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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

[도서] 중국과 일본

에즈라 보걸 저/김규태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하버드 석좌교수로서 동아시아 전문가인 에즈라 보걸은 저서 [덩샤오핑 평전][재팬 애즈 넘버 원]이라는 책을 통하여 중국과 일본의 현대사에 정통하다는 점을 입증한 바가 있다. [중국과 일본]은 1,500년에 달하는 두 나라의 교류의 역사에서 주요한 전환점들을 살펴보고, 그것이 중일 관계에 미친 영향을 객관적이면서도 입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그의 시도에서 비롯된 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한국이 빠진 것이 약간 서운할 수 있으나, '한국과 일본' 또는 '한국과 중국'에만 익숙한 우리로서는 오히려 주변국이자 한국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두 나라에 대하여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주목할 만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동아시아 삼국의 역사를 감안한다면 중국과 일본의 관계 역시 오랜 시간 형성된 것이기에 과연 에즈라 보걸은 어떻게 그에 대하여 접근하고 서술하게 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러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면서 동시에 읽는 입장에서 어떠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읽어야 할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은 이 책의 서문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통해서 깊이 배운 세 번의 시기에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일본이 중국 문명의 기초들을 배운 600년부터 838년까지중국이 일본에게서 배운 1895년부터 1937년까지, 1972년부터 1992년까지가 그 시기들이다. 1895년부터 1937년까지의 다양한 측면들을 다룬 제5장부터 제7장까지를 제외하고는 연대순으로 장들을 배열했다. 이 시기에는 중요한 새로운 국면들 - 중국의 일본 문물 학습, 일본의 식민주의, 전쟁으로 이어진 정치 - 이 너무도 다양하게 나타나서 3개로 된 별개의 장에서 다루기로 했다.

 - p. 11 中에서 -


 위의 내용을 토대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60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중국과 일본의 관계사를 파악할 수 있으며, 교류하는 상황 속에서의 위치 변화가 어떤 역사적인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의 부제가 '1,500년 중일 관계의 역사를 직시하다'이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언급 역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1. 일본 문명에 대한 중국의 기여 : 600 ~ 838년

 저자는 중국으로부터 중요한 문화 도입이 이루어진 이 시기가 일본의 지도자들이 더 광범위한 지역을 아우르는 중앙집권화 된 행정구조를 구축할 때였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문자언어, 불교, 유교 등의 문물은 일본의 중앙집권화에 정치, 사상, 문화적인 측면에 기여하였기 때문에 이 시기의 일본의 중국 문물 수용은 중앙 정부에 의하여 주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중국으로의 사절단 파견을 중단할 무렵 일본은 어느 정도 중앙집권화를 이루었으나, 이후 전국적 징병제를 없애고 지방 관리들이 자체 민병대를 보유하도록 허용할 정도로 다시 지방이 힘을 얻기 시작하하였다는 점을 통하여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이 시기에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문물이 19세기와 20세기에 서구 문화가 유입된 이후에도 존속될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러한 문물이 중국군의 진격 또는 대규모 이주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에즈라 보걸은 이 시기의 일본의 문물 유입이 다양한 중국의 문화 요소들을 익히고 일본으로 건너간 소수의 한국인들, 일본을 찾은 그보다 더 적은 수의 중국인들, 그리고 장안에서 유학한 소수의 일본 승려들과 관리를 통해서 들어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중국의 문물 수입이 중앙집권화 체제의 기틀을 포함하여 방대한 범위에 영향을 끼쳤음을 감안한다면 이토록 소수의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점은 특기할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대목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중국 문물 유입 과정에 한국도 어느 정도 기여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동시에 한국이 일본에 전해준 것이 중국의 문물로 인식하는 서구의 관점도 엿볼 수 있다.

 

 2. 혁신적인 배움을 동반하지 않은 교역 : 838 ~ 1862년

 9세기 중반에 들어서서 일본은 중국으로부터의 문물 수입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갖게 되지 않는다. 당시 일본 지도자들은 일본의 정부 구조와 사상, 문화가 어느 정도 안정화를 이루면서 중국과 견줄 만하다고 믿었으며, 중국의 황제를 일본의 왕보다 더 높은 "천자(天子)"로 인정해야 하는 조공관계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의 중국의 상황은 일본에게 이상적인 모델이 아니었다라는 점도 이러한 상황 형성에 기여했다. 당나라는 안사의 난(755 ~ 763년) 이후 쇠퇴하였으며, 이후 이민족의 침입과 더불어 분열 양상이 심화되어가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중국과 일본의 지도자들이 양국 간의 평화로운 협력관계를 유지하려는 공감대는 형성이 되었지만, 더이상 조공관계가 아닌 교역관계만이 유지되는 상황이었다. 

