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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공법

[도서] 만국공법

헨리 휘튼 저/윌리엄 마틴,김현주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1

 1792년 청나라에 파견된 영국의 사신 메카트니는 청나라로부터 건륭제를 접견할 때 삼궤구고두례(세번 꿇고 아홉번 조아리는 예)를 요청하지만 메카트니는 유럽에서 국왕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는 것이 전부라며 그 요청을 거부하였고, 결국 청나라와 영국의 외교는 진행되지 않았다.

 

#2

 1876년 2월 27일 강화도에서 조일수호조규가 체결된다. 관세를 폐지하는 항목을 포함하여 전반적으로 조선에게 불리한 조규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불평등한 내용은 바로 치외법권에 관한 것이었다. 조일수호조규의 제10관에 명시된 부분이 거기에 해당된다.

 제10관 : 일본인이 개항장에서 죄를 범하면 일본으로 압송해 재판토록 한다.


 

 1792년 청나라는 건륭제의 치세로 절정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청나라에 영국은 사신을 파견하여 외교관계를 진행시키려 하였지만, 청나라의 일방적인 '삼궤구고두례'의 강요로 인하여 무산되었다. 서양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치욕적인 굴욕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예를 표시하는 부분에 대해서 절충하려 하였으나 청나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 외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상당히 무례한 것이지만, 청나라는 전혀 그러한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조선은 운요호 사건으로 인하여 일본과 최초로 외교 조약을 맺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1876년에 이루어진 '조일수호조규'이다. 그런데, 이미 일본은 미국에 의한 강제 개항 과정 이후 서구 열강과 불평등 조약을 맺었는데, 그것을 그대로 조선에 적용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치외법권에 관한 부분을 조선에서는 그다지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전의 왜관에서도 조선은 사실 일본인이 저지른 범죄는 일본 쪽에서 처리하게 했기 때문에 치외법권 인정에 관한 부분도 그러한 것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위의 두 사례는 오늘날 외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무례 또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당시 청나라와 조선은 서구 열강과의 관계는 거의 폐쇄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제법에 따른 조약이라든지 개항, 외교 업무 처리에 대해서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하여 청나라와 조선은 서구 열강과 일본으로부터 외교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청나라에서 소개된 책이 바로 [만국공법]이다. 원래 [만국공법]미국의 외교관이며 국제법 학자인 헨리 휘튼의 저서 [Elements of International Law](국제법 원리)를 당시 중국에 머물고 있던 미국인 선교사였던 마틴이 중국어로 번역한 책이었다. 다년간 중국에서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중국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마틴이 국제법과 관련하여 전무했던 중국의 상황을 감안하여 그것을 다룬 헨리 휘튼의 저서를 [만국공법]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식으로 번혁한 것이었다. 

 

 실제로 양무운동의 지지자이며 실무자였던 공친왕은 [만국공법]을 각 아문과 통산 항구의 각 부처에 보내어 영사관 등에 관련된 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보급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중국이 밀려드는 서구 열강과의 외교 관계 수립 및 처리에 관하여 얼마나 미숙한 상황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시 강대국들이 생소한 '공법(국제법)'을  왜곡하여 그들의 뜻을 관철시키고 있음을 청나라는 인지하고 있었고, 실제 '공법'에 무지하여 자신들에게 손해를 초래하는 불평등조약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청나라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국공법]을 통해 이해한 서구 국제법의 원칙들, 특히 영토, 인구, 경제력 등에 관계없이 평등한 국가 간의 관계, 리의(理義)와 인정(人情)을 반영한 국제적 관례와 의식, 양자 혹은 다자간의 동의와 인정(人情)을 통해 형성된 국제적 규육 등은 서구의 횡포에 대항할 만한 정신적, 도덕적 무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 p. 9 中에서 -


 

 [만국공법]은 제목처럼 '공법(국제법)'에 관한 개념에서부터 근대 국가와 주권은 물론 외교의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헨리 휘튼이 이 책을 중국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법'에 대한 수많은 정의와 사례들을 인용하여 저술했기 때문에 그 당시 청나라가 생소한 공법과 국제적인 외교 관계를 배우고 이해함에 있어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자연권이란 각국이 인정하는 것이고, 다른 나라의 국민에게 통용될 수 있는 권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첫 번째이다. 국가 간의 교제의 도를 논하는 것이 두 번째이다. 오늘날 공법이라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교제의 도를 가리키며, 그것을 부르기를 "외(外)공법"이라 하고, 각국의 자치 내법과 구별한다.

 - p. 37 中에서 -


 

 위에 언급된 내용은 헤프터의 공법에 관한 설명이다. [만국공법]에는 '공법'에 대하여 단 하나로 정의하지 않는다. '자연법'을 '성법'으로 '국제법'을 '공법'이라 명명한 그로티우스를 비롯하여 '공법'이 있기에 서로 사신을 보내고 화친조약을 맺는다는 몽테스키외에 이르기까지 '공법'과 관련된 다양한 개념이 나열되어 있다. 이를 토대로 [만국공법]에서는 '만국공법'의 근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첫째, 저명한 공법학자들의 주장

둘째, 각국의 동맹과 조약과 통상 장정, 개혁, 거듭 밝히고, 분별하여 바로잡기 이전의 공법

셋째, 각국이 정한 장정을 통해 순양하는 해군, 그리고 해양법원의 범위 훈시

넷째, 각국이 심사하고 판결하는 공안이라면 대사는 논쟁을 멈추고 법원과 더불어 전리를 심사하는 것

다섯째, 법관이 일을 논하여, 본국에 서신을 보내는 것

여섯째, 각국의 교전 및 화약 공의 등의 사정을 기록한 역사


 

