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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로 떠난 간호사

[도서] 아랍에미리트로 떠난 간호사

윤혜진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40대 중반으로 접어드니 이제는 정해진 길을 그저 묵묵히 걸어가는 것과 같은 생각도 든다. 100세 시대에 아직 한창이라는 말도 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요즈음 내가 직면한 현실이 그러하다. 얼마든지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통하여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막상 그것을 현실로 옮겨보려고 하면 무언가 큰 벽을 마주하거나 또는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래서, 정말 이 길이 내가 원했던 길인가라는 의문이 하루종일 엄습하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딱히 변화를 모색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아랍에미리트로 떠난 간호사]는 이러한 나에게 잠시나마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또 현재 나의 상황을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해 준 책이라 할 수 있다. 20대 초반부터 채 10년이 되지 않은 저자의 과감한 도전 과정은 사실 내가 그 시기에 걸어온 길과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요즈음 나의 상황이 아마 그 시기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니 이 책의 내용은 한 청춘의 성공담보다는 나를 비추는 거울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무스펙, 전문대 졸업, 2차 병원에서 아랍에미리트 최고 병원에 가기까지"

 책의 뒷면에 인쇄된 이 문구가 참 인상적이다. 저 문구에 압축된 저자의 현재의 삶 또는 걸어온 과정이 나하고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일정 부분 스펙을 쌓기 위하여 나름 괜찮은 학교와 직장에 가려고 노력하였음에도 현재 나의 상황은 저자의 "아랍에미리트 최고 병원"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외형적으로야 비슷할 수도 있지만, 저자가 스스로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상황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가 간호사라는 직장인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조건은 그리 만족스러운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도 그것을 자각하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였음을 언급하고 있으니 말이다.이 시점부터 나는 저자와는 너무나 다른, 그래서 현재 내가 처한 상황에 이르게 된 원인을 찾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젊은 시절부터 그저 무난한 길을 지향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간호사의 현실과 체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분명 저자의 "무스펙, 전문대 졸업"은 좋은 조건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간호사로서의 책임감을 다하기 위하여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도 더 많이 배우고 변화를 주려고 노력하였다. 치열한 자기계발을 통해 CCRN(중환자전문간호사), NCLEX(미국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였고, 또한 해외에서 근무를 위하여 영어에 매진하였다. 이에 반하여 나는 무난함을 지향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느 정도 괜찮은 조건을 만들고 또 그 조건을 바탕으로 무난한 회사에 취업을 했으니까. 이러한 성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직장인에게 자기계발을 강조하지만, 나는 그저 회사에서 요구하는 일정 조건, 예를 들어 토익 등급과 자격증 획득과 같은 기준을 충족할 정도로만 자기계발을 하였고 그 조건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업무 역시 신입 시절을 제외한다면 그저 맡은 일에만 충실히 할 뿐 딱히 욕심을 갖고 더하지 않았으니 그저 완만한 직장 생활을 하게 된 셈이다. 변화에 대처하고 도전하려는 것이 부족하다보니 최근 내가 지금과는 다른 환경에서 일을 하다보니 더 바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던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저자와 나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실행력'이다. 새롭게 맡은 일을 하거나 변화에 앞서 나 역시 저자와 마찬가지로 일단 꼼꼼하게 준비를 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일 또는 변화에 대하여 나름 많은 자료와 조사를 통하여 분석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나 또한 저자와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바로 '실행력'의 차이에 있었다.


 '망설일 게 뭐 있나, 일단 해보는 거지.'라고 매일 다짐했다. '일단 나와보면 뭐라도 일어나겠지. 일단 공부해보면 뭐라도 얻겠지. 일단 시도해보면 결국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시작'의 두려움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 p. 20 中에서 -