 

 다만 이러한 흐름에 예외가 있었으니 명나라의 건국과 더불어 두 번의 전쟁을 들 수 있다. 먼저 명나라(1368 ~ 1644년)의 건국은 중국에 강력한 세력이 등장하였음을 의미하는 반면 이 시기의 일본 막부는 세력이 약화된 상황이어서 중국으로 조공을 보내서 그 권위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1403년부터 1547년까지 일본은 다시 중국에 조공을 보내어 의례적인 종속관계로 돌아가는 데에 동의하였던 것이다. 이는 곧 일본의 중앙 집권자들이 자신들의 세력 상황에 따라 중국과의 조공관계를 활용하였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는 13세기 말에 이루어진 원나라의 일본 침공과 16세기 말의 일본이 중국을 공략하기 위한 조선 침공이 바로 그것이다. 두 전쟁 모두 전쟁을 일으킨 쪽의 목적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양국에 대한 서로의 이미지가 변질되었다. 중국은 과거 유학온 일본의 승려 또는 지식인층을 통하여 일본을 "현명하다"라는 이미지로 바라보았으나, 왜구의 난동과 전쟁으로 인하여 "흉폭한"으로 차츰 변질되었으며, 일본 역시 중국과의 전투를 통하여 과거 존경으로 바라보던 중국에 대한 경외심이 줄기 시작했던 것이다. 

 

 3. 근현대에서의 중국과 일본의 관계 : 1839 ~ 2018년

 리뷰에서는 하나의 시기로 구분하였지만, 책에서는 이 시기의 중국과 일본의 관계를 여러 부분으로 세분화하여 상세히 다룬다. (실제 책의 대부분은 이 시기에 관한 부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19세기에 일본이 성공적인 근대화를 이루었고, 이를 바탕으로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기존의 관계의 우위가 뒤바뀌었으며, 양국의 본격적인 전쟁과 전후 그 짧은 시기에 또 다시 새로운 관계가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이 시기의 중국과 일본의 관계를 각 단계별로 보다 상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큰 수확은 그동안 막연히 생각했던 중국과 일본의 관계를 달리 바라볼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실 그동안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단행한 이후 그들이 목표한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일본의 전략을 오로지 주변국에 식민지화 또는 침공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근대화 이후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만주를 장악하였으며, 동남아시아 및 중국 본토로 침공한 사실이 그러한 생각을 뒷받침하였다. 

 

 하지만 청일전쟁으로 인하여 중국과 일본의 역학적인 관계에 변화가 생겼지만, 중국이 일본을 근대화 모델로 삼으면서 전문지식의 외부 공급자로 일본을 선택하였다는 점과 일본 역시 아시아의 먼로주의를 표방하며 중국과의 협력을 통하여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를 꾀하였다는 점은 근대화 이후의 일본이 오로지 무력에 의한 세력 확장만을 표방한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후 일본의 군부와 끊임없이 전쟁을 주장하단 과격한 우파는 이 사상을 "대동아 공영권"으로 내세우면서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다는 점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근현대사의 초기에 일본이 중국의 근대화에 협력하면서 새로운 전략적 구축 단계를 맺으려는 시도 역시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동아시아는 결국 황인종과 백인종 사이의 인종 투쟁에 직면할 운명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인과 일본인 모두 백인종이 증오하는 적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고노에는 정부가 현재의 유럽 중심 외교 정책에서 벗어나 자연적 동지인 중국과 전략적 관계 구축에 초점을 맞출 것을 요구했다.

