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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8

[도서] 본격 한중일 세계사 8

굽시니스트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본격 한중일 세계사 8 : 막부의 멸망과 무진전쟁]은 제목처럼 200년 넘게 일본을 통치하던 도쿠가와 막부가 근대화 과정에서 어떻게 무너졌고, 이후 일본 내부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의 일본 역사에 대하여 우리는 대부분 미국 페리 제독의 개항 압박(1853년)과 이로 인하여 문호를 개방하고 메이지 유신(1868년)을 통하여 일본이 근대화의 길을 걷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흑선이 내항한 이후 단 15년 만에 막부가 무너지면서 메이지 유신이 단행된 상세한 과정에서는 거의 모르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과정을 상술하고 있는데, 이를 통하여 우리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어떻게 일본이 청나라와 조선과 달리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것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만화로 말이다. 

 

  이미 6권에서 막부의 제2차 조슈 정벌은 1866년 쇼군의 죽음과 함께 실패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1867년 1월 30일, 고메이 천황의 죽음과 함께 그의 아들인 무쓰히토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메이지 천황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이미 1868년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유신이 단행되었음을 알기에 1867년부터 1868년까지 짧은 기간에 무수히 많은 사건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고, 실제 이 책의 대부분은 이 짧은 기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를 하고 모리 가문이 많은 봉토를 삭감당한 채 조슈 지방으로, 시마즈 가문이 사쓰마 지방에 자리하게 되었는데, 도쿠가와 막부 체제에서 이들은 변방의 번 취급을 받다가 이제 격변의 시대에 주축 세력으로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목표는 '존왕양이'를 내세우면서 막부 타도였다. 1867년 1월 10일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30세의 나이고 정이대장군, 즉 쇼군으로 취임하니 요시노부는 이제 조슈와 사쓰마와 같은 도막파의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이미 선대의 쇼군 아래에서 실무를 담당한 인물이었다. 상당히 유능한 인물이어서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는데, 그가 쇼군에 취임하였으니 조슈와 사쓰마 역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고메이 천황이 도쿠가와 막부를 지지하였다는 점이다. 분명 '존왕양이'와 '도막'을 주장하는 조슈와 사쓰마로 기울어야 할 것 같은데, 천황이 오히려 막부를 지지하였다는 점은 의외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천황 입장에서 일단 조슈와 사쓰마는 반란을 일으킨 역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으며 그동안 실무를 막부가 담당하였고, 요시노부 역시 교묘하게 천황을 떠받들고 있었으니 고메이 천황으로서는 굳이 막부와 척을 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메이 천황이 급사하고 무쓰히토가 15세의 나이로 천황의 자리에 오르니 분위기는 급변한다. 일단 메이지 천황이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명확하게 지지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1867년 11월에 이미 '대정봉환'을 통하여 통치권을 천황에게 바치게 된다. 이는 막부체제의 멸망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을 살펴보면 오히려 막부에게 상당히 유리한 상황으로 흘러갔다. 요시노부는 천황에게 통치권을 줘도 교토의 조정은 그동안 실무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결국 막부에게 의존할 것임을 꿰뚫어 봤기 때문에 '대정봉환'을 단행했던 것이다. 실제 '대정봉환' 이후 교토의 조정은 오히려 친막부파가 득세를 하였고, 막부는 여전히 일본을 통치할 수 있었다. 그것도 천황을 등에 업고 통치를 하였으니 형식적인 부분에서만 막부가 사라진 것이지 이는 삿초(사쓰마와 조슈)가 원하는 막부타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닌게 아니라 '대정봉환' 이후 삿초는 그러한 문제를 꿰뚫어보고 크게 반발한다. 비록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막부 체제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각 지방 영주, 특히 강대해진 조슈와 사쓰마 번의 영주들을 조정의 정책을 정하는 회의에 참석시켰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것이었다. 

 

 오히려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쓰러져 가는 막부의 희망처럼 유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대정봉환'으로 오히려 명분을 획득하였고,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열강 세력으로부터도 그 지위를 인정받았으며, 육군과 해군의 근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사쓰마와 도사, 히로시마, 에치젠, 오와리의 5개 번의 병력은 1868년 1월 3일 새벽에 왕궁을 점거하였고, 어전 회의에서 이와쿠라는 "왕정복고의 대호령"이라는 이름으로 개혁을 단행한다. 개혁의 주된 내용은 막부의 완전한 폐지였으니 막부로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요시노부는 무력 충돌을 최대한 피하면서 열강의 지지와 교토 조정의 친막부파를 동원하여 어전 회의를 다시 장악하면서 이 쿠데타는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사쓰마 번은 1868년 1월 17일 막부의 중심인 에도 성에 방화를 저지르면서 막부를 자극하였고, 결국 막부 역시 병력을 동원하여 에도의 사쓰마 번저를 전소시키면서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한다. 이를 빌미로 결국 요시노부는 1868년 1월 25일, "사쓰마 징토의 표"를 선포한다. 이로써 1868년(무진년), 전쟁의 막이 오르니 이것이 바로 '무진전쟁(보신전쟁)'이다. 