 저자는 꼼꼼하게 생각하고 계획한 바를 '일단'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나는 '일단'이 아닌 '하게 되면' 실행에 옮겼으니 이 차이가 아마도 저자와 내가 처한 상황에 큰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일이 주어지면 무조건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수많은 야근과 주말 특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분명 일정 부분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주어지면' 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일이 많은 회사인데, 굳이 나서서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머릿속에서는 그 일을 맡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수많은 생각이 활발히 일어날 뿐이다. 이로 인하여 저자의 말처럼 그저 생각만하고 시작을 하지 않으니 시작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었고, 또한 머릿속의 생각과 준비를 실제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문제들을 분명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저자와 달리 난 실행으로 옮기지 않으면서 그저 무난함과 편안함으로 그것들을 외면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이제는 이러한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아예 변화와 새로운 도전에 대한 생각조차 멈춘 상태가 되었으니 저자의 도전은 나의 사회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자극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최근 내가 맡은 업무는 이러한 상황에 안주하면 스스로 도태가 될 것이라는 위기의식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저자의 그 쉽지 않은 도전과 여정이 현실로 느껴지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누군가의 성공에 이르는 길에 대한 전형적인 내용처럼 보여질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 저자가 도전 과정에서 겪은 일들은 어느새 내가 이제서라도 다시 가야할 방향에 대한 과정으로서 공감하게 된 것이다. 특히 저자가 현재 근무하는 4번째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것처럼 그녀의 도전이 순탄치 않았으며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점은 더욱 현실처럼 느껴지게 된다. 대부분 '하면 된다'라는 모토와 함께 부단한 노력으로 성공했다라는 공식과는 달리 저자는 한국 병원에서 생각했던 간호사에 대한 괴리감과 부조리한 현실을, 아랍에메리트에서 처음 근무하게 된 한국계 병원에서 느껴야 했던 실망을 뒤로 하고 그 와중에 동료로부터 배우고 또 자기계발을 통하여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었으며, 이 책을 쓴 시점 역시 성공의 정점이 아닌 여전히 그러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또 다른 볼거리는 바로 저자의 눈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병원과 간호사의 현실을 들 수 있다. 언론 보도를 통하여 '태움 간호사'로 대변되는 의료계의 경직된 위계 질서를 저자의 실제 경험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고, 그로 인하여 어떤 문제점들이 있는지를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 군대를 연상케 하는 사소한 행동에 대한 꼬투리와 직급에 따른 상상조차 하기 힘든 그 위계질서는 24시간 환자들을 챙기고 살펴보느라 힘든 간호사들에게 더 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단 이런 현실이 꼭 간호사와 의료계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나름 새로운 기술들이 쏟아져 나와서 변화가 강조되는 회사에 근무하는 나로서도 이런 분위기는 항상 느꼈으며, 나 역시 회사 생활이 오래되면서 그 위계 질서에 살짝 묻어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수평적인 관계 형성을 위하여 직급을 없애고 호칭을 하나로 통일하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에 이러한 분위기가 여전히 만연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같은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위기가 현재 저자가 근무하는 아랍에미리트의 병원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랍에미리트의 병원 생활을 통하여 저자가 느낀 부분 역시 오로지 저자의 개인적인 체험으로만 보기에는 어렵다는 점도 눈에 띈다. 즉, 다르다는 것에 대한 공감 부족'죄송합니다'를 달고 사는 저자의 모습은 한국인의 공통된 정서이자 행동 양식이기 때문이다. 다르다는 것을 틀린 것으로 또는 뒤처지는 것으로 생각하여 오로지 남들과 다르지 않기 위하여 남들만큼은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한국인에게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공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문화 가정'이라는 표어가 등장한 이유도 어쩌면 오랫동안 단일민족이라는 자긍심에 취하여 그 변화를 결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또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달고 사는 것이 과거에는 겸손함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인식되었지만, 그것이 이제는 아예 생활양식이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분명 문제라 할 수 있다. 나 역시 분명 업무에 관한 협조를 구하는 메일이나 전화를 걸 때면, 일단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하지만'이라는 상용구를 떨쳐낼 수 없으니 저자가 외국에서 그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외국인을 보았을 때의 자괴감은 더욱 컸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부분을 놓고 본다면 이 책은 단순히 개인적인 체험 수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한국인 특유의 완벽함에 대한 추구 내지는 그것을 제일로 생각하는 것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들의 지적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대목은 이 책이 한 개인이 아닌 한국인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부분들은 저자가 간호사로서 성공하기 위하여 외국에 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국에서 자신의 기존 관념을 돌아보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저자의 시도 자체가 여전히 경직된 한국의 일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저자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시점은 흔히 말하는 스펙 부족에 따른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저자가 이후 보여준 자기계발의 행보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노력과 성과가 한국에서는 거의 통하지 않았기에 외국 진출을 모색하였다는 점은 저자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고민해야 하는 한국 특유의 경직성이 아닐까?

