흐름과 결말은 이미 역사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 뻔한 내용을 어떻게 재구성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정약전과 그의 저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역사에 짧막하게 기록된 것이 전부이기에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정약전의 유배지에서의 삶과 '자산어보(玆山魚譜)'에 작가의 창작과 상상력이 발휘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정약전은 정약용의 형으로서 그 역시 동생만큼이나 실학에 무척 관심이 많았으며 천주교를 믿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정에서 점점 천주교에 대한 탄압의 움직임이 생겨날 무렵에 약전과 약용은 천주교를 멀리 하였다. 하지만 정조의 죽음과 함께 정순왕후가 수렴첨정을 하면서 벽파가 정권을 잡았고, 이들은 '신유박해(1801)'를 일으켜서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동시에 정조에게 신임을 받던 사람들까지 거대한 피바람의 회오리에 끌어들였다. 정약전의 동생이자 정약용의 형이었던 정약종은 끝까지 천주교를 고수하였다가 순교하게 되었으며, 정약전의 조카 사위(큰 형의 사위)였던 황사영은 그 유명한 '백서 사건'으로 인하여 결국 정약전과 정약용은 각각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이렇게 정약전이 홀로 흑산도에 도착하여 유배 생활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정약전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짧막하게 '창대'라는 섬사람의 도움으로 저술할 수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창대라는 실존 인물에 숨결을 불어 넣어서 정약전의 흑산도 생활을 재구성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자산어보(玆山魚譜)'의 상세한 제작 과정과 함께 거기에 기록된 흑산도 주변의 다양한 물고기에 관한 내용을 떠올리겠지만, 생각보다 '자산어보(玆山魚譜)' 자체에 관한 내용은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저술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연이어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사실 '자산어보(玆山魚譜)'와는 큰 연관성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 책은 단순히 '자산어보(玆山魚譜)'로만 알려진 정약전의 유배지에서의 생활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것이 전부일까? 분명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이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역사소설은 그 창작의 영역이 역사와 연관성이 있게끔 느껴져야 의미가 있음을 감안한다면 도대체 왜 저자는 그러한 에피소드들을 등장시켰는지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나는 저자가 이 에피소드들을 통하여 유배지에서의 정약전의 삶이 아닌 그의 이상과 당시 조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

 

 먼저 첫번째 에피소드로 등장하는 '냉수괴(冷水槐)'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자. 물질을 하던 해녀들이 연이어 죽음을 맞이하면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상어에게 공격을 당한 것도 아니고 평소 물질에 익숙했던 해녀들이 아무런 외상이 없음에도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을 조선의 탐정으로 설정하여 미지의 사건을 풀어내는 이야기 또는 영화처럼 이 대목은 흑산도에서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정약전도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변고를 용왕의 노여움이라고 생각하며 무당을 통하여 굿을 해야 하는 주민들과 달리 정약전이 보여 준 행동은 단순히 추리소설과 같은 스릴과 재미를 주기 위한 에피소드가 아님을 직감하게 된다.


 "문헌들을 살펴본 바, 틀림없을 것이네, 세상에 이유 없는 변괴란 없는 법. 쓸데없는 미신으로 해서 생사람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일세."

 - 1권 p. 111 中에서 -


 

 차분하게 해녀들이 바다에서 죽은 기이한 사건을 정약전은 미신이 아닌 문헌과 더불어 각종 단서를 토대로 그 원인을 밝히고자 하였다. 언뜻 탐정과 같은 모습을 연상케 하지만, 이는 조선 중후반에 등장한 실학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분석을 통하여 현실의 문제에 접근하여 실제 생활에 유용함을 주기 위한 실학의 의미를 흑산도에서 발생한 미스테리한 사건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약전의 주장을 전혀 수용하지 않은 채,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이고 심지어 용왕에게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려는 일부 주민들의 모습은 주자학이 아닌 실학이 더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따라서 이 책의 에피소드들은 분명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 본다면 단순한 이야기거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흑산도의 조기를 독점하려는 상인의 계략과 그것을 막으려는 정약전의 노력 역시 조선 중기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그 상인을 '사상도고'라 칭하는데 이는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상인 중 대규모의 자본력과 조직망을 갖춘 상인을 뜻한다. 이 대목은 정조의 '금난전권 철폐'와 연관이 있다. '금난전권'은 조정과 왕실에 물품을 대던 시전 상인들의 특권으로서 그들 이외에 다른 상인이 활동하는 것을 금하는 권리였다. 이로 인하여 시전 상인들은 시장을 독점해왔는데, 정조는 '금난전권'을 폐지하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사상도고'들이 등장하였으며, 이 작품에서 흑산도의 조기를 독점하고 궁극적으로 조선의 쌀을 독점하려는 인물 역시 바로 '사상도고' 중 하나였다. 따라서 정약전과 사상도고의 기싸움은 당시 조선의 상업에 대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사상도고'가 정약전에게 말한 내용은 오히려 현재 우리의 입장에서 더욱 수긍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손가락 빨로 살면서 안분지족이 무슨 의미가 있고 저 먹고살기 바쁜데 누가 누굴 배려한단 말입니까. (중략) 잘 먹고 잘 살려면 장인들이 열심히 물산을 생산하고 사상들이 부지런히 재화를 유통시켜야 합니다. 양이의 예에서 보았듯이 부국강병을 이루려면 장사를 장려해야 합니다. 장사꾼의 발에 족쇄를 채우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 1권 p. 196 中에서 -