 

 영리했던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최대한 무력 충돌을 피하면서 도막파에 전쟁의 명분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사쓰마 번은 게속 막부를 자극하였고 막부 내부에서도 무력을 주장하는 상황이었으니 요시노부 입장에서는 피하려던 전쟁의 상황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비록 2차 조슈 원정에서 막부가 패배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막부가 동원한 병력은 막부의 주력군이 아닌 여러 번의 군대를 모은 것이어서 실제 막부가 패배했다고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무진전쟁'은 육로로는 막부군 1만 5천이 오사카에서 교토로 진군하기 시작하였고, 바다로는 에노모토 다케아키가 이끄는 신식 해군이 나섰으니 '무진전쟁'은 곧 직접적인 막부의 참전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기세 앞에 도막을 주장하는 신정부는 막부의 위세에 관망의 분위기가 나타났다. 조슈의 군대는 아직 교토에 입성하지 못하여 소수의 선발대만 존재하였고, 도사 번은 이번 전쟁이 사쓰마의 단독 도발에 의하여 벌어진 것이기에 참전을 거부하였으니 막부의 1만 5천에 대항하는 교토의 병력은 사쓰마 번의 3천을 포함한 4천 정도의 병력이 전부였다. 누가봐도 막부의 우세가 점쳐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1868년 1월 27일 무진전쟁의 실질적인 전투인 '도바-후시미 전투'가 시작되면서 그러한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게 된다. 초반부터 막부의 선봉은 붕괴되었으며, 심지어 막부의 사령관 다카가와는 총성에 놀란 말 때문에 전장에서 이탈하면서 막부군은 동요하기 시작하였으니 이미 시작부터 막부군은 사기가 저하되었고, 실제 '도바-후시미 전투'에서 신정부군이 승리를 거둔다. 더구나 신정부군은 천황의 깃발인 '금어기'를 앞세우면서 전진하였으니 명분에서도 막부를 압도하게 된다. 또한 이 전투 이후 관망하던 세력들은 대거 신정부군에 가담하면서 막부에 등을 돌렸으니 막부로서는 '풍전등화'의 상황에 다다르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막부는 무력으로 다시 저항하려고 하지만 문제는 그토록 유능한 모습을 보였던 요시노부가 오사카에서 에도로 탈출하면서 이제 막부의 본거지인 에도가 신정부군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 애초 요시노부는 무력 충돌을 피하고자 하였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재림이라 평가받던 그도 전쟁이라는 상황에서는 이에야스와 같은 결단력이 부족했으니 막부는 이제 200년 넘게 이어오던 그 명맥이 끊길 상황이었다. 

 

 결국 1868년 4월 7일, 에도 성 개성 협상 타결이 되면서 에도에 대한 무혈 입성이 결정되었으며, 4월 26일 요시노부는 도쿠가와 당주를 5살의 이에사토에게 내주고 미토로 낙향하여 은거하였고, 5월 3일 신정부군이 에도 성에 무혈 입성을 하면서 결국 도쿠가와 막부의 260년의 통치 체제는 무너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비록 막부의 수장인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물러났지만, 여전히 막부를 지지하는 '좌막세력'이 저항을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역적 2호로 지명된 아이즈 번주의 가타모리는 동북지역 번들과의 연합을 주도하였고, 에도 한복판에는 쇼군 호위를 명목으로 '창의대'가 등장하였으며, 막부의 신식 해군을 이끌던 에노모토 함대 역시 신정부의 함선 반환을 거부하면서 신정부의 저항 세력과 협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신선조'를 비롯한 막부의 신식육군인 '전습대' 역시 북상하면서 우쓰노미야 성까지 점령하면서 저항의 의지를 내비치게 된다. 또한 신정부군에 투항하려다가 그들의 가혹한 동북지방에 대한 정벌에 분노한 센다이가 이끄는 14개의 열번이 아이즈 번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이제 동북지방에서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게 된다. (참고로 센다이 번은 일본 전국시대 유명한 무장이었던 다테 마사무네의 가문이 다스리던 지역으로서 나름 자존심이 강한 지역이었는데, 이를 대하는 신정부군은 무례하였기 때문에 센다이 역시 아이즈에 협력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신정부군의 동북 지방 원정은 '아이즈 전쟁'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이 지역은 쇼나이 번과 같이 적극적인 열강의 신문물을 받아들여 조슈와 사쓰마와 같은 신식 군대를 양성하기도 하였지만, 이외의 번들은 구식군대였다. 비록 전투에 임하는 자세는 용맹하였지만 이들 지역은 차례로 신정부군에 의하여 격퇴되면서 1868년 10월 28일, 센다이 번 항복, 11월 6일, 아이즈 번 항복. 마지막으로 11월 9일 쇼나이 번의 항복으로 '동북 전쟁(아이즈 전쟁)'은 마무리된다. 전쟁의 결과로 이들 지역의 번들은 대부분 봉토가 삭감되는 '개역'을 당하게 된다. 또한 원래 이 지역에서는 좌막 세력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이 종식된 이후에도 내부적으로 도막 세력과 치열한 다툼을 벌이면서 서로에 대한 피를 부르는 보복과 복수가 이루어졌으니 1868년 전쟁이 완전히 종식되었다고는 볼 수 없었다. 어쨌든 공식적으로 신정부군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발표하였고, 메이지 천황이 1868년 11월 막부의 본거지였던 에도에 입성하니 이제 막부는 일본의 역사에서 그 명맥이 끊겼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일본은 이제 '메이지 유신'이라 불리우는 근대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이 근대화의 끝이 한국을 포함하여 아시아 지역에 대한 일본의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일본 역사를 너무나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근대화와 같이 기존의 체제와 시스템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인 이들의 역사 역시 우리로서는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본의 방식이 꼭 맞다고는 볼 수 없으나, 당시 조선은 이러한 변화 자체를 아예 겪지 않기 위하여 체제 유지와 결속만을 최우선으로 하다보니 개혁과 변화에 뒤지지 않았던가?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개혁과 변화는 생각지도 못한 반대급부를 마주할 수 있음을 우리는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관점에서 [본격 한중일 세계사 8 : 막부의 멸망과 무진전쟁]을 읽어 본다면 우리로서도 염두에 두어야 할 역사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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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서천