 

 비록 걸어온 길은 너무나 달랐지만 현재 내가 처한 상황 때문에 [아랍에미리트로 떠난 간호사]는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며 읽어볼 수 있었다. 저자의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함께 과감한 실행력은 스스로 자원하여 새로운 업무를 뒤늦게 맡은 나에게고 분명 귀감이 되는 내용들이었다. 저자는 2020년에 현재 다니고 있는 병원에 입사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은 저자의 성공담보다는 치열했던 도전의 과정을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곧 30대에 접어들 저자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현재 그녀의 상황이 그 도전의 결과라고 보기에는 이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후 그녀의 행보에 대하여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이 책도 스스로 출판사를 찾고 일러스트레이터를 구하여 쓴 것이라고 하니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그녀의 다음 행보 역시 다시 책으로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의 노력과 과감한 실행력이 끝까지 빛을 발하기를 응원하며 다시 한 번 책으로 만나보기를 기대해본다. 

 


 이 리뷰는 출판사 인간사랑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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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부자의우주

    같은 책 다른 리뷰!
    그리고 책찾사님의 현재 상황과 각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아자아자! 분명 열심히 책을 읽고 읽은 것을 다 온전히 삶에 적응하고자 애쓰는 책찾사님 과 우리 독서가(?)들에게 영광 또는 수고에 대한 응답이 있을 겁니다.

    자기다운 해석 잘 보고 갑니다 ^^

    2021.04.07 15:5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네, 요즈음 제가 처한 상황 때문인지 이 책의 내용이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비록 저자와는 많은 부분에서 환경적인 차이가 있지만, 분명 제가 배우고 또 현재를 바꿀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2021.04.14 13:23
  • 스타블로거 ne518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애쓰는군요 한국에서 잘 되지 않아서 아랍에미리트에 가다니 대단하네요 늘 공부하고 자신을 갈고 닦는다니 그런 사람은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잘 가겠지요 어려운 일이 있다 해도 잘 헤쳐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도 자신이 여러 가지 알아보고 낸 거군요 대단합니다 이런 걸 보고 무언가 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될지 안 될지는 해 봐야 알겠지요 저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안 할 때가 더 많군요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희선

    2021.04.08 00:1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저도 희선님의 마지막 문구처럼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참 생각은 많이 하면서도 결국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일단 행동해보라는 말이 참 와닿더라구요. 분명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지라도 그 행동이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는데 나름 많은 생각끝에 행동하지 않는 걸로 스스로 위로하며 살았으니 너무 무던한 삶을 제일의 목표로 삼았던 제가 약간 부끄럽습니다. 물론 평범한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잘 알지만요. ^^

      2021.04.14 13:26
  • 스타블로거 삶의미소

    같은 업계에 종사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실 이 책을 대하기가 오히려 껄그럽게 여겨졌는데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이웃님들의 리뷰로 알게 되며 저도 담엔 이 책을 만나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목표를 세우고 현실의 불합리에서 벗어나고자 힘쓰고 결국 그 일을 해낸 멋진 사람임이 분명하네요 ~~
    누군가는 해내지 못한 일을 누군가를 해내는 것은 아마도 노력한 만큼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2021.04.11 00:5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아, 저자와 같은 업계에서 종사를 하셨다니 이 책은 삶의미소님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겠네요. 솔직히 저는 가끔 병원에 환자의 입장으로만 간호사분들을 뵙고, 언론을 통하여 알게 된 것이 전부인지라 이 책으로 조금이나마 그 현실을 알게 되었거든요. 더불어 목표를 세우고 일단 행동으로 옮기면서 그 과정에서 일어난 다양한 시행착오 과정은 지금까지 제가 선뜻 도전하지 않은 것들이어서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삶의미소님 말씀처럼 책으로나마 이런 노력을 접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

      2021.04.1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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