 정약전과 상인의 대화는 오늘날 성장과 분배에 관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상인이 주장하는 내용은 여전히 성장을 강조하는 관료 또는 재계의 목소리와 너무나 흡사하다. 실학에 관심이 많았던 정약전도 이러한 상인의 주장에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하면서도 배려와 안분지족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니 이 에피소드 역시 단순히 재미와 흥미에만 그치지 않는다. 또한 '사상도고'의 등장과 그들이 말하는 바는 이 시기에 조선의 자본과 상업이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쯤되면 그동안 '정약전 = 자산어보(玆山魚譜) = 흑산도'로만 알고 있던 우리에게 이 책은 정약전이 그의 동생 정약용과 마찬가지로 실학자로서 다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따로 정약전에 관한 내용을 찾아보지 않는다면 그거 실학과 관련하여 어떤 부분에 기여를 하고 또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 여전히 알기 어렵다. 저자는 이러한 부분을 흑산도에서 정약전이 서당을 열고 거기에서 제자도 받아들인 최종문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최종문은 흑산도의 유력한 집안의 서자 출신이었는데, 영특한 인물로서 주자학이 아닌 실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서자라는 출신 때문에 과거를 치루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주자학은 그와는 전혀 관련없는 학문이었다. 이러한 최종문이 정약전으로부터 실학과 서학을 배우면서 역관이 되어 조선의 상황에 맞는 역법을 만드려는 꿈을 갖게 된다. 정약전이 서양의 역수학(曆數學)에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것을 정약전이 최종문에게 가르치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무너진 성을 보수하기 위하여 꼭 필요했던 거중기의 각 부품의 도면을 완성하기 위하여 수학적인 계산이 필요했는데, 최종문은 정약전의 격려와 함께 홀로 그것을 완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이 대목은 저자가 최종문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하여 실제 정약전의 활약을 투영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창대의 도움을 얻어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쓴 것은 기록으로도 남아있는 역사적인 사실인데, [자산어보(玆山魚譜)]는 또 하나의 논픽션으로서 잘 알려지지 않은 정약전의 기록물의 저술 과정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는데, 바로 [표해시말(漂海始末)]에 관한 것이다. 문순득은 실존 인물로서 홍어를 잡으로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서 유구(현재 일본의 오키나와)와 여송(필리핀), 청을 거쳐서 조선으로 다시 돌아온 인물이었다. 문순득은 흑산도로 돌아와서 정약전을 만나서 그가 겪은 내용들을 들려주었고, 정약전은 그 내용들을 글로 옮겼으니 그것이 바로 [표해시말(漂海始末)]이다. 조선의 폐쇄적인 대외활동을 감안한다면 문순득의 경험은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었다. 그의 표류기는 조선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유구와 여송, 마카오의 언어와 풍속양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정약전이 흑산도에 없었더라면 문순득의 표류기인 [표해시말(漂海始末)]은 세상에 나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자산은 곧 흑산이다. 그런데 나는 흑산에 유배된 처지라 흑산이란 이름이 무서웠다. 집안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흑산을 번번이 자산이라 썼다. 자(玆)는 흑(黑)이다.'

 섬에서 후회 없는 삶을 보냈으면서도 뭍을 동경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약전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 2권 p. 276 中에서 -


 '자산어보(玆山魚譜)'의 탈고 과정은 정약전의 유배지 생활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보여준다. 실제로 정약전은 동생인 정약용이 강진에서의 유배를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것과는 달리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때 그가 죽은 곳은 흑산도가 아닌 근처 우이도였다.) '흑산(黑山)'을 '자산(玆山)'이라 쓴 것도 어쩌면 그가 생의 마지막을 흑산도에서 보낼 것이라는 불길한 기운을 잠재우기 위한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내 그는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어쩌면 그의 안타까운 마지막 모습은 그동안 우리에게 '자산어보(玆山魚譜)'로 가려져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오세영 작가의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제목처럼 정약전이 저술한 '자산어보(玆山魚譜)'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 비하여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약전의 생애 전반은 물론 그가 꿈꾸던 이상을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사상도고의 등장, 서학에 대한 편견, 홍경래의 난과 같은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도 함께 엿볼 수 있어서 역사소설이라는 장르에 충실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생각해보니 오세영 작가는 1994년 [베니스의 개성 상인]을 썼다. 루벤스가 그린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기적]의 밑그림에 등장하는 한복을 입은 조선인을 보고 그 작품을 썼는데,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그의 신작 [자산어보(玆山魚譜)]도 왠지 친밀하게 느껴진다. 또한 이 작품을 원작으로 이준익 감독이 영화(주연 : 설경구(정약전 역), 변요한(창대 역))도 개봉되었으니 이 책을 읽고 관람하면 좋을 것 같다. (영화에서 두 주인공의 관계와 이야기는 소설과 약간 다르다고 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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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ne518


    한복은 입은 조선인 이야기는 다른 소설로도 나왔던 것 같네요 실제 그 그림속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정말 조선 사람일지... 정약용보다 정약전은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고도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아는 듯합니다 저는 이름만 아는군요 흑산도에 유배가서 거기에서 <자산어보> 썼다는 것밖에는... 거기에 그림도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싶기도 합니다 지금과 그때는 아주 많이 달라졌을 테니... 이 소설을 보면 상상이라 해도 정약전이 어땠는지 조금 알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도 실학으로 섬에 사는 사람을 돕기도 했겠지요


    희선

    2021.04.03 01:4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네, 끝내 유배지에서 풀려나지 못한 그의 오랜 유배 생활은 약간의 상상력만 가미되어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바로 이 작품이 그 결과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정약전에 대해서 그리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실제 흑산도에서 그러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라고 자연스럽게 공감이 되더라구요. ^^

      2021.04.1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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