 이렇게 '만국공법'에 대한 정리 이후에 [만국공법]은 근대적인 국가와 주권, 외교와 관련된 보다 구체적인 방안을 다양한 사례로 설명한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현재 우리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만국공법]이 영어로 되어 있는 것을 당시 청나라가 이해하기 쉽게 한자로 번역되다보니 그 표현이 현재의 관점에서는 더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공법'보다는 '국제법'이 익숙한 것처럼 말이다. 또한 근대 이후 형성된 국가와 주권의 개념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하였고, 또 그 결과에 따른 현재의 체제에 살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을 더욱 이해하기 쉽다. 따라서 이 책이 19세기 중국의 상황에서 이러한 내용들을 설명하기 위한 서적임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개념에 대한 정의보다 그것과 관련된 다양한 사례에 오히려 더 초점을 맞춰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예를 들어 국가의 자호(自護), 자주(自主)의 권리를 논하는 부분을 보자. 사실 국가가 스스로를 보호하고 권리를 지닌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청나라의 관점에서는 그동안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해온 상황이었으며, 그들의 입장을 반영한 일방적인 관계에 익숙해져 있기에 현재의 보편적인 각국의 주권과 자주의 개념을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만국공법]에는 역사 속의 다양한 사례를 통하여 이러한 개념을 함께 설명하고 있어서 눈여겨 보게 된다.

 


 그때 프랑스 국민이 난을 일으켜, 이웃 국민들 또한 똑같이 난을 일으키도록 하고자 해서, 여러 대국들이 동행하여 그것을 막았고, 그 뜻이 장차 민란을 막았으며, 각국 군주의 자리를 지켰다. 프랑스의 그 일은, 자주국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타국이 부득이 관여하였다. 결국, 어떻게 타국의 내정을 예방할 수 있는지는, 일정한 방식으로 귀결시키기 어렵고, 정해진 방식도 없으니, 곧 혼란하여 불분명하고, 불분명하니 잘못 사용하기 쉬워, 해를 초래한다.

 - p. 90 中에서 -


 위의 사례는 건륭년간 프랑스에서 일어난 변고에 관한 것이다. 바로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에 관한 내용인데,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의 각국이 대불동맹을 맺어서 프랑스를 혁명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를 각 국가의 자주 또는 내정간섭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다. 각 국의 자주와 내정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 프랑스의 혁명에 주변의 오스트리아나 프로이센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파급 효과가 주변국에도 미칠 것이라고 판단이 된다면 주변국 입장에서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프랑스와의 전쟁을 통하여 내정 간섭을 시도한 것 역시 정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행위는 관점에 따라 모호할 수 있기 때문에 해를 초래할 수 있음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 

 

 [만국공법]의 "제3권 제 나라의 평상시 왕래의 권한을 논하다"는 외교와 관련된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하는 부분이기에 당시 청나라의 실제 외교 업무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우리는 외교관계를 맺으면 대사관이나 영사관을 설치하여 외교관을 파견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당시 청나라에는 그러한 개념이 없었다. 이러한 부분을 이 책에서는 흠차(欽差)가 외국에 주재하는 것으로 표기하고 있다.(이 책이 미국 원서를 중국 한자로 번역한 책임을 잊지 말자.) 여기에서 '흠차'는 전권을 의미하는데, 임칙서가 현장에서 직접 영국의 아편을 압수하여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흠차대신으로 파견되었기 때문이다.(흠차대신은 전권을 위임받은 대신으로 보면 된다.) 이러한 흠차대신은 청나라에게는 주로 국내의 주요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 임시로 파견하였으니 그들에게 오늘날 외교관은 바로 그 흠차대신을 외국에 상주시키는 개념으로 이 책에서는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청나라가 타국 또는 자국에 공관을 설치하여 외교관을 파견 또는 상주시키는 외교적인 절차에 익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실제 [만국공법]의 3권은 공관의 등급과 신임장 접수 및 제출 등을 포함하여 외교관을 파견하는 것과 관련된 내용들을 조목조목 다루고 있다.

 

 이처럼 [만국공법]은 책의 내용과 더불어 이 책이 중국에 출간되었을 무렵의 청나라의 상황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당시 국제법과 외교에 대해 전무했던 그들이 느꼈을 위기의식이 이 책의 번역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모든 것들이 계속해서 빠르게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고 외교적인 갈등과 마찰을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질서와 규칙 정립에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당시 청나라의 국제법과 외교에 대한 위기의식은 꼭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 역시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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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ne518


    일본은 조선보다 먼저 개항이랄까 나라를 열고 경험이 있어서 조선에 안 좋게 조약을 맺기도 했네요 조선은 나를 닫았던 때여서 그런 걸 잘 모르고 조선한테 안 좋다는 걸 몰랐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잘 몰랐기에 그랬겠습니다 나라와 나라는 평등해야 할 텐데... 국제법은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이 책은 그때 청나라를 알 수 있기도 하군요 책찾사 님은 역사를 좋아하시니 이런 이야기도 재미있게 보셨겠습니다 국제법이 있다 해도 여전히 힘이 센 나라에 더 좋은 쪽으로 조약 같은 걸 맺지 않나 싶기도 해요

    책찾사 님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2021.06.27 02:3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국제법이 국가 간의 상호 평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도 국가의 힘이 비슷할 때나 통용되는 것 같습니다. 이론과 현실은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으니 국제법도 달리 적용이 되었고 실제 역사에서 그런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죠. 한국의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지만,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과의 관계와 약소국과의 관계가 다른 것도 그러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희선님, 주말 평온하게 보내셨는지요? 남은 주말도 잘 보내시어 다가오는 한 주도 항상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랄께요. ^^

      2021.06.27 20:33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