 - p. 171 中에서 -


 

 귀족원 의장 출신이던 고노에 아쓰마로의 이러한 생각과 더불어 그가 실제로 중국의 근대화 교육 및 교류에 지원한 행적은 당시 일본의 정책을 훗날 그들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만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이미 역사에서 판명이 난 것처럼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면 상호협력을 통하여 이상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이 과정에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중국 역시 일본과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만주에 주둔한 관동군이 일본 내각의 통제를 완전히 무시하고 전쟁을 획책하고 확대하였다는 점과 유화적인 입장을 취하는 수상과 각료에 대한 군부의 암살 또는 쿠데타의 사례가 뒷받침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부분 때문에 일본의 전쟁에 대한 책임론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후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한국이 독립한 이후의 일본의 관계를 비교해볼 수 있기 때문에 이 또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실 한국은 독립 이후 반일을 내세우면서 일본과 별다른 교류가 없다가 1965년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어설픈 전후 보상문제 처리는 오늘날까지 반일감정이 이어지고 있으며, 경제 발전을 위하여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가 필요했다는 주장 역시 오늘날까지 상반된 평가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이에 비하여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좀 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다. 전후 일본은 중국보다는 타이완과의 교역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었지만,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일찍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중국 역시 전후 경제 복구와 발전을 위하여 일본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중간에 미국의 간섭과 통제로 인하여 이들의 바램은 훗날 중국과 미국의 관계에 해빙의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실제로 이들 관계 복원은 양국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중국 역시 과거 일본이 저지른 만행 때문에 반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니 반일감정을 억누르거나 폭발시키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특히 반일감정은 중국이 경제 회복에 성공한 이후에 더욱 강해졌고, 최근에는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에 대한 영토 분쟁으로 다시금 그 골이 깊어지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중국의 일본에 대한 반일감정이 둘의 역학 관계에 따라서 통제되거나 분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으로부터 경제 회복을 위한 지원과 교류의 시점에서는 그러한 감정이 대외적으로 부각되지 않았지만, 경제 회복에 성공하고 이제는 미국과 경쟁하며 패권을 차지하려는 시점에서는 반일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면서 영토 회복과 내부 결속용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이 책이 [중국과 일본]이라는 제목처럼 한국에 관한 내용은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우리로서는 충분히 공감하고 또 우리에게 적용해 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각각의 관계를 살펴볼 때, 최대한 우리쪽에 유리한 해석을 따르는 경향이 있는데 에즈라 보걸의 시선에서는 동아시아의 근현대사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파이가 그리 크지 않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이를 통하여 무조건 민족의식의 고취와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한 역사가 아니라 보다 냉철하게 우리의 지나온 길과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중국과 일본의 관계의 변화가 둘의 위치에 좌우된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 우리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이들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책 제목에서 한국이 소외되었다는 아쉬움보다는 우리 주변국의 관계사를 통하여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 책을 읽어본다면 우리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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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ne518


    중국과 일본이라니, 한국이 빠진 건 어쩐지 아쉽기도 하네요 한국은 중국하고도 애매하고 일본하고도 좀 그런지... 어쩐지 중국은 일본을 잘 이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기 나라에 좋게... 어떤 나라든 자기 나라에 이익이 되기를 바라고 다른 나라와 교류를 하겠지만, 반일 감정이 있다고 해도 그게 중국 사람이 마음을 합치려는 걸로 쓰잖아요 한국은 반일 감정뿐 아니라 친일 감정도 있어서... 같은 나라 사람이 싸우기도 하는군요 광복을 맞고 그때 친일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싶습니다


    희선

    2021.07.01 01:5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저도 처음에는 오로지 중국과 일본을 다루는 책이라서 내심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지만, 잠깐씩 등장하는 한국에 관련된 부분이라든지 중국과 일본의 관계를 한국과 중국 또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도 대입해 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거 중국은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생각하여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거의 관심이 없었지만, 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낙후된 경제와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문물 교류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강대국의 지위에 오른 상황에서 과연 중국과 일본의 관계, 나아가서 이들과 한국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2021.07.01 13:51
  • 파워블로그 산바람

    동아시아의 근현대 문명에서 한국의 역할은 극히 미미했던 것이 사실이라 생각됩니다. 특히 서양인의 눈으로 볼 때 조선은 그 존재감이 크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좋은 리뷰 잘읽고 갑니다.

    2021.07.01 17:0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어렸을 때 알던 우리의 역사와 최근 좀 더 다양한 시선으로 보는 우리의 역사는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우리의 역사라 하더라도 좀 더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이 책을 통하여 느낄 수 있었던 것이 또 하나의 수확이 아닌가 싶습니다.

      2021.07.0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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