    대하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쓰를 재미 있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요, 이 책의 내용은 이에야스의 가문의 몰락에 관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네요.(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힘으로 권력을 좌지우지했지만 힘에 밀려 망하는 막부를 보며 역사의 무상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어쨌든 일본은 유신을 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동북아의 강자가 되었는데 반해, 조선은 변화의 기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비극적인 역사를 겪어야만 했다는... 이런 생각과 함께 역사적 안목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생각해보게 하는 리뷰, 잘 읽었습니다.^^

    2021.08.01 13:2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저도 [도쿠가와 이에야쓰]를 읽었습니다. 예전에 [대망]이라는 제목이었을 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고보니 그 작품은 도쿠가와 막부의 성립 과정을 다룬 내용이니 이 책은 그 끝을 다루게 된 셈이군요. 서천님 말씀대로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 과정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동안에는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동북아에서 한중일의 관계의 변화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알 수 있었으니까요. ^^

      2021.08.02 19:58
  • 스타블로거 ne518


    일본은 메이지 유신 때문에 근대화가 빨리 이뤄지기도 했네요 그때 경험을 살려서 조선과는 자기들한테 유리하게 조약을 맺었던 것 같습니다 잘 모르지만 그랬던 것 같기도 하네요 막부말기 이야기를 다룬 만화 많은 것 같더군요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그때 일을 다루는가 싶기도 한데, 그건 역사 때문은 아닌 것 같기도 해요 신선조를 좋게 보이게 한 것도 있으니... 신정부군이 나빠 보이기도 하더군요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이 나쁜지 알 수 없기는 하겠습니다 싸움없이 해결됐다면 더 좋았을 텐데... 조선은 거의 일본 때문에 근대화가 되기도 했군요 오래전에 앞을 본 사람(류성룡) 말을 기억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텐데... 앞으로라도 잘 하면 좋겠네요


    희선

    2021.08.02 00:3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맞아요. 일본이 처음 미국을 비롯한 열강과 맺었던 불평등한 조약을 고스란히 조선과의 수호조약에 반영함으로써 불평등한 조약이 되었죠. [바람의 검심]에서 신선조가 좀 멋지게 나오죠. 그리고 아예 신선조를 주인공으로 다룬 만화도 있지만, 실상은 막부를 지지하는 폭력 세력 중 하나였죠. 이론적으로는 서로 피해없이 변화를 이루면 좋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결코 쉽지 않음을 이 시기의 일본의 역사가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역사를 거울삼아 희선님 말씀처럼 앞으로 실수 또는 실기하지 않도록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2021.08.02 20:01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오랜만에 책찾사님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리뷰를 읽는 것 같습니다.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는 부분은 잘 모르는 일본 역사였는데 책찾사님의 친절하고 명쾌한 설명 덕분에 어느정도 알 수 있었습니다. 막부의 종말과 함께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이 근대화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군요. 이때 우리 조선은 무얼 하고 있었는지 참 안타깝기만 하네요. 역시 이래서 우리 역사만 알아야 하는게 아니라 당시 주변국들의 역사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 책에서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역사통 책찾사님의 머리에 쏙쏙 리뷰 잘 읽었습니다.^^

    2021.08.02 22:0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막부의 붕괴 과정은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희생과 손실이 발생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본은 이후 메이지 유신을 통하여 근대화 과정에 성공하였지만, 그 결말은 전쟁이라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으니 변화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역시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일본의 이 과정에 대해서는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시리즈를 통하여 상세히 살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어요.
      읽고 좋은 생각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억책방님 ^^

      2021.08.04 15:40

PRIDE1